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더의 게임 - 엔더 위긴 시리즈 1 엔더 위긴 시리즈 1
올슨 스콧 카드 지음, 장미란 옮김 / 시공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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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이야기는 현실세계에선 결코 영웅이 될 수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현실이라면 억지스러울 정도로 별 볼일없는 듯한 인물이 우여곡절끝에 세상을 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는 영웅이 소설속에선 가능하다. 하긴 그게 아니더라도 어쨌든 대부분의 영웅들의 이야기는 유쾌하고 만족스러워서 온통 불만투성이인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수도 있다. 드래곤 라자의 덤벙거리고 말썽꾸러기인 후치나 반지의 제왕의 보호본능이 일게 하는 착하디 착한 프로도, 그리고 그저 착한 어린아이에 불과한 해리포터등은 별다른 뛰어난 능력도 없는 듯 평범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엔더는 상상을 초월하는 인물이다. 뛰어난 지능의 천재인 그는 셋째로 태어났다. 사회적으로 둘째까지만 허용하는 이 미래사회에서 셋째란 학교교육에서도 제한받는 사회적인 왕따이다. 외계종족과의 전쟁 지휘자를 육성하기 위해 허용된 셋째인 엔더는 지금까지 어떤 책에서의 천재보다도 뛰어난 능력의 소년이다. 열한살의 어린나이에 외계종족을 전멸시키는 전투로 지구를 구하는 천재소년.. 이쯤 되면 액션과 환타지가 적절히 섞인 꽤 유쾌한 이야기일꺼라고 생각되겠지만 큰 오산이다.

이 책은 내내 우울하고 가라앉은 회색빛이다. 전쟁의 참 의미를 아는 사람은 전투에 혼신을 다할 수 없기 때문에 전쟁을 모르는 순진한 어린아이들로 전투를 벌였다는 어른들… 상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만큼 가슴이 따뜻하면서도 그 상대를 없앨 수도 있는 양면성이 필요했다는 이기적인 어른들의 생각에 실제 전투를 게임인줄 알고 적대적이지도 않은 외계종족을 몰살시킨 열한살의 천재소년 엔더.. 진보된 과학을 이야기하고 신비한 외계종족과 우주여행등을 이야기 하지만 이 책은 절대 미래적이지 않다. 아니 너무나 현실적이다. 지금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군대식 획일적인 사고방식과 세계권력을 둘러싼 정치적 다툼과 힘있는 자에 의한 순진하고 힘없는 자의 일방적인 내몰림을 너무나 솔직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꿈속에서까지 시달리고 괴로워하는 열한살의 엔더의 고통이 읽는 내내 날 아프게 했다.
그건 단지 열한살 천재소년이 겪는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휘둘리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고통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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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거할까요
함인희 외 22인 지음 / 코드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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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알았던 남자친구의 남동생이 지방에서 대학을 다녔다. 집이 서울이라서 할 수 없이 자취를 했는데 나중에 남자친구가 남동생이 동거를 한다고 살짝 이야기해줬었다.
물론 그 사실은 부모님은 모르는 그들 형제만의 비밀이었다. 그리고 그 동생은 자기처럼 동거하는 친구들이 흔하다는 얘기를 해 줬다. 그 때가 벌써 7~8년전인데 지금은 동거인구가 훨씬 많이 늘었다고 한다. 결혼 적령기가 훨씬 지난 나는 주위에 결혼한 사람들이 많고 또 만만챦은 만큼 이혼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는다.

흥미롭게도 이혼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성격차이라고 하고 이혼하진 않았지만 결혼생활이 순조롭지 못한 사람들의 이유 또한 성격차이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들은 농담처럼 동거라도 하고 나서 결혼할 걸 그랬다고 그런다. 그랬다면 시행착오가 좀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일거다. 통계수치상으론 동거인구가 급속이 증가하지만 우리들의 사고방식은 그 증가율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아직까지도 동거는 금기시되어오고 부모나 직장상사나 동료들에겐 숨겨야 할 비밀이다.

