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X 서사 X 고딕 X 스릴러라는 매력적인 키워드와 강화길, 손보미, 임솔아, 지혜, 천희란, 최영건, 최진영, 허희정 작가가 만났습니다. 앤솔로지 소설집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를 출간한 작가 여덟 분께 여성서사와 우리의 삶을 스릴러로 만드는 것에 관해 5문 5답으로 여쭸습니다. 각 소설가의 세계가 잘 드러나는 답변을 함께 소개합니다. | 질문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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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
" 그러다가 어떤 계기에 의해서 마음이 뒤집어지고, 그에 따라 익숙한 장소를 낯설게 느낄 때, 저 역시 혼란을 느끼면서 주변을 둘러보게 됩니다."
Q. 처음 이 기획에 대해 제안을 받았을 때의 기분, 생각이 궁금합니다.
원래 고딕소설을 좋아하고, 나름대로 계속 써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매우 기뻤습니다. 즐겁게 작업한 것 같아요.
Q. 소설을 읽으며 이 신선한 이야기들도 사실 얼개 자체는 많이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자라면서 알게된 어떤 이야기/사건 중에서도 이런 불길한 / 부적절한 소문의/ 실제 사건의 희생양인 여성들이 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익숙한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어떤 이야기를 낚아채는 지점도 늘 거기에 있는 것 같고요.
Q. 소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 '공간'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포를 만들어내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무서운 공간을 구현하는 걸 좋아하긴 합니다. 그런데 (주인공에게) 익숙한 공간이 좋아요. 편하게 생각하는 곳일수록 처음에는 무덤덤하게 묘사할 수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러다가 어떤 계기에 의해서 마음이 뒤집어지고, 그에 따라 익숙한 장소를 낯설게 느낄 때, 저 역시 혼란을 느끼면서 주변을 둘러보게 됩니다. 그 느낌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해요.
Q. 이 소설집은 여성 / 서사 / 스릴러로 함께 읽힙니다. 이 소설집을 읽은 독자에게 이 소설집 이후 생각을 정리해나가기 위한 다음 책을 추천해주신다면 어떤 책이 있을까요.
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를 추천합니다. 지금도 종종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 책을 조금만 더 일찍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동시에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이 부러워요. 정말 재밌고, 흥미진진하고, 이상하고, 황당하고 무섭습니다.
Q. 이 소설을 읽고난 후의 스산함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새삼스럽게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 소설 이후,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소망 혹은 바람을 듣고 싶습니다.
소설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소설은 어떤 식으로든 결말이 나오잖아요. 마무리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지만, 실제 삶은 늘 이어지고 끝이 없고…… 늘 책의 첫 장을 펼치는 기분이에요. 끝이 없는 이야기를 계속 읽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어떤 모습이 나올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읽고, 쓰고, 수정해가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이어지겠죠.
손보미
"우리 자신이 여성에 대해 떠올리는 어떤 전형적인 이미지(들)이 있는 것 같고 거기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냥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말씀을 덧붙이셨어요."
Q. 처음 이 기획에 대해 제안을 받았을 때의 기분, 생각이 궁금합니다.
재미있고 뜻깊은 기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전에도 여성으로서 여성이 겪는 (실체를 쉽사리 알 수 없는)불안감에 대한 소설을 쓴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너무 본격적이라서 (말도 안 되는)책임감과 약간의 부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잘 쓸 수 있을까? 무엇보다 고딕 스릴러, 라는 장르적 재미를 독자분들이 많이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Q. 소설을 읽으며 이 신선한 이야기들도 사실 얼개 자체는 많이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자라면서 알게된 어떤 이야기/사건 중에서도 이런 불길한 / 부적절한 소문의/ 실제 사건의 희생양인 여성들이 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대답이 적절할지 모르겠는데, 최근에 제 장편소설을 읽으신 분이 그 소설에 나오는 여성들이 하나같이 다 ‘이상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자신이 여성에 대해 떠올리는 어떤 전형적인 이미지(들)이 있는 것 같고 거기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냥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말씀을 덧붙이셨어요.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해요. 여성의 모습은 아주 다양하고 하나의 언어로 통합되지 않는 것인데, 그런 것들이 은연중에 강요된 것 같고 내면화된 것 같아요.
