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마이어는 <아메리칸 러스트>라는 한 편의 소설로 미국 문학계을 이끌 신예라는 찬사를 얻었습니다. 젊은 작가가 단 하나의 작품으로 존 스타인벡, 헤밍웨이, 데니스 루헤인, 코맥 메카시 등의 대작가의 이름과 견주어지는 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70년대 미국 공장지대. 그 회색빛 풍경 속 흐릿한 구원의 빛을 그려낸 필립 마이어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인터뷰는 올 출판사에서 전해주셨습니다.

  

 
  데뷔작 《아메리칸 러스트American Rust》로 출간과 동시에 2009년 미국 문단과 대중을 단번에 사로잡은 신예 필립 마이어.《로드》 이후 미국에서 발표된 최고의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단 한 편의 소설로 이미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코맥 매카시와 비견되는 영예를 안은 이 작가는, 첫 소설의 성공으로 분주한 중에도 편집부와 서면으로 진행된 인터뷰에 성실하고도 친절하게 응해주었다. 데뷔작으로는 드물게 인간과 세계에 대한 끈질긴 탐구와 묵직한 통찰력을 강렬한 내러티브 속에 녹여낸 주목해야 할 신인 필립 마이어. 자신의 진중한 소설처럼 진정성이 묻어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터뷰 | 올 기획편집팀 황경하, 번역 | 황근하)

 
 

 


서면으로나마 만나서 반갑다. 《아메리칸 러스트》를 한국에 소개하게 되어 기쁘다. 곧 출간될 한국판 《아메리칸 러스트》의 첫 번째 독자로서 당신의 소설을 매우 인상 깊게 읽었다. 이 소설은 미국 문단과 대중의 큰 주목을 받았을 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 소개되면서 세계적으로도 관심을 받았다. 기분이 어떤가? 당신의 데뷔작이 이러한 주목을 받을 줄 예상했나?

운이 무척 좋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한 그런 호평들에 대해서는 빨리 잊어버리는 게 좋은 것 같다. 글 쓰는 사람은 좋은 평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글 쓰는 게 좋아서 글을 써야 한다. 그래서 지금 한 번도 책을 낸 적이 없는 것처럼, 혹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처럼 쓰려고 노력 중이다. 내게서 나올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늘 확인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이 책은 지금 미국에서 유행하는 종류의 소설들과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주목을 전혀 못 받는다 해도 이상할 것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좋게 받아들여진 것에 대해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 책에 내 모든 능력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내가 인생에서 한 모든 것들은 불가능하다고,
혹은 무모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것들이다.

 
   


 
작가로 등단하기까지의 이력이 독특하다. 고교 중퇴자 신분으로 코넬대를 졸업하고 월스트리트 중개인이 되었다가 작가로 전향했다. 먼저, 고등학교를 그만둔 이유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줄 때, 그러니까 사회가 기대하는 것을 할 때 가장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내 자신의 본성에 진실한 것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 지금 내가 하는 것이, 사회가 나에게 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지만, 늘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내 직감을 믿으려고 하는 편이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도 (몇 번의 시도 끝에) 아이비리그의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월스트리트에서 매우 높은 연봉의 직장을 다녔으면서도 미련 없이 나올 수 있었다. 나는 내 직감을 아주 굳게 믿고, 늘 그것을 따른다. 큰 결정을 할 때는 다른 이들의 조언을 구하지만, 그들이 뭔가가 불가능하다거나 무모하다고 말할 때 그 말을 따르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내가 인생에서 한 모든 것들은 불가능하다고, 혹은 무모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것들이다.
 

 


경제적인 안정이 보장된 직장을 그만두고 글쓰기를 결심하면서 망설이지는 않았는가? 가령, 중개인을 계속 하면서 글쓰기를 시도할 수도 있었을 텐데. 게다가 《아메리칸 러스트》를 오랜 기간 준비했다고 들었다. 그동안 경제적, 심리적 어려움은 없었는가? 오랜 기간 응답이 없다보면 글쓰기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을 법도 한데.

어떤 일에 시간과 감정적 에너지를 쏟으면서 동시에 다른 일을 최고치로 할 수는 없다. 글쓰기에 전적으로 전념하지 않았다면 《아메리칸 러스트》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경제적 난관은 정말로 많이 겪었다. 우리 집은 전혀 부유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모든 예술가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처음에는 예술을 위해 굶어야 하는 시간이 있다. 시간도, 돈도 충분해서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당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볼티모어의 공장 지역을 모델로 해서 이 소설을 썼다고 들었다. 지금까지의 삶에는 여러 다양한 경험과 기억들이 존재할 텐데, 특별히 그 시절의 경험과 기억을 당신의 첫 소설에 반영한 이유는 무엇인지?

