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이력을 지닌 추리소설 작가는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의사가 본업이자, 의학 미스터리의 1인자로 꼽히는 가이도 다케루라든지, 디자이너이자 소설가인 쿄고쿠 나츠히코 같은 이름이 금방 떠오르는 걸 보면요. 그렇지만 국내 작가로 범위를 좁히고 보면 어쩐지 자신이 없어집니다. 여기, 정의로운 판결과 완벽한 트릭을 동시에 꿈꾸는 현직 판사 추리소설가가 등장했습니다. 작가의 특이한 이력을 증명하듯, 전문성이 잘 살아있는 본격 추리소설,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를 들고 나타난 도진기 판사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인터뷰는 들녘 출판사에서 제공해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판사님. 작가로 데뷔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한국추리작가협회가 주관하는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으셨고 거의 동시에 장편을 두 권 출간하셨습니다. 전업 작가들도 소화하기 힘든 일정이었을 텐데, 특별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원래 추리소설의 열렬한 독자에서 출발했고, 좋아서 시작한 일이기에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다만, 주로 주말에 글을 쓰는데 하루 종일 앉아있으니 허리와 목, 눈의 통증이 상당하더군요. 그걸 감수할 만큼 글 쓰는 게 재밌었습니다. 모든 문화적인 생산물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보다는 좋아서 열중했을 때 괜찮은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제 작품이 그 정도 수준에 도달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현직 판사가 추리소설을 썼다는 기사에 많은 분들이 놀라셨습니다. 저희 문학 환경에서는 전례가 없던 일이라 더욱 그런데요, 외국에서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창작활동을 겸하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띕니다.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을 쓴 일본의 가이도 다케루, <더 리더>를 발표한 독일의 베른하르트 슐링크 등이 그렇겠죠?

 실은 ‘전례가 없다’는 점 때문에 부담이 컸습니다. 본업을 등한시하고 헛짓한다는 시선, 한 번쯤 기념 삼아 책을 내보려는 것 아니냐는 등의 오해를 받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그런 것들은 기우 아닐까, 오히려 우리나라도 이젠 문화적으로 열린 생각을 가진 분들이 훨씬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강했습니다. ‘문화, 예술과는 담쌓고 법조문만을 들이파는 법률가’라는 전형은 어차피 대부분 좋아하시지 않으니까 말이죠. 가이도 다케루, 베른하르트 슐링크 두 분 다 제가 책을 내면서 힘을 얻었던 인물들입니다. 관련해서 가볍게 소감을 한 마디 덧붙이겠습니다. 해외에 1년간 연수 갔던 적이 있는데, 거기서 크게 느낀 건 정작 그 나라의 문물보다는 일본과 우리나라와의 위상 차이였습니다. 같은 물건이면 일본 프리미엄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었고, 약간의 울분이 있었습니다. 일본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많이 감탄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은근한 경쟁심이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알기론 일본에는 판사 출신 추리소설가는 없습니다. 한국에서 먼저 그런 틀을 깼다는 데에 대한 자부심은 좀 있습니다. (웃음)
 


언론에 보도된 내용 외에 특별히 추리소설 분야에 매력을 갖게 된 구체적인 동기가 있으신지요? 이를테면, 정교한 지적게임이 판사님의 성향에도 부합되었다든지 하는…….

 어린 시절 다락방에 아버지께서 젊었을 때 보시던 무협지와 추리소설들이 있었습니다. 컴컴한 데서 그 책들을 뒤져보면서 그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워낙에 호기심이 병적일 정도로 많은 성격입니다(길거리에서 ‘기나 도에 관심 있습니까’하는 분들도 오로지 궁금해서 따라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수께끼를 던져대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추리소설들이 취향에 맞았습니다.  



