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막일기 - 북평사 박래겸이 남긴 254일간의 기록
박래겸 지음, 조남권.박동욱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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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평사 박래겸이 남긴 254일간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북막일기>를 읽는다. 조남권과 박동욱이 함께 옮겼다.  

박동욱이 쓴 서문에는 <북막일기>의 특징과 내용이 잘 나와있다. 부분적으로 인용하여 정리해본다. 

 

북평사는 조선시대의 정6품 무관 벼슬이다. 외관직으로서, 영안도(함경도)와 평안도에 각 한 명씩 총 두 명을 파견했고, 병마절도사 밑에 있었다.  

박래겸은 북평사 체험을 통해 이 책  <북막일기>를 남겼다. 1827년 7월 14일 북평사에 제수된 때부터 1828년 4월 2일 도성의 자택에 도착할 때까지의 기록을 담은 것으로, 총 254일 동안 다녔고 이동거리는 6070리였다. 그의 다른 기록과 마찬가지로 모든 내용이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어서 이동 경로, 소요 시간, 일정 등을 구체적으로 그려 볼 수 있다. 

이 일기에는 북평사 고유의 업무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여러 과거시험과 백일장에 주최, 출제, 채점 등 전방위적으로 참여한 행적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시험 문제까지 상세하게 제시해 두어 지방에서 치르는 과거의 전모를 들여다볼 수 있다. 

대청(對清) 무역의 상황도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공적인 업무뿐만 아니라 함경도의 풍속과 풍토 또한 세밀히 그려내고 있다. 

백두산에 대한 기록은 한 편의 유기(游記)로도 손색없을 만큼 흥미롭다.  

그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만났던 모든 사람에 대해 기록으로 남겼다.(4~7쪽)

 

번역이 명징하다. 이해가 쉽다. 또한 고문의 맛을 잃지 않도록 신경쓴 흔적도 역력하다. 어려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도 한문 문장의 묘미를 잃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9월 18일의 "發關"을 "관문을 보내"로 해석하고 각주를 달아 설명한 것을 보면 역자의 번역 원칙을 알 수 있다.  

내용과 연관성 있는 그림들을 다양하게 수록하여 재미와 가치를 더하였다. 각주도 풍부하여 이해를 잘 도왔다. 책 말미에 원문을 수록하여 번역본과 대조해가면서 볼 수 있게 하였다.

 

다만 본문 디자인에서 날짜 앞에 말을 타고 가는 사람 그림을 일일이 붙여놓은 것이 거슬린다. 어수선하여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치장이 군더더기가 되었다. 

69쪽 14행에 "거기 사는 주민들이 전하는 말에" 하고서는 인용하기 위해 여는 큰따옴표는 있지만 닫아주는 큰따옴표는 누락되고 없다. 

232쪽의 7행에서 " 내가 밤새도록 해석해아"는 " 내가 밤새도록 해석해서(余終夜解之)"가 되어야 한다. 오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적인 아쉬움이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북막일기>가 출간되어 박래겸의 일기 3종이 모두 출간되었다. "126일간의 평안도 암행어사 기록"인 <서수일기>(푸른역사), "1829년 심양에 문안사로 간 기록"인 <심사일기>(푸른역사)도 찾아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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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서재 - 길에서도 쉬지 않는 책읽기
이권우 지음 / 동녘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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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우의 <여행자의 서재>(동녘)을 읽는다. ‘여행’과 '책'에 대한 책이다. ‘여행기 서평집’쯤 되겠다. 

처음에는 내가 읽었던 책이나 관심 가지고 있던 책을 어떤 시선으로 읽었을까 궁금하여 군데군데 골라 펼쳐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속독에 관심을 갖는다. 엄청난 양의 책을 읽을 것을 권하는 책도 수두룩하다. 1년에 365권의 책을 읽고, 심지어 1년 6개월 동안 33권의 책을 펴냈다고 한 저자의 책도 읽어보았다. 귀기울여 들을 만한 점이 있었다. 물론 따르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나는 모든 책을 빨리 읽거나 많이 읽는 것이 능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지독(遲讀)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독의 묘미를 느낄 때가 간혹 있다. 마음에 드는 책이 그렇다. 얼른 먹어버리기 아까워 천천히 음미하며 읽는 재미란 속독으로는 맛보기 어렵다.