Q. 소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 '공간'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포를 만들어내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는 제 소설에 나오는 장소가 아주 오래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여성들이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공간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음울하고 유구한 역사나 구조의 문제가 드러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일제시대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을 배경으로 했습니다. 원래는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하지는 않지만, 구글링으로 제가 딱 떠올린 장소의 이미지를 찾으려고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고, 한동안 제 작품에 나오는 저택을 참고한 이미지가 제 노트북의 바탕화면이었습니다.
Q. 이 소설집은 여성 / 서사 / 스릴러로 함께 읽힙니다. 이 소설집을 읽은 독자에게 이 소설집 이후 생각을 정리해나가기 위한 다음 책을 추천해주신다면 어떤 책이 있을까요.
최근에 《퍼펙트마더》와 《몸을 긋는 소녀》를 읽었습니다. 두 작품은 둘 다 여성 범죄자와 범죄자를 추적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두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사회적 계급이나, 화자의 톤, 전체의 분위기 같은 것은 전혀 다릅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도 다르고, 범죄자를 쫓는 방식이나 이야기의 톤, 화자의 태도 혹은 주제 의식 같은 것도 전혀 다릅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이 전혀 다른 것 같은 두 소설에는 사회가 은연중에 여성들에게 부과하는 정서적 억압 같은 것이 공통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물론 둘 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Q. 이 소설을 읽고난 후의 스산함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새삼스럽게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 소설 이후,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소망 혹은 바람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아주 많잖아요? 그 모든 것들이 허공으로 그냥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우리가 미처 언어화할 수 없었던 것이 사라지지 않기를, 우리들이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임솔아
"진심어린 걱정을 꾹꾹 담아서 그런 문자메시지를 보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Q. 처음 이 기획에 대해 제안을 받았을 때의 기분, 생각이 궁금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은 스릴러와 다름이 없는데, 나는 한 번도 스릴러를 써본 적이 없구나, 써보고 싶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Q. 소설을 읽으며 이 신선한 이야기들도 사실 얼개 자체는 많이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자라면서 알게 된 어떤 이야기/사건 중에서도 이런 불길한 / 부적절한 소문의/ 실제 사건의 희생양인 여성들이 늘 있었던 것 같아요.
소설은 대부분 과거형 시제를 사용해서 지금으로부터 약간 거리를 벌려놓는데요. 현실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도무지 과거형이 되지 않고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이야기가 되어버리고요. 점점 무감해지면서 뻔하게 받아들이게 될까봐 저는 그걸 늘 염려하게 되는데, 그게 소설쓰기의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Q. 소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 '공간'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포를 만들어내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처음 면허를 땄을 때에는 회전 교차로를 무서워했습니다. 신호가 없는 상태에서 각각의 방향에서 온 차들이 뒤섞이다보니, 금방이라도 다른 차와 부딪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회전 교차로는 일반 교차로에 비해 사고율이 낮다고 해요. 공포감을 형성하는 공간이라서 운전자가 더 조심할 수밖에 없어서요. 실제로 무서운 장소는 서로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히려 가장 안전하고 가장 따뜻하고 가장 이상적이라 느껴지는 공간이 가장 무서운 공간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이 소설집은 여성 / 서사 / 스릴러로 함께 읽힙니다. 이 소설집을 읽은 독자에게 이 소설집 이후 생각을 정리해나가기 위한 다음 책을 추천해주신다면 어떤 책이 있을까요.
봄알람에서 출간된 《김지은입니다》를 추천합니다.
Q. 이 소설을 읽고난 후의 스산함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새삼스럽게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 소설 이후,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소망 혹은 바람을 듣고 싶습니다.
