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미 작가의 <창 너머 겨울>을 읽은 후 매 해 겨울마다 이 소설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락스와 가려움증, 퍼져나가는 포자의 이미지 같은 감각들과 함께. 독자가 신뢰하는 작가, 최은미의 분기점이 될 세번째 소설집 <눈으로 만든 사람> 출간과 함께 최은미 작가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 질문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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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설집에 실린 소설 중 ‘수상작품집’ 등의 형태로 미리 독자를 만난 소설이 여러 편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집 원고를 읽으며 최은미 작가의 단편들과 함께 한 시절을 지나왔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이 소설들이 발표된 ‘시점’에 대한 이야기를 여쭙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이 소설집에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발표한 소설들이 묶여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그렇듯 이 시기는 제게도 큰 변화가 찾아왔던 시기였어요. 제 감정과 경험들을 공적인 맥락에서 살피면서 저를 둘러싼 것들을 재해석해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들이 소설을 쓰는 데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고요. 그간 쓴 소설들을 묶으면서 저도 제 인물들과 함께 2016년과 2018년을, 또 2020년을 돌아볼 수 있었어요. 그때를 지나온 이들이 어디선가 오늘을 계속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요.
최은미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종종 소리가 들린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보내는 이>의 거실의 풍경, 생활 소음 같은 것들이요. 이러한 ‘최은미’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독자가 많이 계실 듯해요.
소설을 쓰면서 감각에 대한 묘사를 할 때 즐거움을 많이 느끼는 편이에요. 오직 소설을 쓸 때만, 또 소설을 읽을 때만 가능한 방식으로 독자들과 세상을 함께 감각할 수 있다는 건 큰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소설을 쓰면서 느꼈던 그 즐거움을 함께 누려주시는 독자분들을 만날 때 저도 더없이 좋습니다.
<나와 내담자>, <내게 내가 나일 그때> 등의 소설에서 상담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소설을 읽는 상황 역시 독자가 주인공의 상황을 보며 그와 ‘상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나와 내담자>에 상담자의 이런 서술이 나와요. 여러 내담자들이 만든 모래 상자를 마주하면서 상담자 또한 자신의 상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고요. 우리가 소설을 쓰거나 읽으면서 그 소설의 인물과 만나는 과정도 어느 면에선 그와 유사한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요. 자신의 어떤 부분을 모른 척한 채로는 핵심에 가닿을 수 없다는 점에서도요.
<눈으로 만든 사람>의 윤희, <내게 내가 나일 그때>의 유정과 같은 어떤 시기를 지나고 있을 사람들에게 한마디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윤희와 유정은 폭력 이후를 살고 있는 인물들이에요. 자신이 겪은 폭력을 세상에 공유한 뒤 현실과의 괴리 사이에 서 있는 인물이기도 하구요. 저는 폭력을 말한 사람도 말하지 못한 사람도 여전히 곳곳에서 무언가를 무릅쓴 채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뭔가를 얘기할 수 있다면 저는 윤희과 유정들보단 이들 외부를 향해 말하고 싶어요. 윤희와 유정들이 더 무릅쓰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길 원한다고요.
오랜만에 만나는 소설집입니다. 이 꽉 찬 소설집이 한 권으로 엮이기까지 소설집을 기다린 독자가 많이 계실 거예요. 독자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2021년 봄을 막 떠나보내면서 독자분들과 만나게 돼 반갑습니다. 이 소설들 중 한 단편에서 ‘지금은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쓰는 인물이 나오는데요. 아직은 보내지 못할 것만 같은 편지를 혼자 쓰고 있는 누군가에게 제 글이 또 다른 편지처럼 가닿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