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마개 까치글방 아르센 뤼팽 전집 5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까치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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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책 읽기를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추리소설까지 거부하긴 힘들것이다. 이처럼 쉽사리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추리소설의 매력은 무엇일까? 보잘것없는 작은 종이조각에 인쇄된 활자들은 읽는 이에 의해 곧바로 한편의 영상이 된다. 그것도 활자자체들 안에 숨겨진 의미를 심사숙고해서 찾거나 작가의 숨은 철학을 이해할 필요 없이 그저 눈에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작은 노력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영상은 왠만한 블록버스터급 영화에 버금가는 역동성이 있고 종이위의 인물들은 독특한 캐릭터로 주연과 조연을 맡아 우리의 흥미를 돋구는데 성심 성의를 다한다.

우리는 때로 탐정이 되어 그와 함께 사건을 조망하고 증거를 찾아헤매기도 하고 어쩔때는 범인의 입장에서 범죄의 불가피성에 대해 항변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추리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책 읽기에 익숙치 않거나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에게도 내재된 상상력을 별다른 노력없이도 한껏 발휘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추리소설류들이 봇물처럼 출판되는 상황에선 그야말로 기쁨의 비명이라도 질러야 할 판이다.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팡 시리즈는 아서 코난 도일의 홈즈 시리즈와 더불어 추리소설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고도 할 수 있다. 뤼팡과 홈즈는 프랑스와 영국 국민들의 미묘한 경쟁심리를 일으킬만큼 국가적인 중요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매니아가 있고 뤼팡과 홈즈의 책들에 나오는 장소를 중심으로 한 관광상품까지 있다고 하니 가히 이들 책의 위력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100년도 훨씬 전의 책들이 현재까지도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특히나 그 쟝르가 추리소설이라는 것에 더욱 놀랍다. 범죄의 발생과 그 해결방법등은 시대가 바뀜에 따라 그 양상이 급격히 변하고 지능화된다는 것을 안다면 100여년 전의 추리소설에서의 내용은 지금보면 구태의연한 구식으로 조잡하기까지 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그 책들을 읽게 된다면 왜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올 수 밖에 없는지 알 수 있게 된다.

특히 뤼팡 시리즈의 5권째인 수정마개는 시리즈 중의 책중에서도 그 완숙미와 치밀함이 백미이다. 이 책의 내용은 정치적 비리 사건에 연루된 명단이 숨겨진 수정마개를 둘러싼 비리정치인들, 젊은 시절 이룰 수 없었던 사랑에 대한 빗나간 복수를 하는 인간과 뤼팡간의 밀고 당기는 두뇌싸움이다. 거기에 붙잡힌 부하를 구하려는 뤼팡의 인간적인 면모가 더해진다.

수정마개를 소유하고 악마적인 복수와 권력을 휘두르는 도브레크라는 인물과 뤼팡의 엎치락 뒤치락 하는 대결에서 뤼팡은 책의 말미까지 고전을 면치 못한다. 읽는 내내 안타까움과 뤼팡이 이럴수도 있구나 하며 실망감과 동시에 인간미를 느낀다. 덕분에 도대체 어떤 식으로 뤼팡이 도브레크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지 내내 궁금하게 된다.

뤼팡은 신경질적이고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을 듯하게 완벽한 홈즈에 비해 낭만적이고 남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해 주는 인물이다. 또한 뤼팡은 범죄 현장에 있을 때나 적수와 대면해 있을 때도 여유와 유쾌함을 놓치지 않는다. 도브레크에게 늘 당하면서 그답지 않게 침울해있다가도 마지막 사건을 해결했을 때의 그가 보여주는 천진난만한 개구장이와 같은 모습은 도저히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처럼 유쾌하고 매력적인 인물이 단지 생명없는 종이위의 활자일뿐이라고 감히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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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
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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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는 그 사전적 의미와는 별도로 지구상 인구의 수만큼 종류가 다양할 것이다. 적어도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은 각자의 성격이 틀리듯이 그들의 이상향도 다른 모양으로 꿈꾸어질 것이다. 하지만 슬픈 일이지만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은 그저 꿈을 꿀 수 있다는데 만족해야만 한다. 그 꿈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고가 제한되지 않고 지적 탐구심이 계속되는 한 그 꿈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어느 먼 미래의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롭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세상을 꿈 꿀 것이다.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또 다른 꿈을 꾸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여전히 자유로운 사고의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1932년 헉슬리는 그의 신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2500년경의 이 놀라운 세계는 태내생식대신 배양시험관에서 필요한 계급에 필요한 양만큼의 인간들을 배양한다. 따라서 이 사회에서는 부모도 없고 결혼, 가정도 없다. 철저한 계급으로 분리되어 하층 계급의 태아를 배양할때는 일부러 약간의 독극물을 투여하고 산소를 제한하는 등으로 지능지수를 낮게 하고 외모도 왜소하고 추하게 만든다.