부디 건강하라는 문자메시지를 가끔 받습니다. 저도 가끔 그런 문자메시지를 보냅니다. 진심어린 걱정을 꾹꾹 담아서 그런 문자메시지를 보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지혜
"언젠가 그 얘기를 꼭 소설로 쓰고 싶었거든요. 오래된 일본식 가옥과 그곳에 살던 여자들, 수상한 동네 사람들과 음침한 골목"
Q. 처음 이 기획에 대해 제안을 받았을 때의 기분, 생각이 궁금합니다.
편집자님의 전화를 받았을 때 저는 공항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짧은 연휴를 보내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데, 그러던 차에 연락을 받고 기분이 좀 이상했어요. 기획 내용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삼각지붕 집은 어릴 때 제가 살던 적산가옥에서 착안한 공간인데요, 언젠가 그 얘기를 꼭 소설로 쓰고 싶었거든요. 오래된 일본식 가옥과 그곳에 살던 여자들, 수상한 동네 사람들과 음침한 골목…… 여성-고딕 스릴러라는 테마와 더불어 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이야기를요. 그날, 서울행 비행기 안에서 이 소설의 초고를 쓰고 흥분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간 기억이 생생해요.
Q. 소설을 읽으며 이 신선한 이야기들도 사실 얼개 자체는 많이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자라면서 알게된 어떤 이야기/사건 중에서도 이런 불길한 / 부적절한 소문의/ 실제 사건의 희생양인 여성들이 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한자’가 바로 그 ‘부적절한 소문’의 여자예요. 그러나 결국, 소문에는 한자뿐 아니라 주인공과 주인공을 둘러싼 어른들 또한 포함돼요. 흑과 백, 너와 나,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기준 자체가 고립된 공간의 편견과 무지에서 출발하고, 그게 눈덩이처럼 불어나 끝없는 오해가 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소문이라는 게 단지 부적절한 상태 그 자체가 아닌가, 이 소설을 쓰면서 생각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런 부적절한 여자들에 대해 말해야겠다, 부적절하다고 손가락질 받던 여자들. 희생양이었던 여자들, 불길함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저주받았다 욕먹는 여자들.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단 걸 이 소설을 쓰며 알게 됐어요.
Q. 소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 '공간'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포를 만들어내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 소설의 공간은 제가 어릴 적 살던 집에서 착안했어요. 사실 그 집을 소설 속으로 옮겨오고 싶었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어요. 기억 속 집은 낡았지만 포근하고 또 아름다운 면이 있는데, 소설에서 그걸 표현하는 게 무척 어려웠어요. 아름다움인지 불편함인지, 공포인지 기쁨인지. 그 모든 감정과 상황이 공존하는 공간일수도 있을 거예요. 이 소설을 쓰며 또한 예전에 살던 집의 기억을 떠올렸는데요, 층간소음을 이유로 아래층에 살던 사람이 저와 제가 사는 층의 사람들을 위협한 적이 있어요. 그때 집 안에서 극심한 공포를 느꼈어요. 집이, 그동안 내가 살며 소중하게 생각하던 공간이 한순간에 낯선, 증오의 영역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면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됐어요. 친숙한 공간이 영원하지 않고 갑자기 괴물의 얼굴로 변해 나를 헤칠 수 있다는 것. 공간은 집이나 건물처럼 물리적인 곳일 수도 있고 집단이나 사회, 관계처럼 무형의 커뮤니티일수도 있죠. 어느 쪽이든 공간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가기란 어려운 것 같아요. 그게 바로 익숙한 공간의 공포스러운 점 아닐까요?