누구든지 내면에는 어떤 식으로든 꼭 그 시기에 해야만 하는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만족스러운 대답이 될는지 모르겠는데, 《아메리칸 러스트》는 내가 내 인생의 이 시점에서 말했어야 하는 이야기였다. 물론 내게는 《아메리칸 러스트》에서 한 이야기 말고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저 지금이 그 이야기를 하기에 알맞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물론 이 책은 과거 산업도시 볼티모어에서 보낸 내 어린 시절을 부분적으로 활용했지만, 그 외에 훨씬 더 많은 부분은 전적으로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사람에게는 혐오할 점보다 존경할 점이 더 많다.

 
   


 
데뷔작에서 다룬 주제들이 꽤 묵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 산업의 붕괴와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선택, 정의(justice)에 대한 정의(definition) 등등. 당신이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사람은 아주 큰 어려움에 처했을 때조차도 큰 관용과 선함, 희생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인물들이 자기가 갖고 있던 사고방식이나 도덕, 즉 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 직면하게 되며, 옳고 그름에 대한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그 결정에 따라 행동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나는,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 사회적으로 그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통해,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들을 파헤쳐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도덕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생각해보기를 바랐다. 그리고 우리가 자기 자신이나 사회, 혹은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궁극적으로 무엇에 기인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기를 바랐다. 
 

 


책의 도입부에 인용된 키르케고르와 카뮈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둘 다 실존주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고, 특히 키르케고르는 인간의 존재 방식을 신(神)에게에서 찾은 철학자 중 하나인데, 특별히 그 인용구들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 두 인용문이 이 책의 바탕이 되는 철학을 잘 요약해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키르케고르는 무척 종교적인 사람이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어느 정도, 그의 인용문은 전체 맥락에서 빼내서 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모두 안에 존재하는 영원한 인간의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 존경, 연민(compassion)과 같은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인간의 본성이 있다고 본다. 칼 융은 그것을 집단 무의식이라고 부른 것으로 안다. 나로서는 그것을 무엇이라 이름 하든 중요치 않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카뮈의 인용문은 내가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신념 몇 가지를 잘 말해준다. 우선 첫째, 사람에게는 혐오할 점보다 존경할 점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다음은, 오직 가장 힘든 상황에서만 가장 훌륭한 인간성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이 쉬울 때, 위험에 내걸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위험에 처했을 때, 생명이 위협받을 때도 인간은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고, 커다란 연민과 자기희생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것이 이 책의 중심 메시지다.

   
 

겁쟁이가 되지 마라.

 
   

 



여섯 명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도덕적 딜레마에 처하는 설정이 굉장히 흥미롭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인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내려야만 하는 선택은 어찌 보면 인간의 본성에 가장 가까울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직접 그러한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서는 어떤 선택을 내릴지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절박한 상황인데, 그래서인지 등장인물들이 내린 선택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고, 그게 이 소설의 매력으로 보인다. 소설에서만큼은 아니더라도 뭔가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할 때 당신이 기준으로 삼는 것이 있는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자신의 직감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를 안다. 그러나 가끔은, 옳은 선택이란 가장 어려운 선택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려운 선택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자주, 우리에게 전혀 선택권이 없다는 듯 행동한다. 가장 어려운 선택을 하고 싶지가 않기 때문이다. 내 삶의 주요 원칙이 있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겁쟁이가 되지 마라.’ 중요한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마다, 내 선택과 기호가 얼마만큼 두려움에서 나온 것인지를 가늠해본다. 실패할 것에 대한 두려움, 들어맞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 다른 이들이 뭐라고 생각할까에 대한 두려움 등 말이다. 주로 감정적 두려움, 혹은 지적인 두려움을 말한 것이지만, 때로는 육체적 두려움도 해당된다. 누구나 두려워한다. 그건 인간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에 어떻게 직면하는가, 그 두려움에 얼마나 솔직한가 하는 것이 다른 결과를 낳는다.  

 



육체적인 면에서는 거의 노력이 필요 없는 청년 포와 천재소년이라 불리며 남들보다 월등한 두뇌를 갖고 있는 아이작은 인간의 육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이 분리되어 극대화된 모습 같다. 둘의 뛰어난 특징들을 조합하면 거의 완벽한 한 인간의 모습이 될 것도 같다. 읽으면서 왠지 작가 자신에게 아이작과 포의 특징이 모두 들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었다. 주요 인물들이 어느 정도는 자기 자신의 성격에서 나온 것인가? 캐릭터들은 어떻게 구상했는지 궁금하다.

