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박물관
움베르토 에코, 에른스트 곰브리치 외 지음 | 김석희 옮김 / 푸른숲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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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동안의 안 좋은 기억 다 잊자면 왁자지껄 망년회를 하면 새해를 맞았다. 다시 맞이하는 한 해를 위해 이런 저런 계획을 짠다. 물론 다 지킬 수 없다는 걸 알지만 1년동안의 계획을 짜는 것이 어느덧 새해 맞이의 한 습관이 되버렸다. 새해들어 듣는 첫 인사들은 한결같다. 건강하라는니 복 많이 받으라니느 등의 말은 오히려 인사치레이고 한살 더 먹었으니 빨랑 결혼해야지하는 말이 핵심이다.

도대체 매일 24시간 똑같은 하루인데 2003년 12월 31일과 2004년 1월 1일이 뭐가 다르다는 걸까? 그 날들 사이에 도무지 무슨 일이 있길래 난리법석이고 난 또 지겨운 결혼 성화로 새해를 시작해야 하는 걸까? 시간이라는 게 없다면 과거나 미래, 현재가 물론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게 더 편할 것 같기도 하다. 일생을 몇 년으로 1년 12달로 하루 24시간으로 분으로 초로 삭막하게 낱낱이 해부할 필요도 없고, 한해 한해 나이 먹어감에 따른 부담감과 초라함에 맥빠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으로 아장거리며 세상으로 발을 디뎠을 때, 내 눈가에 처음으로 주름이 생겼을 때, 그와 내가 이빨을 부딪치며 서투른 첫 키스를 하던 때.. 뭐 이런 식으로 일생을 기억했을 것이다. 이게 훨씬 나을 것 같은데..

하지만 시간이라는 개념이 생김으로 역사가 생겼다고 한다. 철학과 종교와 문학도 시간으로 인해 인간의 사고방식이 무한히 확대되었다고 하니 내 짧은 소견으로는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구정을 샌다면 1월의 스물두번째 날이 아닌 2004년도의 첫날이 될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똑같은데 누구에게는 그날이 새해의 첫째날이 되고 또 어느 누구에게는 스무 날이 훨씬 지난 날이 되는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이 약속을 한다면 어떤 식의 날에 만나게 될까? 밀레니엄이 올때도 그랬다. 이십일세기의 첫해는 2000년이라는 논리와 2001년이라는 논리가 서로 분분하기도 했다. 서양에선 태어나고 1년이 지나서야 한살이 되지만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나이를 먹는다. 가끔은 그게 괜히 억울하기도 했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시간에 대한 서로의 개념차이외에도 왜 하필 1년을 12달로 나누었는지 하루를 24시간으로 했느지도 의문투성이다. 여러 민족, 여러 국가들의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처럼 거의 한가지 통일된 시간으로 살수 있다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도 의아하기도 하고 또 이런 체계가 언제 어떻게 갖춰질 수 있는지도 간혹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가끔씩 순간적으로 궁금한 사항이였다. 그나마도 한창 궁금한 게 많았던 시절에 국한된 것이었고 딱히 시간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몽땅 나온 책을 애써 찾기도 힘이 들었던 시절이였다.

물론 이건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와 국립해양 박물관이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시간이라는 부분을 집대성해 놓은 제목 그래도 시간에 대한 박물관적인 서적이다.

시간의 과학사적인 분야 외에도 역사, 철학, 예술 및 문화 분야 등에 대해 세계적인 석학들이 이야기를 해 주고 우리가 미처 궁금해 하지도 못했던 사실들까지 세세하게 적혀있다. 인간이 시간을 어떤식으로 지각하며 오늘날과 같은 체계로 발전시켜 왔는지를 검토해주고, 각 나라와 문화별로 시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측정했는지도 나와있다.

내용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의 방대한 사진자료등은 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달력과 해시계등과 살바도르 달리의 시계 그림 및 허블 망원경의 우주 사진등을 포함해서 마치 박물관을 직접 관람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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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스틴느는 훌륭한 간호사 - 셀레스틴느이야기 4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35
가브리엘르 벵상 / 시공주니어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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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세계 12국에서 번역 출판된 ‘셀레스틴느 이야기’시리즈의 4번째 이야기이다. 이 시리즈가 1988년 볼로냐 어린이 도서전에서 그래픽 상을 받은 사실을 몰랐더라도 벵상의 그림들은 그 간결함과 따스한 색채로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기엔 모자람이 없는 듯 하다.

셀레스틴느의 인형을 함께 찾아보고, 비오는날 소풍을 가고 박물관에서의 소동에 뒤이은 네번째 이야기에서 셀레스틴느는 간호사가 된다. 셀레스틴느의 자상하고 든든한 아빠인 에르네스트가 어느날 앓아 눕는다. 항상 보살핌만 받아왔던 셀레스틴느는 기특하게도 자진해서 에르네스트를 간호하고 음식을 만드는 등 정성을 다하지만 오히려 집안은 엉망진창이 된다. 하지만 셀레스틴느의 정성만은 갸륵해서 철부지 아이의 모습이 꺔찍하기만 하고 역시 우리의 에르네스트도 어질러진 방에도 불구하고 흐뭇하기만 하다.