Q. 이 소설집은 여성 / 서사 / 스릴러로 함께 읽힙니다. 이 소설집을 읽은 독자에게 이 소설집 이후 생각을 정리해나가기 위한 다음 책을 추천해주신다면 어떤 책이 있을까요.
김순이 선생님의 『제주신화』를 추천하고 싶어요. 제주는 특히 여성 신과 영웅들의 활약이 대단한 곳이라, 여성 서사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공간이기도 해요. 여성들의 역경과 고난, 죽음과 삶이 특수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개연성을 획득하는지, 거의 모든 장르로 보여주는 이야기가 바로 제주의 신화라고 생각해요. 그곳에선 정말 여자들이 사라지고, 찢기고, 훼손되었다 살아나서 신이 돼요. 제 다음 소설의 모티프가 되는 부분이기도 해서,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에 수록된 소설들과 더불어 제 소설도 재밌게 보셨다면 연관성을 찾아보는 것도 즐거운 독후 활동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Q. 이 소설을 읽고난 후의 스산함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새삼스럽게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 소설 이후,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소망 혹은 바람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미래’라는 단어가 궁금했어요. 나에게 미래가 있을까? 이 세상에 미래가 있을까? 우리들에게 미래가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떠올렸지만,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답을 모르기 때문에 지금을 더욱 열심히 살고, 소설을 쓰고 또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삶을 바란다 해도 그게 반드시 현재의 노력과 이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의 고통이 반드시 내일의 고통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미래’라는 말이 요즘처럼 와 닿은 때가 있었나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열렬히 말하고, 읽고, 얘기하고,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면 또 다른 말할 거리, 읽을거리가 생기고, 생각하고, 또 말하고 싸우고… 미래는 그런 게 아닐까요? 말하고 쓰고 읽다 보면 알게 되는 것. 혹은 모두가 말하고 쓰고 읽으며 사는 것. 생각해보니(답을 찾은 것 같지만) 그건 전 국민이 알라딘 플래티넘 회원이 되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네요.
천희란
"저는 언제나 여성들이 더 자유롭게, 가혹한 검열과 비판이 두려워 물러서는 일 없이 자신의 구체적 삶에 대해 발화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요."
Q. 처음 이 기획에 대해 제안을 받았을 때의 기분, 생각이 궁금합니다.
무조건 참여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간혹 특정한 소재나 기획에 맞춰 작품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아 소설을 쓰는 게 저에게는 꽤 흥미로운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기획의 제약이 새로운 자극이 되기도 했고, 작품을 쓰는 방식을 확장시켜주기도 했고요. 그런데 ‘여성-고딕-스릴러’라니 더 물을 것도 없었죠.
Q. 소설을 읽으며 이 신선한 이야기들도 사실 얼개 자체는 많이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자라면서 알게된 어떤 이야기/사건 중에서도 이런 불길한 / 부적절한 소문의/ 실제 사건의 희생양인 여성들이 늘 있었던 것 같아요.
작가의 상상력은 현실과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으니까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경험하고 느껴온 것들이 작품에 직간접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작품은 익숙하지만 쉽게 언어화되지 않았던 것에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하거나 모호했던 것들을 선명하게 보이도록 만드는데, 그런 과정이 반드시 읽기에만 해당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쓰면서도 깨닫게 되는 것이 있거든요. 그게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언제나 ‘무엇’을 쓸 것인가 보다 ‘어떻게’ 쓸 것인가를 더 고민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한 듯하고요.
Q. 소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 '공간'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포를 만들어내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공간은 고딕소설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이자 매력적인 클리셰이기도 한데요. 집이나 성과 같은 고딕소설의 전통적인 장소들은 여성의 이동을 제한하거나 억압하는 장소였지만, 바로 그런 이유에서 여성 저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확장시키는 공간이기도 했어요. 공간의 억압이 불러일으키는 불안이나 공포가 소설의 중요한 테마가 되었던 것인데요. 그렇게 보면 고딕소설에서 공간은 단순히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복잡한 의미를 형성하죠. 그래서 작품을 쓰는 동안에 고딕적인 공간의 클리셰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 것인지, 어떻게 공간과 서사가 유기적인 관계를 맺도록 할 수 있을지를 특별히 염두에 두었던 것 같아요.
Q. 이 소설집은 여성 / 서사 / 스릴러로 함께 읽힙니다. 이 소설집을 읽은 독자에게 이 소설집 이후 생각을 정리해나가기 위한 다음 책을 추천해주신다면 어떤 책이 있을까요.
이 앤솔러지에 함께한 강화길 작가가 최근에 펴낸 《화이트 호스》와 조이스 캐럴 오츠의 《흉가》를 추천하고 싶어요. ‘여성-고딕-스릴러’라는 테마를 모두 아우르는 동시에 무척 세련되게 재구성하고 있는 흥미진진한 소설들이고요. 무엇보다 둘 다 단편집이어서 여름의 무더위와 싸우며 아껴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Q. 이 소설을 읽고난 후의 스산함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새삼스럽게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 소설 이후,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소망 혹은 바람을 듣고 싶습니다.
