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한낮의 연애>, <경애의 마음> 등의 작품을 차곡차곡 쌓으며 독자의 신뢰를 함께 쌓아온 김금희 소설가가 신작 소설집을 발표했습니다. <오직 한 사람의 차지>를 읽고 짧은 질문을 건넸습니다. 독자와 함께 나누고 싶은 소설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질문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2018년 <경애의 마음>,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나의 사랑, 매기> 세 권의 책으로 독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2019년까지 계속 바쁘셨을 듯한데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올해는 계속해서 단편 작업을 하고 있어요, 계절마다 한 편씩 써내는 강행군인데, 오늘 대체 내가 왜 이런 힘든 일정을 잡았나 고민해보니 이상한 말이지만 단편 쓰기의 괴로움에 대해 잠시 잊었더라고요. 2018년 중반부터 단편 작업을 드물게 하다보니 이 만만치 않은 작업에 대해 간과하고, 단편은 원래 그 무렵 제가 가지고 있는 문학적 기량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장르이니까 그걸 확인하고 해내고 싶은 마음에 청탁을 받아 어렵게 어렵게 써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름에는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작가의 말’에도 썼듯이 평생 살았던 도시를 떠나 다른 도시로 이사를 왔어요. 그 과정은 지금까지의 저를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상처가 있다면 수습하거나 다음의 숙제로 남겨두는 시간이었어요. 못할 것 같은데 했고 지금은 그 시간을 지나서 적응을 하고 있어요. 





<경애의 마음> 속 '공상수'도 실은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소설집에는 이러한 '이상한'사람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사장은 모자를 쓰고 온다>의 은수와 사장. '어딘가 다른 중력에서 사는 듯한 느낌'이 드는 <체스의 모든 것>의 노아 선배. "김수정이 그동안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이상한 남자는 윤이었다."로 묘사되는 <새 보러 간다>의 윤 같은 사람들. 이 사람들의 '독특함'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로 이 사람들이 얼마나 독특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인지 느끼게 합니다.


단편 속 인물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맺는 관계들이 그렇듯 어느 한 부분에 강조점을 두어 나타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사장은 모자를 쓰고 온다>의 두 사람도 그러한 면에서 서로 한 번도 마주보지 않는 애정의 감정이라는 축을 온전히 담당하고 있어서 이상하거나 알 수가 없을 것 같은 인상을 남긴 듯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기도 하잖아요. 정확히 알기 전에 사라지고 다시 이어졌다가도 어느새 다른 모습으로 되어 있고요. 그런 경험을 살려서 인물을 불러오고 최대한 알 수 있는 만큼만 세공해서 그려넣고 그 개성이 어느 정도 전달되었다면 저는 작가로서 한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러니까 소설을 빌려 말한다면 <새 보러 간다>의 김수정이 그랬듯 “나는 아주 이상한 남자를 최근에 만났는데 왜 이상했는지를 오늘은 까먹고 말았다. 그렇게 휘발된 이상함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인데 이상함의 내용은 텅 비어 있으니 참으로 이상하도다.” 하는 식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소설에서도 수정이 윤에 대해서 인간적으로 이해하게 되듯이요. 만약 여러분이 이상함을 느끼셨다면 다행히 제가 느낀 의문이 휘발되지 않고 소설에 남았다는 얘기일 것 같아요.


 


소설 속에선 이 '이상한' 사람들에게 품은 애정이 느껴집니다. 단순한 특성만으로는 호감이 가는 사람,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으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장은 모자를 쓰고 온다>의 사장은 호감이 가지 않는 매뉴얼을 지닌 사람인데도, 편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기분이 들게 하는 사람이기도 해요. <체스의 모든 것>의 '나'는 노아 선배가 무안을 당하는 상황을 보며  "...선배 얼굴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내 안의 무언가가 파괴되는 것을 느꼈다."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이상함'을 의식하고 있는 독자라면, 이 이상함에 대해 '편을 들어주는' 이야기가 위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점에 따라 누구나 별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 있겠지요. 어쩌면 사회에서 집단으로, 어떤 로직을 만들어 개인들을 정상이라는 한편의 방향으로 몰 수도 있을 테고요. 그러니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하는 생각과 행동에 대해 어느 정도의 사회적 규율과 타인들의 평가를 의식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 생각을 해보았던 사람들이라면 이 이상함에 대한 각자의 사유를 획득해낼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더 바랄 것이 없고요. 