포와 아이작은 물론 내 성격의 두 측면이다. 나는 매우 지적인 면이 있지만(내가 전업 작가라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매우 육체적인 면도 있다. 나는 외딴 들판 같은 곳으로 가서 며칠이고 몇 주고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한다. 내가 먹을 것을 소총으로 직접 사냥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물리적으로 밀어붙여서, 내가 어느 정도까지 그 상황을 다룰 수 있는지를 보는 걸 좋아한다.
자기가 쓰고 있는 인물과 비슷한 면을 자기 자신 안에서 발견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 같다. 그 유사성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 인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작가가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특징이나 습관이 될 수도 있다. 영화배우들도 이와 매우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들은 인물을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가 써낸 인물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작가란 인물을 창조해내는 사람이다. 각 인물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일종의 비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각 인물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내 의견을 덧붙이면 그들의 판단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여섯 캐릭터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는가? 많은 평론가들이 경찰서장인 버드 해리스를 매력적인 인물로 꼽았는데, 당신은 어떤가?

글을 쓰면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계속 변했다. 각각의 면에서 여섯 인물을 모두 사랑한다. 어떤 이들은 경찰서장 버드 해리스를 좋아한다. 하지만 포를 가장 좋아하는 이들도 있고, 또 그레이스가 가장 좋다는 이들도 있다. 이상하게도, 내가 가장 좋아한 인물은 아이작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지적인 인물일 것이다.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고, 사람들과 따로 노는 인물 말이다. 우리로 하여금 바보가 되는 기분이 되게끔 만드는. 그러나 내가 볼 때 아이작은 이 책에서 가장 자기에게 깨어 있는 인물이다. 또한 가장 무거운 감정적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인물이다. 책 말미에서 그의 변화는 의도한 것인 동시에 완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비단 자기 친구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선이라는 추상적 관념 자체를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다. 선한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관념을 위해서 말이다. 한편 마지막 부분에서 포의 영웅적인 행위는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잘 모르고 있다. 
 

 


《아메리칸 러스트》를 쓰기 위해 많은 사전 조사를 했다고 들었다. 경제 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몰락한 도시 부엘이 허구의 공간임에도 미국뿐 아니라 그 어디에도 있을 법한 현실적 공간이라는 평을 받은 것은 이러한 사전 작업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어떤 식으로 사전 조사를 했는지 궁금하다.

이 책을 쓰면서 엄청나게 많은 것을 조사했다. 몬 밸리의 철강노동자들 및 주민들과 수십 편의 공식적인 인터뷰를 했고, 철강산업 전문가, 사제와 목사, 경찰관, 치안판사 들과도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한 인터뷰는 수백 개 정도 된다. 아이작이 이 책에서, 적어도 몬 밸리 이내 지역에서 다니는 길들은 거의 모두 나도 직접 걸어 다녔다. 아이작이 한 것처럼 석탄 기차에 뛰어올라서 승차해보기도 했다. 길을 가면서 만나는 모든 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바에도 갔고, 사람들에게 맥주를 사면서 그들에 대해서,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몬 밸리가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곳의 구석구석에 대한 모든 것을 기억해두려고 했다. 
 

 


 여러 매체에 소개된 글을 보면 당신은 글을 쓰는 데 매우 꼼꼼한 것 같다. 플롯을 표로 만들거나 쓰인 단어의 숫자를 세기도 한다던데, 진짜인가? 글쓰기 스타일이 궁금하다.

  글을 쓰는 데 내가 매우 꼼꼼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우리의 잠재의식 깊은 곳에서 온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는 날마다 단어 수를 세서 신중하게 일지를 쓴다. 또한 커다란 종이들을 벽 전체에 붙여놓고, 그 위 여기저기에 글을 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런 게 필요할지 어떨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나에게는 도움이 된다. 한 권의 장편소설을 진행해나간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순전히 내 머릿속에만 있는 여섯 인물들의 관점이 교차하는 복잡한 구조의 소설을 쓸 때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따금씩 어떤 인물에 대한 아이디어가 불현듯 떠오르는데, 그런 것을 적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벽 전체에 종이를 붙여놓은 것이다.
나의 글 쓰는 방식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많이 쓴다’이다. 내 하루 전체는 글쓰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글 쓰는 시간이 내 정신이 가장 힘이 있는 시간이다. 그때, 그러니까 정신이 가장 깨어 있는 시간에 나는 꼭 책상에 앉아 있는다. 이 훈련에 있어서는 정말로 엄격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가장 잘 써진다고 하는데,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다른 이와 한 마디도 대화를 섞지 않은 상태로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해가 뜨기 전, 세상이 아직 조용할 때라면 더 좋다. 새들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때 말이다. 새들이 잠에서 깨어나 지저귀기 시작하는 때가 내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글쓰기가 당신이 세상에서 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닌 이상,
글을 잘 쓰기는 정말로 어렵다.