여성을 향한 물리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편견 같은 비가시적인 여성혐오적 현실이 몇 편의 소설쓰기로 드라마틱하게 변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거예요. 다만 여성의 목소리가 담긴 소설을 쓰는 행위를 통해서 각자의 목소리를 내려는 여성들의 의지와 함께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해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 여성들은 과거의 자신과 싸우는 동시에, 여성주의적으로 이상적인 여성상을 만들고 지향해야 한다는 이중의 억압 속에 있어요. 수많은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억압과 폭력에 대항해 연대하지만, 그들이 처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잊히지 않았으면 해요. 요약될 수 없는 삶의 구체성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것이 지금 우리가 여성서사를 적극적으로 읽고 쓰는 중요한 의의 중 하나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는 언제나 여성들이 더 자유롭게, 가혹한 검열과 비판이 두려워 물러서는 일 없이 자신의 구체적 삶에 대해 발화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는 변화 또한 분명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최영건
"단순한 해피엔딩이지만 그런 장면이 무척 보고 싶었어요. 밤이 지나면 새로운 날이 오고, 서로를 아끼는 두 여성이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장면이요."
Q. 처음 이 기획에 대해 제안을 받았을 때의 기분, 생각이 궁금합니다.
흥미로운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소설가분들이 어떤 글을 써주실지 궁금했습니다.
Q. 소설을 읽으며 이 신선한 이야기들도 사실 얼개 자체는 많이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자라면서 알게된 어떤 이야기/사건 중에서도 이런 불길한 / 부적절한 소문의/ 실제 사건의 희생양인 여성들이 늘 있었던 것 같아요.
억압을 위한 가르침으로부터 서로를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자유를 찾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제 이야기에서는 두 여성이 함께 유령 성을 떠나요. 굳이 되돌아오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말들을 그다지 무겁지 않게, 쾌활하게 주고받아요. 단순한 해피엔딩이지만 그런 장면이 무척 보고 싶었어요. 밤이 지나면 새로운 날이 오고, 서로를 아끼는 두 여성이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장면이요.
Q. 소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 '공간'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포를 만들어내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무섭지만 빠져나갈 수 있는 장소를 쓰고 싶었어요. 현실의 가혹함 대신 저의 소망을 실현해줄 장소를 원했어요.
Q. 이 소설집은 여성 / 서사 / 스릴러로 함께 읽힙니다. 이 소설집을 읽은 독자에게 이 소설집 이후 생각을 정리해나가기 위한 다음 책을 추천해주신다면 어떤 책이 있을까요.
마가렛 애트우드의 《그레이스》가 떠오르네요.
Q. 이 소설을 읽고난 후의 스산함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새삼스럽게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 소설 이후,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소망 혹은 바람을 듣고 싶습니다.
미로(maze)와 미궁(labyrinth)의 차이는 출구의 유무라는 말을 들었어요. 미로는 헷갈리는 길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출구가 있고, 미궁은 한 갈래 길만 있을 뿐 출구가 없다고요. 미궁 같은 비극들이 실은 미로일뿐이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최진영
"그리고 언젠가 제가 ‘성에 사는 세 자매 이야기’를 쓰고야 만다면 그 소설도 꼭 읽어주셔요."
Q. 처음 이 기획에 대해 제안을 받았을 때의 기분, 생각이 궁금합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허허벌판 한가운데 성이 한 채 있습니다. 그 성에는 세 자매가 살고 있어요. 세 자매 중 맏언니는 뭔가가 아주 크거나 아주 작아서 비밀스런 존재고요, 둘째와 셋째는 일란성 쌍둥이입니다. 쌍둥이 자매에게는 퇴마 능력이 있어요. 쌍둥이 자매는 자신들의 퇴마 능력을 저주하지만 출몰하는 악령을 두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첫째 언니가……. 저는 정말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Q. 소설을 읽으며 이 신선한 이야기들도 사실 얼개 자체는 많이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자라면서 알게된 어떤 이야기/사건 중에서도 이런 불길한 / 부적절한 소문의/ 실제 사건의 희생양인 여성들이 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임신은 축복이 아닌 공포입니다. 그것이 축복일 때, 두 사람이 관계된 일에 두 사람 모두 축하를 받습니다. 그것이 결코 축복이 될 수 없을 때, 두 사람이 관계된 일에 한 사람에게만 책임과 비난이 쏟아집니다. 제가 쓴 소설은 현실보다 납작하고 소심하고 친절합니다.