<백야행>의 히가시노 게이고, <점성술 살인사건>의 시마다 소지,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도가와 란포 등을 좋아한다고 하셨습니다. 세 분의 작가 가운데 가장 마음에 두는 작가는 누구인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이런 훌륭한 추리작가들이 없었다면 전 소설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감탄, 연구, 나도 한번? 이런 순서로 흘러갔던 것 같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흡입력과 아이디어를 비트는 수법을, 시마다 소지는 트릭의 참신성, 에도가와 란포는 탁월한 상상력을 장점으로 보았습니다. 물론 영미권 작가를 포함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읽었습니다. 쿄고쿠 나츠히코나 요코미조 세이시, 모리무라 세이이치, 오츠이치도 좋아합니다. 특별히 한 작가에 집중하지는 않았습니다. 덧붙이자면, 소설만이 소스는 아니었습니다. 영화, 드라마, 만화, 게임, 여행, 음악 등이 다 원천이 될 수 있겠죠. 오랜 세월 문화의 수용자, 소비자로 있어왔고, 희귀한 소스들도 나름 접해왔습니다. 그런 축적된 두께 속에서 한 줄의 상상력을 끄집어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정통문법에 입각한 좋은 추리소설이 나왔다고 기뻐합니다. 모두들 국내 작가의 손끝에서 이 같은 작품이 탄생한 것을 무척 반기는 분위기인데요, 이번에 발표하신  두 작품에 만족하시는지요? 혹시 더 보강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1편은 좀 축약하여 쓴 감이 있어 아쉬운데, 사실 1편 내용을 제대로 전개하려면 분량이 두 배 정도 되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2편은 충격적인 반전과 몇 개의 트릭에 기댄 작품이어서 플롯의 복잡성에서 1편보단 조금 약하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추리소설로서는 1편의 구조가 더 탄탄하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2편에도 상당한 애착이 갑니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1편의 우울한 분위기 때문에 제가 써놓고도 마음이 무거웠고, 2편에는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나와서 기분이 개운한 점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탐정이나 변호사 하면 대개 ‘정의감에 충만한’ 영웅적인 캐릭터를 상상하게 마련인데요, 판사님에게서 태어난 ‘어둠의 변호사’는 약간 다른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무척이나 현실적이죠. 저는 1권이 끝나갈 무렵 살짝 전율했는데요, 이런 캐릭터를 창조하신 특별한 의도가 있습니까?

 법률의 뒷길에서 활약하는 어둠의 변호사란 존재 자체가 비틀린 내면에서 출발한 인물이기에, 직선적인 정의감과는 어울리지 않기도 합니다. 마음 한 구석엔 순수함이 있고, 그것을 원하기도 하지만 세상에 흔치 않기에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사는 시니컬한 인물입니다. ‘정의감 강한 순백의 주인공’은 소설 뿐 아니라 영화든 드라마든 시효가 다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절벽에 떨어지려는 철천지원수를 마지막에 어거지로 살려주다가 자신이 당하는 주인공에 저는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낡은 공식을 깨고 싶었습니다. 제가 쓴 단편 중에는 체포경력이 있는 백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정의감 있는 여검사도 나오지만 그녀 역시도 범인 체포를 위해서라면 교묘한 덫을 파기도 하는 캐릭터입니다.
   



 
어둠의 변호사 고진은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우고 이를 뒤집거나 혹은 증명해 나갑니다. 저는 판사님이 특히 논리와 반증, 가설과 증명, 트릭과 풀이 과정에서 뛰어난 묘를 발휘하셨다고 보는데요, 어떻습니까?

 가장 신경을 쓰고 여러 번 검증하고 다듬었던 부분입니다. 수수께끼와 트릭풀이를 모토로 하는 본격 미스터리이기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죠. 또 트릭에 치우치다가 개연성을 놓치지 않으려 신경을 썼습니다.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폐기한 트릭도 많습니다. 여러 트릭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복합적으로 전개되는 플롯. 그런 걸 쓰고 싶었습니다.
 


 
고진과 유현의 캐릭터가 요즘 사람들답지 않게 순수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판사님의 성정을 십분 반영한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 입장에서 두 인물은 저의 내면에서 끌어올린 부분도 불가피하게 있습니다. 하지만 두 인물은 저의 아바타라기보다는 누구에게나 있는 일면을 개별적으로 극대화시켜 분리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실제의 모델은 모두이거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판사로서의 업무는 매번 진검으로 승부를 하는 긴장감 속에 있습니다. 반면에 소설가로서는 거의 정반대로 릴렉스된 상태로 즐거운 마음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소설 쓰는 게 지겨워지거나 또 다른 업무가 되지 않도록 유의할 생각입니다. 3편 이후는 비록 아직 머릿속에만 있지만, 1, 2편과는 좀 다른 성격의, 더욱 소설다운 추리물이 되지 않을까 전망해봅니다.  즐기는 마음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써나가겠습니다. 그렇다고 적당히 쓴다는 것으로 오해하지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작은 마감질의 차이가 작품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대충 넘어가지’하는 생각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 세대는 월드컵 16강은 꿈도 못 꿔본 세대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대는 월드컵 4강에, 김연아의 세계제패, 한류를 보고 있는 중입니다. 서양, 외국 콤플렉스가 거의 없는 세대입니다. 부럽기도 하고 기대도 됩니다. 그렇다고 국수주의? 그런 거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만 외국과 동등하게 문화를 교류하는 나라였으면 합니다. 독자들께는, 한국작품이라는 이유로 미리 디스카운트해서 보시지 말고 좀 더 애정을 가지고 읽어주셨으면 하고 바랍니다. 우리나라 작품이라는 이유로 묻힌 소설도 많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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