또한 수면시 교육법이라는 심리학적 기술로 끊임없이 쇄뇌하여 자기 계급에 절대 불만없이 잘 적응되도록 한다. ‘만인은 만인의 것이다’라는 철학으로 극단적인 자유연애가 장려되며 잠시의 우울과 걱정은 소마라는 묘약으로 해소된다. 이 사회에서는 노화도 없고 불안도 없고 고통도 없다. 모든 구성원들이 지극히 만족스럽고 명랑하게 일평생을 살다가 죽음도 그 일부로 평화롭게 받아들인다.

‘아! 이 멋진 신세계여!’ 너무나 완벽하고 놀랍지 않은가?! 그야말로 우리가 여태껏 꿈꿔왔던 바로 그 유토피아이다. 하지만 이 완벽한 사회에도 반발하는 몇몇이 존재하며 역설적이게도 우리 대부분은 그들에게 동조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상실하게 한다는 것, 진정한 자유란 없는 노예화된 사회라는 것이 이 완벽한 유토피아를 거부하는 반론이다.

하지만 우리가 책 속의 그런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어쩌면 지금까지의 세상에 익숙한 때문은 아닐까? 애초에 헉슬리의 신세계에서 태어나서 자랐다면 지금의 사회를 역겨워하며 거부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느것이 인간을 위한 진정한 사회인지 모르겠다. 어차피 기본 유전자가 거의 비슷하다면 태어나서 사회화되면서 바뀐 그 모습이 인간 그 자체의 가치이고 참 모습이 아닐까? 우리는 항상 우리의 현재에서 우리의 시선으로 다른 것을 판단하고 가치 매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됐다고 할 수 없는 것은 거기서부터 인간의 지적 능력이 발전하고 또 이처럼 놀라운 책이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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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더의 게임 - 엔더 위긴 시리즈 1 엔더 위긴 시리즈 1
올슨 스콧 카드 지음, 장미란 옮김 / 시공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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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이야기는 현실세계에선 결코 영웅이 될 수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현실이라면 억지스러울 정도로 별 볼일없는 듯한 인물이 우여곡절끝에 세상을 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는 영웅이 소설속에선 가능하다. 하긴 그게 아니더라도 어쨌든 대부분의 영웅들의 이야기는 유쾌하고 만족스러워서 온통 불만투성이인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수도 있다. 드래곤 라자의 덤벙거리고 말썽꾸러기인 후치나 반지의 제왕의 보호본능이 일게 하는 착하디 착한 프로도, 그리고 그저 착한 어린아이에 불과한 해리포터등은 별다른 뛰어난 능력도 없는 듯 평범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엔더는 상상을 초월하는 인물이다. 뛰어난 지능의 천재인 그는 셋째로 태어났다. 사회적으로 둘째까지만 허용하는 이 미래사회에서 셋째란 학교교육에서도 제한받는 사회적인 왕따이다. 외계종족과의 전쟁 지휘자를 육성하기 위해 허용된 셋째인 엔더는 지금까지 어떤 책에서의 천재보다도 뛰어난 능력의 소년이다. 열한살의 어린나이에 외계종족을 전멸시키는 전투로 지구를 구하는 천재소년.. 이쯤 되면 액션과 환타지가 적절히 섞인 꽤 유쾌한 이야기일꺼라고 생각되겠지만 큰 오산이다.

이 책은 내내 우울하고 가라앉은 회색빛이다. 전쟁의 참 의미를 아는 사람은 전투에 혼신을 다할 수 없기 때문에 전쟁을 모르는 순진한 어린아이들로 전투를 벌였다는 어른들… 상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만큼 가슴이 따뜻하면서도 그 상대를 없앨 수도 있는 양면성이 필요했다는 이기적인 어른들의 생각에 실제 전투를 게임인줄 알고 적대적이지도 않은 외계종족을 몰살시킨 열한살의 천재소년 엔더.. 진보된 과학을 이야기하고 신비한 외계종족과 우주여행등을 이야기 하지만 이 책은 절대 미래적이지 않다. 아니 너무나 현실적이다. 지금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군대식 획일적인 사고방식과 세계권력을 둘러싼 정치적 다툼과 힘있는 자에 의한 순진하고 힘없는 자의 일방적인 내몰림을 너무나 솔직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꿈속에서까지 시달리고 괴로워하는 열한살의 엔더의 고통이 읽는 내내 날 아프게 했다.
그건 단지 열한살 천재소년이 겪는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휘둘리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고통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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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거할까요
함인희 외 22인 지음 / 코드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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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알았던 남자친구의 남동생이 지방에서 대학을 다녔다. 집이 서울이라서 할 수 없이 자취를 했는데 나중에 남자친구가 남동생이 동거를 한다고 살짝 이야기해줬었다.
물론 그 사실은 부모님은 모르는 그들 형제만의 비밀이었다. 그리고 그 동생은 자기처럼 동거하는 친구들이 흔하다는 얘기를 해 줬다. 그 때가 벌써 7~8년전인데 지금은 동거인구가 훨씬 많이 늘었다고 한다. 결혼 적령기가 훨씬 지난 나는 주위에 결혼한 사람들이 많고 또 만만챦은 만큼 이혼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는다.

