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오늘의 작가상> 심사 경위



키워드는 여전히 ‘페미니즘’, 더 강력히 호출된 ‘여성 서사’


2018 오늘의 작가상의 영예는 『뱀과 물』 배수아 작가에게 돌아갔다. 서로 다른 취향과 기준을 지닌 다섯 명의 심사위원이 모인 자리였으나 하나의 현상에는 모두 수긍했다. 오늘날 작품을 써내는 작가와 작품을 선택하는 독자, 양방향으로 ‘여성의 서사’가 강한 영향력을 지닌다는 것이었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젠더 감수성’과 ‘페미니즘’은 독자가 작품을 선택하는 중요한 키워드이자 그것을 읽어 내는 프리즘이 되었다. 그 현상을 반영하듯 올해 <오늘의 작가상> 본심 심사에서 끝까지 겨룬 작품은 여성 서사의 양 극단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는 두 작품,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와 배수아의 『뱀과 물』이었다. 오늘을 담은 작품과 오늘이 비출 작품에 대한 지지가 팽팽했으나, 배수아의 작품에 드러난 독특한 ‘오늘’에 대해 이야기하며 표가 기울었다. 이 작품의 원시적이고도 현시적인 여성 서사가 2018년과 닿아 있는 절묘한 지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참석한 심사위원들 모두 『뱀과 물』이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여성 서사가 더 넓은 상상력을 획득하고 거듭 확장되리라고 예감했다. 문학평론가 강지희는 수상 작가인 배수아에 대해 “여성 서사의 스펙트럼에 대해 생각할 때 항상 떠오르는 작가”라고 말했다. 수상작인 『뱀과 물』에 대해서는 “특히 시대와 한 번도 일치한 적 없던 배수아의 작품 세계에서, 하필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에 쓰인 소설이 『뱀과 물』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라고 설명하며 작가의 수상을 응원했다. 









2018 <오늘의 작가상> 심사평



  배수아 소설에 여성이 돌아왔다. 『뱀과 물』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동안 적극적으로 젠더를 해체하는 실험에 몰두하던 배수아는 『뱀과 물』을 통해 또 한 번 문학적 전회를 이루어 냈다. 전과 달리 『뱀과 물』에는 여성 인물들이 강렬하게 부조되어 있고, 읽다 보면 그 인물들은 마트료시카처럼 겹겹이 겹쳐져 하나의 여성적 형상을 이룬다. 그러나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그 형상은 그림자처럼 흩어지며, 끝내 어떤 하나의 고정된 신화적 규범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배수아 소설을 두고 여성성을 탐구하고자 하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배수아 소설 속 여성은 성녀도 악녀도 아니며, 처음 보는 지느러미를 달고 영원히 어딘가를 헤매며 담담하게 절망적 자유를 만끽하는 새로운 생물체 같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배제되어있기에 여성적인 것이라거나, 비가시화되고 재현 불가능한 것의 드러남과 전복이라 말하며 여성 소설을 타자화하고 싶지는 않다. 『뱀과 물』은 그저 여성이 어떤 존재도 될 수 있는 자유를 보여 주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모호하고 난해한 꿈이 때로 현실을 압도하는 경험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이 소설은 그렇게 여성성의 감각을 확장시킨다.  

  새로 태어난 ‘오늘의 작가상’을 두고 지금 한국의 교양을 재편하는 상이라 생각해 왔다. 교양은 누구의 것인가. 언뜻 객관적으로 들리는 이 교양이라는 단어는 실은 한 사회의 헤게모니와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승인과 배제의 정치학이다. 지금 이 세계의 교양은 그간 무질서하고 비합리적이고 나쁜 취향이라 말해져 왔던 쪽으로 꺾이며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배제되어 왔던 그 자리는 여성과 성소수자들이 놓여 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제 어제의 나쁜 취향이 오늘의 교양이 될 것이다. 배수아의 『뱀과 물』이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에 이어 이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고 기쁘다. 여성 소설들은 이렇게 함께 계속 걸어 나갈 것이다.