위로라는 관점으로, 눈이 머무는 문장이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상상력만 있다면 불운한 사랑이란 없는 것이었다."(<사장은 모자를 쓰고 온다>) , "어쩌면 원래 산다는 것이 그런 걸까.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천체의 무엇인가에까지 계속 빚을 지고 가늠도 못할 잘못들도 하면서 사는 것일까." (<오직 한 사람의 차지>) 같은 문장이, 실패한 사람, 스스로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 모욕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신이 '오랜 불행' 같은 것들을 품고 지내는 사람들의 편이 되어준다고 느꼈어요.


그랬다면 정말 다행한 일이에요. 일상을 살면서 느끼는 미궁의 순간들, 당혹스럽기도 하고 뭔가 마음을 흔들기도 하는데 도무지 이름 붙일 수 없을 것 같은 순간들을 문장으로 옮겨냈을 때 저는 제가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무언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오랜 불행'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인데 우리가 살면서 마음에 켜켜이 얹어놓았던 그 감정들을 꺼내어놓을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에 대해 해명해낼 수 있고 직시할 수 있고 그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일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미 해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그것을 소설의 형식을 가져와 담아낼 수 있는 것이죠. 




소설을 시작할 때 '빡치는' 감정에서 시작하실 때가 있다는 악스트 24호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작가의 말’에는 이 소설을 준비하는 시간을 이런 문장으로 적어주셨어요. "사랑이 있다면 사랑이 있다고, 잃어버리거나 비극과 직면했다면 슬프다고 썼다. 어리석었다면 고통스러울 정도로 어리석었다고 용서할 수 없을 듯한 순간에는 용서할 수 없으리라고 썼다. 완전히 혼자라는 생각이 들면 그렇다고, 하지만 그것이 강제적인 고립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썼다." 


'이상한' 사람일지라도 좋아할 만한 부분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마음이 있기에 그들에게 주어진 부당한 상황이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게 아닌가 생각을 했습니다.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을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시게 되었는지, 2019년에 독자의 손에 놓이게 될 이 소설집이 어떤 마음으로 가닿길 바라는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오늘 신촌에 일이 있어 다니러 갔다가 당인리발전소 근처의 카페에서 이 질문을 읽고 있어요. 신촌의 보도를 걷는데 문득, 십수 년 전 첫 직장을 다닐 때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때는 왜 그랬는지 집과 직장을 잇는 단순한 동선만 오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근처에 홍대라는 근사한 곳이 있는 데도 거기까지 놀러가는 일도 거의 없었죠. 그 바쁜 마음, 타도시에 와서, 혹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좀 위축되어 있던 스물세 살, 일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것을 소화하기 위해 지금보다 더 위태로운 결기를 지녀야 했던 순간들이 언뜻 떠올랐다가 사라졌어요. 만약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었다면 그 순간을 놓지 않은 채 완전히 그 안으로 들어가 머물렀겠지요, 하지만 걷는 동안에는 저는 잠깐 그것을 환기하고는 열심히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갔어요. 꼭 제 소설만이 아니라 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독자 여러분의 그 내밀한 내면에 파문을 내겠지요, 보게 하고 느끼게 하고, 돌이켜보게 하고. 그건 어떻게 보면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일지도 몰라요. 심지어 스스로 돈을 지불하고 그런 시간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이미 대단히 용감한 사람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내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읽거나 느끼거나 생각한 뒤에는 환한 밖으로 나와서 씩씩하게 걸을 줄 아는 마음을 여러분들이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쓰는 저도 그랬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쓰고 읽고 있으니까요.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과 그것에 잠식당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 그 감각으로 제 소설들을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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