 
   



많은 이들이 당신의 타고난 스토리텔링 능력과 천재성에 대해 언급했다. 하지만 당신의 글쓰기 방식을 보면 굉장한 노력가인 것 같다. 글쓰기에 있어 당신은 주로 영감의 힘을 믿는 편인가, 땀의 대가를 믿는 편인가?

가장 좋은 글, 가장 좋은 생각은 잠재의식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글을 쓰는 많은 시간 동안, 트랜스 상태와 같은 명상적인 상태에 들어가고자 한다. 자신의 잠재의식에 자신을 열어놓는 것, 더 높은 단계의 정보에 자신을 열어놓는 것이다. 그런 부분은 영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의 95퍼센트는 땀이다. 그것은 힘든 일이고, 끝이 없는 일이다. 글쓰기가 당신이 세상에서 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닌 이상, 글을 잘 쓰기는 정말로 어렵다. 재능을 가진 사람은 수천, 아니 수백만 명이 있을 수 있지만, 그들 모두가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헌신이나 직업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다. 당신은 고등학교에서는 재능 있는 축구 선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직업 축구선수가 되는 유일한 길은 그것에 당신 인생을 바치는 것이다. 수천수만 시간을 연습에 쏟는 것이다. 글쓰기도 무척 비슷하다. 타고난 재능이 상당 정도 있어야만 하지만, 결국 직업의식과 헌신이 있어야 작가로 성공할 수 있다. 내 경우, 습작으로 두 편의 장편을 쓰고서야 《아메리칸 러스트》를 쓸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 괜찮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시작’할 수 있을 만큼이 될 때까지 10년을 연습한 것이다. 그러고서 그걸 끝내기까지 3년 반이 걸린 것이고. 
 

 


 많은 평론가들이 《아메리칸 러스트》를 존 스타인벡, 어니스트 헤밍웨이, 코맥 매카시 등과 비교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제임스 조이스와 윌리엄 포크너다. 문학이 사람 의식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것을 표현해내는 방식에 무척 관심이 많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고 보여줄 수 있지 않은가. 물론 헤밍웨이와 스타인벡, 코맥 매카시도 존경한다. 그들이 쓴 것을 거의 다 읽었다. 그러나 가장 많이 되풀이해 읽은 책은 조이스와 포크너의 책이다. 《율리시스》, 《8월의 빛》, 《음향과 분노》 같은 책들 말이다.  
 

 


 

 

 

 

 

 

 

 

 

다음 장편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작품인지 귀띔해줄 수 있는가?

물론이다. 19세기와 20세기, 21세기에 걸친, 텍사스의 한 축산업 및 석유산업 집안의 부흥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아메리칸 러스트》에서 묘사한 쇠락하고 있는 부분과는 반대로, 미국에서 아직 부상하고 있는 부분이다.  
 

 


《아메리칸 러스트》에는 한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두어 군데 나온다.(비록 선박 산업에 관한 이야기는 한국의 현실과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한국에 대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지는 않을 듯한데, 한국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되었고,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미국은 매우 힘이 세지만, 또한 매우 고립된 나라다. 이 책에서 내가 한국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선박산업에 관한 것을 포함해―몬 밸리 사람들에게서 들은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인상이었던 모양이다.
한국은 미국인의 상상력 속에서 꽤 주목을 받는 위치에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남북 분단, 1950년대의 전쟁, 계속되는 남한 내 미군의 주둔, 북한 및 핵문제와 관련한 다양한 문제들이 큰 이유일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군에서 복무한 내 삼촌은 한국에서도 2년간 복무했다. 미국의 한국인 인구는 상당히 많고, 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단결이 잘되고, 직장이나 대학 같은 데서도 성취도가 높다. 이미 독일인이나 아일랜드인이 그러한 것처럼, 한국인도 더는 타민족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저 이 나라의 한 정규 구성원이다. 적어도 주변인인 내가 보기에는 그러하다.
그 이외에, 미국인 대부분이 한국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대체로 정형화된 것이다. 근면하고, 성실하고, 똑똑한 사람들이라는 것. 좋은 정형화이지만, 그래도 역시 정형화인 것은 사실이다. 물론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물건을 계속해서 구입한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적어도 한국의 일부와 꽤 지속적으로 접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 바를 말하자면 이 정도다. 긍정적이지만, 많이 알지는 못한다.  

 



당신의 행로와 작가 등단은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괜찮은 모델이라 생각된다. 한국에도 소설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쓰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앞서도 말했듯, 직업 작가가 되는 것은 여러 면에서, 직업 운동선수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오랜 시간, 전적인 헌신으로 연습해야 하고, 온 힘을 다해 써야 한다. 비단 재능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재능은 시작점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될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한국 독자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메리칸 러스트》를 번역 출간해준 사피엔스21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저에게는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을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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