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있는 한국문학의 세계를 감각적인 구성으로 소개해온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가 장르소설 시리즈를 소개합니다. 이영도, 듀나, 조현, 백민석, 김희선, 최제훈 작가의 장르소설이 2020년 4월부터 9월까지 독자를 찾습니다. 알라딘에서 소개하는 핀 시리즈 특별관에서 작가들의 다채로운 답변을 함께 소개합니다. 세번째 만남은 조현 작가입니다. | 질문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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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상상으로만 가능할 듯하던 일이 현실로 벌어지고 있는 2020년입니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 이 시기의 일상 혹은 관심사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어려서 장마가 한창이면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변이나 다리 위에서 넘칠 듯이 흘러가는 물을 정신 없이 바라보곤 했습니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비일상적인 사건에 대한 호기심이 강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장르소설에서나 찾아볼 법한 코로나19 사태가 인류사에 큰 획을 긋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런 시기일수록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는 작품들을 다시 꺼내 보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지나간 드라마를 다시 보고 있는데, 정말로 좋았다고 독자님들께 고백하고 싶은 작품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일드 <너의 손이 속삭이고 있어>와 미드 <11/22/63>입니다. 마치 어린 시절 내 눈을 사로잡았던 황토빛 탁류처럼 여러분의 눈을 쏙 붙잡을 좋은 작품이지요.
Q. 장르소설을, 특히 SF를 읽고 쓰는 이유, 그 마음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어슐라 르 귄은 그의 대표작 『어둠의 왼손』 서문에서 SF란 ‘사고 실험’이라는 통찰을 보여준 적이 있지요. ‘오늘 저녁으로 탕수욕을 시킨다면 부먹으로 먹을까 찍먹으로 먹을까’라는 소소한 고민부터 ‘지구상의 인류가 모종의 사건으로 한순간에 모두 불임이 된다면 인류 문명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라는 공상 역시 사고 실험의 일종이 되겠지요. 그리고 우리는 사고 실험을 통해 삶을 보다 넓고 정교하게 구성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SF의 테마를 보면 지금은 상식적인 개념들, 이를테면 가족 제도나 모성애가 사라진 사회를 기술하고 있는 작품들이 꽤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버지나 어머니, 형제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거나 모성애를 윤리적으로 죄악시하는 미래를 다룬 작품들이죠. 물론 이런 문제 의식 역시 사고 실험의 일종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실험을 통해 우리 스스로의 가치관에 도전하고 우리의 상식을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돌아보게 됩니다. 심지어 SF는 그 자신의 논리적 기반이 되는 현대 물리학의 법칙마저도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권위에 도전하고 새로운 가치를 제시한다는 점, 이게 SF가 가진 많은 매력 중의 하나이기에 저는 SF를 사랑합니다.
Q. 독자와 함께 읽고 싶은 장르소설, 혹은 추천하고 싶은 장르문학 작가가 있다면, 어떤 작품 혹은 작가일까요?
진 M. 아우얼 작가의 『대지의 아이들』 시리즈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3만년 전 선사시대를 살아간 크로마뇽인 소녀 에일라가 주인공이지요. 이 더운 여름, 에일라와 함께 선사시대를 체험하고 나면 코로나19와 같이 현대사의 대단한 사건 역시 인류의 역사에 있어 인간이 극복해 왔던 무수한 격변 중의 하나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즉, 에일라의 모험과 용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 행성의 연대기에 있어 인류세(人類世)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지요.
더불어 필립 K.딕의 광기어린 세계에도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현대문학에서 발간된 필립 K.딕 전집은 그 번역의 질에 있어서나 장정의 아름다움에 있어서 출판계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SF계의 이단아와도 같은 필립 K.딕을 통해 선사시대에서의 크로마뇽인 소녀의 모험은 순식간에 수만년을 건너 뛰어 먼 미래의 인류사로 점프할 수 있지요.
Q. 조현 작가의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를 즐겁게 읽었습니다. 현재 품절 상태인데요, 재출간 계획이 있을지요? 이 작품 외에도 핀 시리즈 이후 조현의 세계를 새롭게 여행하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솔직히, 첫 소설집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의 재출간에 대한 질문은 처음 받았습니다. 앞으로 같은 문의를 아홉 분께 더 받는다면, 출판사에 재출간 가능성을 문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재출간을 원하신다면 forlux21@kookmin.ac.kr로 요청해 주세요. 출판사에 여러분들의 마음을 꼭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주 : eBook 으로는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706334 )
더불어 등단 이후 여러 매체에 띄엄띄엄 발표했던 ‘클라투 행성 통신’ 시리즈 단편들을 묶어 조만간 장편소설 내지 연작소설집으로 선보일 계획이니 독자님들의 응원을 부탁 드리겠습니다.
Q. 조현 작가와 장르의 세계를 함께 걷고 있는 알라딘 독자에게 한마디 부탁 드립니다.
아까 첫번째 질문에서 고백했던 미드는 원작소설이 있답니다. 스티븐 킹의 『11/22/63』이 그것이에요. 그런데 이 황홀한 소설의 맨 마지막 대목에는 다음과 같은 멋진 대사가 나옵니다.
“당신 정체가 뭐예요, 조지?”“다른 생에서 당신과 알고 지냈던 사람이에요.” 잠시 후 우리는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세월을 잊고 춤을 춘다. (2권, 735쪽)
그렇습니다. 그리고 독자님과 저는 다른 생에서 알고 지냈을지도 모르지요. 이 짧은 서면 인터뷰를 통해, 독자님과 아주 작은 인연을 맺은 저는 독자님이 다른 생에서 알고 지냈던 비밀 친구이거나 서로 상처주지 않고 헤어졌기에 가끔 생각나는 연인이었거나, 혹은 당신이 몹시도 힘들어 하던 어떤 사건을 겪은 후에 조용히 당신을 위로하던 작고 다사로운 검정 고양이였을지도 모르지요. 이게 바로 장르의 힘입니다. 세상의 모든 장르는 인간의 가장 내밀한 욕망을 소환해 내어 그것을 접하는 잠시 그 비밀스러운 다른 생을 당신께 보여주지요. 어떻게 더 욕심을 낼 수 있을까요? 장르는 그것으로 족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