이 시리즈의 다른 이야기들고 마찬가지로 너무나 일상적인 모습들이 이렇게 훈훈하고 넉넉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다는데 감동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책이 아닌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아이가 어느날 피곤한 엄마 아빠에게 간호한답시고 따뜻한 물수건을 들고 아장거리며 걸어오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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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아저씨네 작은 커피집
레슬리 여키스·찰스 데커 지음, 임희근 옮김 / 김영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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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오세가 정년이라는 ‘사오정’이라는 말도 이젠 너그러운 대접이 되고 있다. 평균 삼십 오세정도면 직장을 떠나 자영업을 생각하게 된다는 어느 리서치 결과가 있었다. 평생 직장이란 단어가 아예 사라질 판이고 입사하면서 곧 바로 퇴사 후의 삶을 계획하고 준비해야만 한다.

경쟁에 뒤떨어진 소수의 사람만이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대다수 샐러리맨의 미래에 대한 비젼이 이렇다는 데 그 심각성이 더한 것 같다. 이처럼 유사이래 많은 사람들이 자영업으로의 길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또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실패할 가능성도 많다는 것이다. 길지 않은 직장생활에서의 저축액과 퇴직금을 몽땅 털어 새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겐 단 한 번의 실패도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릴 수 있는 큰 위기가 될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성공 철학과 처세술, 몇 억을 모으는 방법등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데는 그런 책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독자들의 요구때문일 수도 있다. 스타벅스만큼의 대형 체인점은 아니더라도 그저 생활할 정도의 수입이라도 나올 수 있는 자그마한 커피숍이라도 가져보는게 솔직한 내 미래의 바람이자 계획이다. 물론 그 작은 커피숍 하나를 갖는데도 만만치 않은 자금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잭 아저씨네 작은 커피집은 그야말로 커피숍 경영의 바이블과 같은 책이다. 굳이 커피숍이 아닌 다른 어떤 사업에도 적용되는 경영 철학이 담겨져 있다. 여타 다른 두껍고 원론적인 성공 철학서들과는 달리 이 책은 실제 커피숍을 경영하는 일상이 일기 쓰듯 그려져 있다. 잭 아저씨네 커피숍은 종업원과의 불화도 있고, 새로 생겨난 대형 커피숍 때문에 수입이 줄어들기도 한다. 카운셀러의 도움을 받아 다시 활력을 되찾지만 새로운 방식을 도입한 것이 아니라 잠시 잊고 있었던 잭의 경영방식을 일깨워준 덕분이었다. 그 법칙들은 너무나 단순해서 잭 자신도 믿지 않으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이 의외로 해답은 무척 가깝고도 쉬운 법이다.

열정(Passion), 사람(People), 친밀(Personal), 제품(Product) 4P 원칙이 그것이다.
즉, 첫째 고객이 열정을 갖기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그들에게 열정을 갖고 다가가기.
둘째, 활력 넘치는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일터로 만들기. (모든 일터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한다) 셋째, 친밀하게 고객들을 대접해 주어라.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의 단짝이나 어느 곳의 단골이 되고 싶어 한다) 넷째, 똑소리 나는 제품을 만들어라. (제아무리 멋진 서비스를 받더라도 맛없는 커피를 제 돈주고 먹을 사람은 없다)

언제쯤이 될 지 모르지만 4P원칙들을 내 가게에 적용할 날을 고대하면 새해 다이어리 첫 페이지를 이 원칙들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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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납치사건
재스퍼 포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하우스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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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인물들은 더 이상 종이 위의 잉크의 자취가 아니다. 그들은 이 세계에서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책이라는 세상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이다. 우리가 책을 읽지 않을 때는 그들은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간다. 마치 영화판의 엑스트라처럼 우리의 눈길이 가지 않을 때 그들은 빈둥거리거나 잡담을 하는 등 우리가 전혀 상상 할 수 없는 딴짓(?)을 한다.

책벌레들이 동경할 만한 직업인 특수작전망의 문학조사반.. 고전의 초판들을 훔치거나 위조해서 파는 불법상인들, 저작권 침해자들 사기꾼들을 다루는 직업이다. 그 시대는 문학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럴 수 밖에 없는 분위기의 세계이다. 정말로 책벌레들이 좋아할 만한 세상 아닌가? 부러울 따름이다.

벌레들의 움직임을 이용해서 책의 텍스트로 들어갈 수 있는 이상한 기계와 시간속을 마음대로 여행하며 범죄를 소탕하는 시간경비대.. 복잡하고 뒤죽박죽일 것 같은 상상의 세계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제인에어를 텍스트에서 납치하자 제인에어의 책에서 순식간에 제인에어는 사라지고 텍스트 사이로 들어간 주인공은 로체스터와 협동작전으로 뒤틀린 줄거리를 바로잡으려 한다.