흥미롭게도 이혼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성격차이라고 하고 이혼하진 않았지만 결혼생활이 순조롭지 못한 사람들의 이유 또한 성격차이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들은 농담처럼 동거라도 하고 나서 결혼할 걸 그랬다고 그런다. 그랬다면 시행착오가 좀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일거다. 통계수치상으론 동거인구가 급속이 증가하지만 우리들의 사고방식은 그 증가율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아직까지도 동거는 금기시되어오고 부모나 직장상사나 동료들에겐 숨겨야 할 비밀이다.

동거인구가 늘어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죄지은 사람처럼 숨기고 또 손가락질 까지 받아야만 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소수에 대한 다수의 이유없는 횡포가 아닐까? 이 책은 동거 자체가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저 여기 저기 여러 사례들을 풀어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개방화된 토론꺼리도 되지 못했던 거에 비하면 이런 제목으로 출판됐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양지로 발디딜 준비를 해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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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199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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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가 생존하고 부적자는 멸망한다는 다윈의 자연도태설은 그 당시의 생물학계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사회. 특히 종교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다윈의 저서 '종의 기원'은 이 책이 나온 1895년도를 그 이전의 시대와 그 이후의 시대간의 뚜렷한 경계선이 될만큼 사회과학과 자연과학등의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제 그로부터 100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 눈부신 과학발전에 힘입어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의 입장에서 적자생존, 자연도태를 이야기한다.

인간은 유전자의 원격조정으로 유지되는 생존기계일 뿐이고 인간의 존재이유도 단지 유전자를 보존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이론은 다윈의 이론 못지않게 놀랍고 충격적이다.
더군다나 유전자들은 오로지 자신만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온갖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 인간의 노화나 수컷과 암컷의 생존전략과 개미의 일벌레와 여왕벌과의 갈들등도 이기적 유전자에 의한 것이다.

솔직히 이런 이야기는 받아들이기 쉽지않고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혹은 그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해도 애써 외면하고 싶은 이론들이다. 인간은 지금껏 자연계에서 동물이라 불리기를 거부하고 '인간'이라는 새로운 종을 창조했다. 살아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만물의 영장이 되는 다른 피조물과는 격이 다른 창조물이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유일하고 경이로운 창조물인 인간이 한낱 의식할 수도 없고 우리눈에 잘 띄지도 않는 유전자에게 지배받는 유전자 번식의 노예같은 존재라니... 하지만 이쯤에서 저자는 역겨워하며 실망하는 독자들에게 유전자의 전제적 지배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위안을 준다.

그 중 하나는 인간이 문화를 가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유전자가 정자나 난자를 운반체로 하여 몸에서 몸으로 날아다니는 것과 같이 노래나 사상, 언어, 의복의 양식등의 문화들이 인간의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고 한다. 즉 이것은 유전자처럼 일종의 자기 복제방법인 것이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의 유전기구에 기생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나의 뇌는 여러 문화를 위한 번식용의 운반체가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에게는 의식적인 선견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기적 존재인 유전자는 의식을 갖지않고 맹목적으로 자기복제를 한다. 유전자는 눈앞의 이기적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되는 경우에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반면에 인간은 단순한 눈앞의 이기적 이익보다 오히려 장기적인 이기적 이익을 촉진시킬 정도의 지적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순수하고 사리사욕이 없는 진짜 이타주의의 능력이 인간의 또 하나의 독자적인 성질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반가운 이유들로 인해 이 지상에서 유일하게 우리 인간만이 이기적 유전자들의 전제적 지배에서 반역할 수 있는 존재라고 저자는 우리를 안심시킨다. 저자는 처음에는 유전자를 보존하는 일개 도구로 인간을 전락시키더니 결국엔 대부분의 이들을 '그럼 그렇지'하며 안심시키는 방법으로 끝맺음을 했다.

하지만 정말 저자의 믿음대로 그런 순수한 이타성을 가진 인간들이 몇 명이나 될까? 인간들처럼 별 이유도 없이 같은 인간들을 살해하고 고문하는 종들은 흔치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많은 종들을 아예 멸종시키고 자연을 훼손시키고 심지어 자신들까지 숨막혀 하는 행동들을 하는 걸 보면 어쩌면 이기적 유전자보다 더 이기적이고 잔인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말대로 인간의 문화나 순수한 이타주의가 다른 종과는 특별한 종으로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만큼의 이유가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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