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윤이형 소설 <큰 늑대 파랑>은 물렁해서 불행한 청춘의 이야기를 섬뜩한 목소리로 건넨다. 시위대와 함께 투쟁하는 대신 이화예술극장에서 <저수지의 개들>을 보고 누군가의 자취집에서 '오에카키'로 늑대 파랑을 창조한 네 명의 청춘. 십년 후 사라는 제인 오스틴과 에쿠니 가오리의 가상 대담 따위 원고를 끼적이며, 집 안에서만 서식하는 고도비만 프리랜서 라이터가 되었다. 마지막 섹스는 대학 3학년, 인터넷에 연재하는 SF물의 로맨스마저 현실감이 없다.

사라는 인생에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삶은 별 게 아니었다. 훌륭한 드립커피나 적절한 순간에 흘러나오는 펫 숍 보이스의 노래, 닥터 하우스의 귀여운 미소, 좋은 책의 한 구절 같은 것들이면 충분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물렁한 청춘들에겐 그 작은 행복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드립커피 마저도, 닥터 하우스마저도 수입 없이는 향유할 수 없다. 한때는 신기한 상상력을 발휘하던 광고의 매력에 빠져있었을 재혁. 시시껄렁한 광고회사에서 이주 노동자 밴드를 착취해가며 PT를 지휘한다. 결과는 그들의 딸의 사망. 네 시간의 취침 후 일요일까지 이를 악물고 출근하는 대기업 외주 사보 기자 정희의 삶은 어떤가. 그리고 그들의 십년 전, 빛나는 사라, 재혁, 정희의 모습을 사랑했던 아영, 2주에 한 번 의무적으로 선을 보는 그녀의 삶은 어떤가. 세상은 그들의 꿈과 열정을 저당잡았다. 사라, 재혁, 정희, 혹은 아영. 이들처럼 꿈을 저당잡힌 사람의 이름을 열 개 이상 헤아려볼 수 있다. 인풋과 아웃풋이 터무니없는 적자 거래를 하고 있는..

 


2.  



   알랭 드 보통을 연상시키는 재기발랄한 소설가 제프리 무어의 <기억술사>에는 낭만적인 메모리 마스터들이 등장한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노엘 부런, 그는 색깔과 형태로 세상을 느낀다. 그와 아버지는 시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가장 고차원적인 감각에 대해. 

   "제일 꼭대기에 있는 건 바로 시야. 최소한 옛날에 쓰인 시들 말이지. 그 밖의 다른 어떤 것도 피와 영혼 속에 그만큼 멀리, 그만큼 깊이 파고들지 못해. 셰익스피어가 베토벤보다 더 위대하단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는 소리 '그리고' 의미를 갖고 있었으니까. 어른이 되더라도 이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해. 시는 천상에 있고, 티브이는 지옥에 있다." (23p)

  "이 세속적인 세상, 영혼이 죽어버린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남은 건 오직 시인들뿐이야. 그걸 기억해라, 노엘." (27p)

"왜 오로지 시만 외우고 싶어하는 거지?" 보르타 박사와 그의 연구원들은 소리나 리듬이 기억을 도와주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하면서 그렇게 물었다.
"시는 창조의 정점이기 때문이에요." 노엘은 대답했다. "시만큼 피와 영혼 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그걸 절대로 잊어선 안 돼요." (33p)
  

   시는 천상에 있다, 영혼이 죽어버린 세상, 남은 건 오직 시인 뿐이다, 시만큼 피와 영혼 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시를 읽는다. 시를 읽는 것은 어떤 문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떨림과 전율, 시인이 느낀 감각에 빚을 지기 위해.

 


3.

시를 읽는 것은 예를 들면,

하늘을 날지 않는 새들은 동작을 멈출 줄 아는 도롱뇽 같아. 끝에 닿기 전에 한 번쯤 정지하는 일 말야. 언니는 동물도감을 펼치고 도롱뇽 꼬리를 부엌칼로 잘라 낸다. 쪽문을 드나들다 키가 큰 언니는 매일 밤 흰 목을 구부린다. 난간에 걸친 달이 몸속에 뼈를 세울 때마다 언니는 어깨가 아프다. 그를 찾아가도 될까? 이제 더 이상 손발이 자라지 않으므로 언니는 밤마다 짐을 꾸린다

- 첫사랑, 이영주, <언니에게> 중


어깨가 아픈 목이 흰 언니를 만나기 위해서고,

또 예를 들면,

   어쩌다 우리는 소멸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지상에 집을 짓지 못하고 허공에 매달린 채로 이곳와 저곳 사이에서만 몸을 누이는. 블랭크 블랭크. 너의 야윈 등이 보이고 마른 뼈들과 뼈마디의 적막과 그 적막이 내뱉는 힘줄보다 질긴 고백. 블랭크 하치. 실패한 곡선에도 밤은 올까. 너는 단 한번도 똑같은 표정을 지은 적이 없고 나는 너에 대해 말하는 일에 또다시 실패할 것이다. 내가 기록하는 건 이미 사라진 너의 온기. 체온이라는 말에는 어떤 슬픈 온도가 느껴진다.

- 블랭크 하치, 이제니 <아마도 아프리카> 중

 

   체온이라는 슬픈 온도, 같은 문장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시를 읽는 것과 시인의 꿈에 빚을 지는 것이 같은 일이 된다는 건 슬픈 일이다. 1967년, 컬럼비아 대학을 다니던 폴 오스터 <보이지 않는> 속 자신만만한 시인 지망생 '워커'에게도 시인이 된다는 것은 생계를 포기하는 일이었다. 이미 일가를 이룬 시인 허수경도 정독 도서관에서 웃으며 말했다. 고고학과 시의 공통점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시인의 웃음에 나도 웃었다.
 
 



4.

"혁명을 하기엔 책을 너무 많이 읽었고 풍경을 읊기엔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이제니, 아마도 아프리카 中) 시대다. 읽기도 쓰기도 빵이 되진 않는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아름답고 잔혹한 문장에 떨려하는 것은, 황홀하지만 호사스럽고 무용한 취미다.

그러나 계속 시를 읽으련다. 시를 소비해서라도 시인에게 진 빚을 까야 할 것 같아서. 교통카드를 찍듯, 마일리지 카드를 긁듯, 대출금 자동이체를 하듯. 가끔은 이 빚에 대한 지불에도 합당한 절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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