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를 이끌어갈 한국문학의 얼굴들이라는 타이틀로 열 명의 작가를 모셨습니다. 물처럼 번지는 애틋함이 느껴지는 소설집 <여름의 빌라>를 발표한 백수린 작가의 서면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 질문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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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백수린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여름, 바닷가, 산책, 같은 단어가 함께 떠오르기도 합니다. 표제작 「여름의 빌라」의 ‘우리가 잠깐 머물렀다 떠날 그곳’이라는 단어를 보며 여름은 꼭 이런 계절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올여름은 예년 여름과는 조금 다른 여름이 되었는데요, 이 여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 모두가 그렇듯 저 역시도 이번 여름은 예년과 달리 조금은 무겁고, 조금은 쓸쓸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생활 속 거리 두기를 실천하며, 홀로 있게 된 많은 시간 동안 올해 출간이 예정되어 있는 원고들을 정리하고 함께 사는 강아지를 돌보며 나름대로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백수린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사건 이후 지속될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세계를 지속하게 하는 것은 폭력과 증오가 아니라 삶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여름의 빌라」)라는 문장이 좋았어요. 우리는, 소설 속 사람들은 좋아하는 이들에게 고의로 상처를 주고 그 순간을 ‘끝내 물에 녹아내리는 물감처럼 한없이 희미해지던’ 모습으로 선명하게 기억하면서도 삶을 계속하게 된다는 점에서요.


A. 생활인으로서의 저는 많은 것들에 회의하고 불신하는 사람이지만, 소설을 쓰는 저는 삶에서 희망을 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런 믿음이 없다면, 저에게는 소설을 쓰는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소설쓰기는 삶과 사랑 쪽으로 나아갈 힘이 우리에게 있다고 믿는 일입니다. 




Q. 「흑설탕 캔디」의 ‘난실’의 단정하고 비밀스러운 모습을 좋아합니다. 특히 이 소설의 마지막 한 단락이 묘사하는 비밀스러움과 난실의 말투가 좋았어요. ‘조금은 고통스러운 것 같지만, 사실은 조금도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는 얼굴로’ 난실이 꺼낸 말에 대해 오래 떠올려보게 되었습니다.


A. 「흑설탕 캔디」는 개인적으로 이번 소설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마지막까지 표제작으로 삼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로요. 원래는 난실이란 할머니를 직접 화자로 내세우는 소설을 구상했지만, 결국엔 손녀의 눈을 통해서, 상상하는 버전으로 이야기를 만들게 되었어요. 소설을 쓰는 내내 '난실'의 사랑스러움이 독자에게도 전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고 소설을 썼습니다.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에 '난실'이 익명의 노인이 아니라, 자신만의 빛과 향기를 품은 매력적인 여인으로 기억된다면 무엇보다 기쁠 것 같아요.




Q. 최근 번역 작업을 하신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직접 번역해서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은, 혹은 이미 번역된 외국문학 중 더 많은 독자와 함께 읽고 싶은 작가/작품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지금 막바지 작업 중이니까 아마도, 모든 것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올여름이 가기 전에, 또다른 번역서를 독자들에게 선보일 수 있을 듯합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이라,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되는데요.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인지는 출간시의 즐거움을 위해 남겨두고 싶어요. 한국인들이 많이 사랑하는 프랑스 여성 현대 소설가의 작품이라는 정도만 힌트로 알려드리니,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Q. 「시간의 궤적」 속 '언니‘와 ’나‘는 ’에리크 로메르,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취향의 공통점만으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집니다. 백수린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친구라면 독자들도 그 친구와 섬세한 우정을 나눌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을 듯해요. ’백수린다움‘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인사를 건네주실 수 있을까요.


A. 안녕하세요. '백수린다움'을 좋아하는 여러분은 겉으론 조용하고 소심해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 깊은 곳에 타오르는 불꽃을 가진 분들이시군요. 그런 여러분께 이번 여름, 새로운 소설집으로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어 반갑습니다. 사 년 동안 정성껏 쓴 단편소설들이 여러분께 즐거운 선물처럼, 오랫동안 기다렸던 만남처럼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잠시라도, 이 지치고 더운 계절에 여름의 빌라에 다녀온 듯한 기분을 느끼신다면, 그리고 그 여름의 빌라에서 각자가 살아온 '시간의 궤적'을 되돌아보시거나 잠시 잊고 살았던 '아카시아 숲'을 떠올릴 수 있다면 저는 무척 기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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