―강지희(문학평론가)



『뱀과 물』을 뱀과 술, 이라고 종종 잘못 말하곤 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아마도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물잔에 맑은 술이 가득 담긴 것을 모르고 다 들이켠 다음 그대로 쓰러져 잠든 적이 있는데, 바로 그런 기분(「뱀과 물」)”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과감히 소설 속 “시곗바늘”을 떼어 내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들이 하나의 풍경이 되는 “회전목마” 위로 독자를 안착시킨다. 하여 이 기묘한 유원지 같은 소설은 순차적인 시간성을 거부함으로써 늘 비가시적으로 다뤄지던 여성의 유년 시절과 노년 시절을 드러내고, 곧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까지도 “피부 아래의 아득한 감각”으로 느끼게 만드는 데에 이른다. 

취중에 벌어진 일처럼, 어느 꿈속의 일처럼 흐릿한 순간들이 분명하게 있었음을 서사가 아닌 감각으로 증명해 내는 작품들에 나는 그저 홀릴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백 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경험이 더 낫다. 시간을 지우고, 사건을 지운 뒤 오롯이 남은 감각들은 입 밖에 내기 어렵고, 좀체 무어라 형용할 수가 없다. 이 비밀스러운 감각은 말해질 수 없기에 곧 모든 이야기가 되고,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오늘의 작가상> 본심에 오른 다수의 후보작들이 ‘오늘’을 보여 주고 있었기에 어떤 한 작품을 고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늘’의 기준에 대해 다시 한 번 자문하는 일이었다. 고민 끝에 내린 답은 이러했다. 어느 날 펼쳐보아도 ‘오늘’이 될 수 있는 작품을 고르는 것. 『뱀과 물』은 그런 작품으로 불리기에 충분했다. 모두가 한 번쯤은 보고 겪었을 환영(幻影)같은 순간을 불러오는 이 소설을 오늘도 환영(歡迎)하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믿기로 했다.

―박하빈(독자)



  무엇이 ‘배수아’를 멀리 있게 했던가. 20여 년 전 ‘신세대’의 부박한 취향들 속에서 황막하게 번득이던 그 고독한 격정과 불온함에 매혹된 때부터일까. 10여 년 전, 분절된 개별자들의 세계를 감싸는 그 자유롭고 선명한 언어의 추상성이 이룩한 창조적 정신의 높이 때문이었을까. 언제부턴가, 문자를 통한 사유와 상상이 꿈처럼 음악처럼 흐르는 그 장면들 속에서 줄곧 미끄러지며 헤맸기 때문일지도. 어쩌면 한 세대라고 말해도 될 시간이 흐르는 동안 ‘배수아’라는 고유명에 입혀진 이런 저런 기억들은 얼마큼 맞고 또 얼마큼 틀렸겠지만, 바로 그런 이유들로 사랑했고 또 그런 이유들로 충분히 친숙할 수 없었던 ‘배수아’와의 시간을 이제 다시 펼쳐본다면? 

  우리는 8권의 후보작을 앞에 두고 그 중 하나만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으로 뽑기 위해 숙고하는 중이었다. 난감한 고민과 흔들리는 판단이 오가며 각자의 마음들이 조금씩 뭉쳐질 때쯤, 문득 ‘배수아’에 대한 어떤 생각이 우리에게 점점 선명해졌다는 느낌을 서로 감출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배수아’와의 거리감이란 대체 무엇인지, 누구의 것인지, 어떻게 확신하는지, 우리 중 누구도 그 답을 안다는 듯이 말하지 않았고, 그러자 당연한 뭔가를 비로소 알게 된 기분이었다. 우리 앞에는 ‘오늘의 독자’가 선택한 『뱀과 물』이 놓여 있었으니까. 너무 낯설다, 지나치게 독특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당황스러운 소설이다 등등의 오래 굳은 수수한 감정(鑑定)에 끝내 갇히지 않은 ‘배수아’가 되려 우리에게 ‘오늘의 독자’를 소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오늘의 작가’가 오늘만 빛나는 작가가 아닐진대, ‘배수아’를 오늘에야 빛을 본 작가처럼 말해선 안 될 것이다. ‘배수아’를 읽고 또 읽고, 처음 읽고 다시 읽는 독자들을 언제나 빛나게 해 주는 작가로서, 어제도 그랬듯 내일도 그럴 것이라는 신뢰로써, 배수아는 2018년 오늘의 작가다.