이 얼마나 유쾌하고 기발한 상상인가? 단지 이런 발상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재미와 흥미가 만점일 수 밖에 없다. 감수성이 좀 더 예민했던 시절에는 책을 읽으면 정말로 책안에 내가 있는 듯 한 적이 많았다. 책 속의 인물들이 현실세계에서도 내 옆에 있는 듯 분명히 인식되었고, 내가 걷고 있는 거리와 풍경들이 책 속의 거리와 풍경이 되어서 현실과 책안의 세상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진 적도 종종 있었다.

솔직히 그럴때면 난 참 많이 혼란스러워했다. 너무 깊이 빠져버린 낭패감. 책 속에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현실에서의 적응은 힘이 들었으니깐. 애써 빠지지 않으려 노력했고, 책속의 이야기는 그저 허구일 뿐이라며 한 때는 아예 책읽기를 멀리한 적도 있었다.
서른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 이제는 책을 읽으면 그저 책이려니 할 뿐이다. 물론 책읽기의 재미와 흥미가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독서 삼매경에 빠진다 하더라도 책 장을 덮는 순간 나는 바로 현실로 돌아온다. 몇 초간의 짧은 여운뒤에..
더 이상 책 속 세상과 이 세계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서 있지 않아도 되는 나는 다시 혼란스러웠던 그 때가 그립다. 그래서 이 책이 더 큰 충격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잃어버렸던 사춘기의 흥분을 다시 느끼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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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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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이후 또 하나의 하루키 문학의 걸작이라고 선전되어지는 ‘해변의 카프카’
‘카프카’라는 단어에 까마기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계속 언급되는 해변의 카프카라는 그림 대신 난 고흐의 밀밭의 까마귀(제목이 맞는지 모르겠다..)가 자꾸 연상됐다.
그 신비하고 침울한 그림의 이미지가 책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말해주는 것 같다.

여러명의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주인공인 카프카 못지 않게 아니 어쩔 땐 그 보다 더 강한 개성으로 독자를 매혹시킨다. 각각의 인물들에겐 독특한 그만의 사연이 있고 하루키는 자상하게 그들의 속내를 독자에게 보여준다. 그들의 인연은 과거로부터 짜여지기 시작한 거미줄처럼 알게 모르게 서로 얽혀있어 필연적으로 현재 만날 수 밖에 없다. 세계는 개인의 삶으로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받는다고 작가는 말하는 듯 하다. 그것이 이 세계이든 저 세계이든 말이다.

이야기는 원죄와도 같은 저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소년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누이와 관계를 갖게 될 거라는 저주를 받은 열다섯 소년은 도망치듯 가출을 한다.

어머니같은 여인과 사랑을 하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 또는 그녀와 우정을 나눈다. 세상에 속한 것 같지 않은 외진 도서관에서 유령과 실제의 두 현상으로 존재하는 한 여자를 사랑한다. 까마귀라 불리는 소년은 그의 일부이기도 하고 또는 그와 동등한 한 객체이기도 한다. 이 세상의 경계를 너머 저 세상에 머물기도 하지만 결국 그가 택한 곳은 이 세상이었다. 언제나 세상의 언저리에 머물며 뿌리 내리지 못했던 소년은 다시 눈을 뜬 세상에서 결국 세계의 일부가 된다.

열다섯살이라는 소년의 나이탓이였을까? 항상 경계에서 위태로운 방황으로 혼란스러워하는 그가 내게는 단지 사춘기의 방황정도로만 인식되었다. 하기사 작가가 굳이 열다섯 살을 택한 것은 그 나이가 희망과 절망 사이를 격렬하게 왕래하고, 세계의 현실성과 비현실성 사이를 방황하며, 신체는 도약과 질주 사이를 반복하는 그야말로 과도기인 때문이란 걸 보면 내 감상이 작가의 의도와 얼추 맞아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평범한 가출 청소년의 이미지가 절대 아닌 하루도 운동과 스트레칭을 빼먹지 않는 절도있는 생활패턴을 유지하는 건장하고 미래가 창창한 소년은 왠지 내겐 이미 가질 수 없는 꿈과 같은 존재이다.

오히려 내게는 어린 시절 우연챦은 사고로 그가 가진 모든 기억과 지식을 잃은 채, 그림자마저도 절반을 잃고 자기 안을 훤히 내 보일 만큼 비워두고 살아가는 나카타라는 노인에 더 애착이 갔다.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무시당하지만 고양이와 대화를 할 수 있는 노인은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하루 하루 만족해하며 살아간다. 바라지 않고 욕심내지 않아서 오히려 삶에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 자신의 순수함으로 소년 대신 사람을 죽이게 되고, 어딘지도 모를 세상으로의 입구를 열고 닫는 신비한 임무를 묵묵히 행하다 마침내는 평화롭게 혹은 허무하게 죽어가는 나카타.

글을 읽어보고 도서관에서 맘껏 책을 볼 수 있는 게 꿈이라던 나카타는 결국 이 세계에서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

제대로 사람답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렸다는 동정을 하는 것은 어쩌면 내 자신의 욕심때문일 것이다.

세상 사람들 틈에 정겹게 끼이지도 못했지만 결코 욕심부리지 않고 만족한 삶을 살았던 나카타에게 난 부러움과 한편으론 알 수 없는 연민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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