동거인구가 늘어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죄지은 사람처럼 숨기고 또 손가락질 까지 받아야만 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소수에 대한 다수의 이유없는 횡포가 아닐까? 이 책은 동거 자체가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저 여기 저기 여러 사례들을 풀어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개방화된 토론꺼리도 되지 못했던 거에 비하면 이런 제목으로 출판됐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양지로 발디딜 준비를 해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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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199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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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가 생존하고 부적자는 멸망한다는 다윈의 자연도태설은 그 당시의 생물학계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사회. 특히 종교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다윈의 저서 '종의 기원'은 이 책이 나온 1895년도를 그 이전의 시대와 그 이후의 시대간의 뚜렷한 경계선이 될만큼 사회과학과 자연과학등의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제 그로부터 100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 눈부신 과학발전에 힘입어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의 입장에서 적자생존, 자연도태를 이야기한다.

인간은 유전자의 원격조정으로 유지되는 생존기계일 뿐이고 인간의 존재이유도 단지 유전자를 보존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이론은 다윈의 이론 못지않게 놀랍고 충격적이다.
더군다나 유전자들은 오로지 자신만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온갖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 인간의 노화나 수컷과 암컷의 생존전략과 개미의 일벌레와 여왕벌과의 갈들등도 이기적 유전자에 의한 것이다.

솔직히 이런 이야기는 받아들이기 쉽지않고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혹은 그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해도 애써 외면하고 싶은 이론들이다. 인간은 지금껏 자연계에서 동물이라 불리기를 거부하고 '인간'이라는 새로운 종을 창조했다. 살아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만물의 영장이 되는 다른 피조물과는 격이 다른 창조물이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유일하고 경이로운 창조물인 인간이 한낱 의식할 수도 없고 우리눈에 잘 띄지도 않는 유전자에게 지배받는 유전자 번식의 노예같은 존재라니... 하지만 이쯤에서 저자는 역겨워하며 실망하는 독자들에게 유전자의 전제적 지배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위안을 준다.

그 중 하나는 인간이 문화를 가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유전자가 정자나 난자를 운반체로 하여 몸에서 몸으로 날아다니는 것과 같이 노래나 사상, 언어, 의복의 양식등의 문화들이 인간의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고 한다. 즉 이것은 유전자처럼 일종의 자기 복제방법인 것이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의 유전기구에 기생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나의 뇌는 여러 문화를 위한 번식용의 운반체가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에게는 의식적인 선견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기적 존재인 유전자는 의식을 갖지않고 맹목적으로 자기복제를 한다. 유전자는 눈앞의 이기적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되는 경우에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반면에 인간은 단순한 눈앞의 이기적 이익보다 오히려 장기적인 이기적 이익을 촉진시킬 정도의 지적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순수하고 사리사욕이 없는 진짜 이타주의의 능력이 인간의 또 하나의 독자적인 성질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반가운 이유들로 인해 이 지상에서 유일하게 우리 인간만이 이기적 유전자들의 전제적 지배에서 반역할 수 있는 존재라고 저자는 우리를 안심시킨다. 저자는 처음에는 유전자를 보존하는 일개 도구로 인간을 전락시키더니 결국엔 대부분의 이들을 '그럼 그렇지'하며 안심시키는 방법으로 끝맺음을 했다.

하지만 정말 저자의 믿음대로 그런 순수한 이타성을 가진 인간들이 몇 명이나 될까? 인간들처럼 별 이유도 없이 같은 인간들을 살해하고 고문하는 종들은 흔치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많은 종들을 아예 멸종시키고 자연을 훼손시키고 심지어 자신들까지 숨막혀 하는 행동들을 하는 걸 보면 어쩌면 이기적 유전자보다 더 이기적이고 잔인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말대로 인간의 문화나 순수한 이타주의가 다른 종과는 특별한 종으로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만큼의 이유가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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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껍질 속의 우주 까치글방 187
스티븐 호킹 지음, 김동광 옮김 / 까치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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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전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그야말로 입을 다물 수 없는 감탄과 놀라움으로 읽었던 기억을 가진 나는 같은 기대감으로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샀다. 이 책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부터 현재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초끈이론, M이론에 이르기까지 물리학계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 고급스런 종이에 걸맞게 올칼라의 화려하고 큼직한 그림들은 지루함을 덜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실망이다. 물리학계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지만 그건 단지 개략적인 겉모양만을 훑어보는데 만족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 대해서 단지 어떤 입자의 위치와 속도의 측정 정확성은 반비례한다고 말해주면서 어째서 그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호킹은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기본적으로 물리학에 대한 지식을 어느정도 갖추었을 거라는 전제아래 책을 썼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단지 두꺼운 책이 되는데 대한 거부감이 있었을지도... 아뭏튼 우리는 더 근본적인 의문점에 대해서는 도서관에 앉아서 스스로 찾아볼 수 밖에 없다.