Q. 소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 '공간'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포를 만들어내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소설을 쓸 때는 공간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크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허허벌판 한가운데 우뚝 솟은 성 한 채’를 포기한 상태였기에……. 질문을 읽고 제 소설을 다시 떠올려보니 일상적인 공간, 이를테면 ‘집’이 가장 공포스러운 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프라이빗한 공간이며 타인은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집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Q. 이 소설집은 여성 / 서사 / 스릴러로 함께 읽힙니다. 이 소설집을 읽은 독자에게 이 소설집 이후 생각을 정리해나가기 위한 다음 책을 추천해주신다면 어떤 책이 있을까요.
소설은 아니지만, 장영은 선생님의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추천합니다. 앤솔로지에 함께한 작가님들의 단행본 소설도 적극 추천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제가 ‘성에 사는 세 자매 이야기’를 쓰고야 만다면 그 소설도 꼭 읽어주셔요.
C) 송인혁
허희정
"제가 느끼기에는 장소 그 자체보다도, 사람에게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그런 종류의 불안에 이끌리는 부분이 있다는 게 무서운 것 같아요."
Q. 처음 이 기획에 대해 제안을 받았을 때의 기분, 생각이 궁금합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와, 재밌겠다!’였어요. 너무 흥미로운 기획이라서 냉큼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긴 했는데, 원고를 쓰려고 보니까 제가 고딕, 스릴러, 여성서사 셋 중 무엇에 대해서도 제대로 안다는 느낌이 들지가 않더라구요. 알아도 아는 것이 아닌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왠지 뭔가 중요한 걸 빼먹은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런 약간 불안하면서도 신나는 기분으로 작업에 임했던 것 같습니다.
Q. 소설을 읽으며 이 신선한 이야기들도 사실 얼개 자체는 많이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자라면서 알게된 어떤 이야기/사건 중에서도 이런 불길한 / 부적절한 소문의/ 실제 사건의 희생양인 여성들이 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그래요. 한때 <그것이 알고 싶다>를 열심히 봤었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그런 류의 탐사 보도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강력 사건들이 다 비슷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번 소설을 쓰면서 사건이 전면에 부각되는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구체적인 사건이 연상되는 것도 싫었고요. 오히려 이런 사건에서 한 발짝 빗겨난, 그러나 현실의 사건들이 지닌 자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에 대해서 쓰고 싶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저 자신이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런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Q. 소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 '공간'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포를 만들어내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숲속 작은 집 창가에>의 배경은 버려진 숲과 맞닿아 있는 소도시 P시입니다. 그 숲에서는 불길한 일들이 일어나고, P시의 사람들은 불친절하고 폐쇄적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숲을, P시를 떠나지 못하고요. 제가 느끼기에는 장소 그 자체보다도, 사람에게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그런 종류의 불안에 이끌리는 부분이 있다는 게 무서운 것 같아요.
Q. 이 소설집은 여성 / 서사 / 스릴러로 함께 읽힙니다. 이 소설집을 읽은 독자에게 이 소설집 이후 생각을 정리해나가기 위한 다음 책을 추천해주신다면 어떤 책이 있을까요.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케루》를 추천하고 싶어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 <숲속 작은 집 창가에> 원고를 다 쓰고 제일 먼저 집어든 책이기 때문입니다.
Q. 이 소설을 읽고난 후의 스산함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새삼스럽게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 소설 이후,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소망 혹은 바람을 듣고 싶습니다.
무서운 이야기가 정말 무서운 이야기이기만 한 삶. 불안을 예쁜 장난감처럼 갖고 놀다가 선반 위에 대충 올려놓고 나가서 놀 수 있는 삶. 그게 좋은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