결한 집

 정찬 (2013.2) / 문학과 지성사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한 한 소년이 엄마를 죽였다. 소년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추적하는 신문 기사라면 이런 문장으로 시작할 것이다. “‘존속살인범’이라는 말의 섬뜩함은 검은 뿔테 안경을 낀 뽀얀 피부의 소년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이 사건을 서술하는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새벽빛이 창을 통해 집 안으로 비스듬히 스며들었다.” 이렇듯 소설은 불현듯 독자를 사건의 한복판에 던져놓는다.


  정찬의 소설 <정결한 집>은 “그러므로 어머니를 죽이지 않으면 나를 죽일 수 없다”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밖에 없었던, 한 소년의 이야기를 소설적인 방식으로 건조하게 그린다. 소녀 명희와의 조우와 그들이 이야기하는 죽음과 폭력의 세계. 시체놀이를 하는 이들의 모습처럼, 소설은 불길함을 불현듯 던져놓는다. 죽은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일주일에 세 번은 청소를 했을, 죽은 어머니가 없는 극장에서 홀로 영화를 봤을, 마침내 난간에 누웠을 어떤 소년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르도록.


  “제가 죽음의 심연에 얼굴을 처박지 않았던 것은 저에 대한 의문이 그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하는 학자처럼, 우리는 죽을 걸 알면서도 안간힘을 써가며 산다. 병역기피자로 고초를 당했던 아버지도, 나치와 마오쩌둥 하의 인간들도, 용산 4구역 재개발 사업지 푸른 망루의 사람들도 드리워진 폭력을 피할 수 없다. 폭력으로 이루어진 이 정결한 세계 속에 불현듯 던져진 우리에게, 정찬의 소설은 섭리 같은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작고 귀한 실마리가 된다.




*주 >

한겨레, <‘엄마 살해범’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던 그 소년>, 2012년 3월 9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133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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