또한 그림들은 딱딱할 수 있는 내용 전반에 걸쳐 유쾌한 기분 전환을 도울 수도 있었겠지만 내용을 이해하는데 전혀 상관없는 그림들도 역시 페이지의 상당량을 차지한다. 차라리 그런 그림들을 작게 싣거나 없애거나 해서 지면관계상 뺄 수밖에 없었던 내용들을 넣었음 더 좋았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역자의 번역에 대한 아주 작은 아쉬움이 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간혹 어려운 한자를 사용함으로써 안 그래도 쉽지 않은 내용을 한층 더 복잡하게 하는데 한 몫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지면이나 일상 어디에서도 한번도 접하지 못했던 한자어들이 있으니 이건 또 옥편까지 찾아가면서 해석을 해야한다는 것인가..

개인적으로 만족보다는 실망을 더 많이 느낀 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같은 과학분야의 책들이 많이 나오는데 대해 감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문학이나 인문학분야에 비해 과학분야의 책들은 서점에서도 그 규모면에서 언제나 빈약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분야의 책들이 좀 더 활발하게 출판된다면 내용상으로도 경쟁적으로 양질의 책들이 많아질 것 같다는 희망이 생긴다. 그리고 혹시 시간의 역사를 읽지 않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상대적으로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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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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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되는 노천명의 시는 시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욀만큼 아끼는 시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노천명과 주요한, 모윤숙, 김활란등이 친일파였다는 걸 알고 난후의 그 놀라움과 실망감, 배신감은 읽는내내 분노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의문스러운 점은 그 사람들이 여태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것과 교과서에 그들의 작품이 수록되고 학생들은 동경과 감동의 마음으로 그들 작품을 외우곤 했다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사느라 바쁜 탓에 그들의 깊은 내막을 혹 몰랐을 수 있다 하더라도 지배계층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을텐데 왜 우리는 여태 아무것도 모른채 그들을 존경까지 했을까? 그 답을 작가는 해방직후 친일파들이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의 모든 분야를 장악한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특히 교육분야를 장악한 후 자기들의 입장을 변호하고 후대들의 비판의식을 마비시키고, 친일할 수 밖에 없었다는 상황불가피론을 주입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기회주의자이고 이기주의자이고 파렴치한 민족반역자인 그들이 40년 넘게 사회구석구석의 기득권을 장악했으니 사회, 정치 전반의 부정부패와 친민 자본주의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또한 작가는 민족반역자들을 처벌하는 특별처벌법을 이스라엘처럼 제정해야 한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난 후의 대다수의 독자들은 물론 찬성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 아직도 사회 지배계층에는 민족반역자들을 비호하고 그저 덮어두려는 세력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 지금은 이미 21세기이다. 과거에 얽매이고 분해하는 것은 치졸하고 구태의연한 행위이다. 우리는 마음 넓게 그들을 용서하고 감싸안으며 미래를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도 버젓이 교과서를 왜곡하고 있고 독도 소유권을 억지 주장하고 있다.

작가의 말대로 용서받아야 할 자들이 용서를 빌지 않았는데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용서를 하고 말고를 떠나 너무 쉽게 잊어버렸다. 아니 어쩌면 나처럼 일제강점기를 직접 체험하지 못했던 세대들은 잊는 것 자체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45년 일제강점, 3,1운동, 유관순 …이정도의 몇 개 안되는 낱말의 나열들이 우리가 자라면서 배운것이고 그것은 너무나 쉽게 잊혀질 만한 것이였다.

나는 이 책을 젊은 세대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12권이라는 긴 분량이 자칫 지루할 수도 있고 재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재미와 감동을 떠나서 젊은 세대들은 무조건 읽어야만 하는 필독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사회 어디에서도 잊혀진 역사를 일깨워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민족 반역자들의 행동에 동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사회 지배계층의 그릇된 역사인식하에서 휘둘리며 살아가기를 자초하는 것이다. 잊지않고 분노하고 반민족 행위자들을 끝까지 단죄하는 것이 36년간 이름없이 죽어간 400여만 우리 민중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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