―백지은(문학평론가)



  책방 ‘사적인 서점’을 열고 손님들의 독서 경험에 대해 들을 기회가 많아졌다. 왜 책을 읽는지, 어떤 책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이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소설은 어차피 다 가짜인데 왜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묻는 손님이 꽤 많았다는 거다. 그럴 때마다 나는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고 대답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 보는 경험은 소설이 아니면 할 수 없다고, 우리는 더 많은 소설을 읽으며 더 많은 타인이 되어야 한다고. <오늘의 작가상> 후보작 중에서는 『딸에 대하여』가 가장 그러한 책이었다. 딸에 대하여, 엄마에 대하여, 늙음에 대하여, 혐오와 배제에 대하여, 결국엔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하여. 

  『딸에 대하여』가 현실 세계에서 살을 맞대고 사는 타인의 삶을 경험하게 하는 소설이라면, 『뱀과 물』은 이야기가 이끌어 내는 허구의 세상과 만나는 매혹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작품의 독해는 쉽지 않았다. 순차적인 서사 진행 방식도 없고, 단어에 담긴 의미가 해석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빠져들었다. 본능적으로 끌렸다. ‘홀렸다’는 표현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직관의 독서, 유희의 독서. 새로운 독서 경험의 확장이었다. 작가가 만든 환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즐거움을 알려 준 배수아 작가의 <오늘의 작가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정지혜(책방 ‘사적인서점’ 대표) 



  작가가 온 힘을 다 해 완성한 한 권의 이야기를 평가하고 그 중 최고를 뽑는다는 것을 나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각자의 이야기는 모두 고유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상작이냐 아니냐에 따라 독서 여부가 결정된 적도 없다. <오늘의 작가상>에서 심사를 제안받았을 때 잠시 고민을 했다. 과연 내가 가장 좋은 작품을 골라낼 수 있을까하고. 하지만 ‘오늘’이라는 명제를 통해 한국 소설의 오늘을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 심사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8권의 책을 받고 한 상자의 선물을 받은 것 같아 매우 흡족했다. 책 중에는 내가 이미 읽은 책도 있었고, 다소 생소한 작가의 이름도 섞여 있었다. 독서할 때와 마찬가지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수상 여부와 횟수, 작가 이름에 절대 휘둘리지 말 것. 8권의 책을 읽으며 한국 소설에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새삼 느끼며 그에 무지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그들은 가볍고, 무거우며, 전위적이고, 세련되고, 시의성 짙은,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각자의 고유한 색을 띠고 있었다. 따라서 심사는 더더욱 쉽지 않았다. 

  <오늘의 작가상>이라는 상이 가지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을 대변하는 작품이 받아야 할까? ‘오늘의 작가’란 오늘날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작가를 말하는 것일까? 혹은 오늘날 독자들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작가여야 하는 것일까? ‘오늘’이라는 명제는 참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수상작을 결정하는 것 또한 <오늘의 작가상>의 ‘오늘’이 의미하는 바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본심작에는 현 시대에 문제 제기를 하는 소설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 중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는 우리가 짊어진 사회적인 문제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하려고 할 때 다가오는 수많은 갈등과 고민들을 매우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또한 다른 이를 이해하는 과정은 곧 자기 자신의 이해라는 작은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다. 배수아 작가의 『뱀과 물』은 인간이 어떤 존재나 자기 자신, 혹은 본질에 집중할 때 펼칠 수 있는 순수한 상상과 그 이상의 경이를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는 소설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며 ‘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라는 물음에 선명한 그림으로 답을 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 두 작품을 두고 심사위원들의 수많은 대화가 오고 갔다. 지난 해 수상작인 『82년생 김지영』에 이어 『딸에 대하여』가 수상할 경우 <오늘의 작가상>은 어쩐지 그 의미를 하나의 통로로 단단히 굳히게 될 것이라고 느꼈다. 우리의 오늘을 여실히 드러내며 그 안에서 나름의 성찰을 유도하는 것이 ‘오늘’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당선작은 『뱀과 물』로 결정되었다. 이는 <오늘의 작가상>의 ‘오늘’을 보다 넓은 의미로 바라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들이 내일로 이어지는 새로운 가능성과 다양성에 주목했다.


―지은경 (잡지 《Chaeg》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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