혹시라도 내가 속독이나 다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수많은 책을 빨리 읽을 것을 권장한다면 그건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할 책을 골라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이해해 주기 바란다.


       


이권우의 <여행자의 서재>를 천천히 읽다가 시선이 종종 멈추곤 하였다. 얼른 도달하기 위해서 급히 쓴 문장이 아니었다. 도보여행자의 걸음처럼 한 발 한 발 단어를 디뎌가며 나아간 문장이었다. 짧았지만 호흡이 가쁘지 않았다. 군더더기를 제거한 문장에는 어떻게든 대상으로 선정한 책을 제대로 수용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천천히 문장을 씹어가며 따라가는 묘미를 다시 확인한다.


읽는 사람은 건너뛰며 읽을 수는 있어도 문장을 쓰는 이는 건너뛰며 쓸 수 없다. 한 자 한 자, 한 단어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장을 이어가야 한 권의 책이 된다. 저자의 저술 과정을 따라가듯이 읽는 것. 그러할 때 제대로 저자와 호흡하게 된다. 어쩌면 책을 읽는 궁극적 목적이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권우의 글을 읽다보면 책을 현장 중계하는 아나운서와 해설자를 함께 만난다. 그러니 당연히 생생한 전달과 중요한 맥점과 의미를 짚어주는 일이 함께 하기 마련이다. 어떨 때는 생각거리도 던져주고, 또 어떨 때는 무의식 중에 '아, 그랬군' 하는 동감의 말이 튀어나오게도 한다. 과도한 의미 부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역시도 읽는 이의 몫으로 남겨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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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디자인 여행 안그라픽스 디자인 여행 7
지은경 지음, 세바스티안 슈티제 사진 / 안그라픽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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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경의 <벨기에 디자인 여행>(안그라픽스, 2013)을 읽다. 

벨기에는 작은 나라이다.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의 크기이다. 영토가 작은 이 나라는 묘하게도 네덜란드어를 쓰는 북부의 플랑드르 지방, 프랑스어를 쓰는 남부의 왈로니아 지방, 그리고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도 또 다른 지자체를 이룬다. 그러다보니 세 명의 국무총리로 세 영역의 통치가 따로, 또 함께 이뤄진다. 그럼에도 조화롭고 평화롭다.


벨기에 디자인은 뛰어나다. 그 디자인은 고유성이나 단일성을 고집하지 않는 수용과 유지, 조화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벨기에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벨기에가 작은 나라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벨기에 수도 브뤼셀은 유럽의 수도라고 불릴 만큼 유럽의 정상들이 브뤼셀에 모여 주요한 회의를 하고 정책을 논의한다.

19세기에 벨기에가 국가로 설립될 때 세계에서는 벨기에가 10년도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벨기에는 국제 동세를 면밀히 살핀 다음 식민지 경쟁에 효과적으로 뛰어들었고, 19세기 중반 공업국가로 자리매김하였다.

심지어 미국의 디자인 평론가 마이클 캐널은 "다음 세대의 디자인 스팟이 벨기에"라고 할 정도로 세계 디자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금 이 시대의 디자인 코드를 읽고 다음 디자인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면 벨기에가 가진 디자인 이야기는 분명 그 안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10p)




나는 벨기에에 단지 2박3일 머물렀지만, 전통과 현대의 공존, 전통 벽돌 건물과 아르누보 구조의 만남, 오랜 세월과 현대 조명과의 만남은 가히 신비로울 정도였다. 지금 되새겨보면 왜 그렇게 서둘러 벨기에를 지나갔던가 아쉬울 정도이다. 브뤼헤와 겐트, 안트워프에 주저 앉아 오래 머무르며 "시대와 공간의 다양성, 형태들의 상이함에서 균형을 이루며 동시애 전통을 자킬 줄 아는 벨기에 서람들의 지혜"(18p)를 잘 살펴보았어야 했지 싶다. 벨기에를 더 잘 알아야 할 숙제로 남겨두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벨기에를 조금 더듬어 보고 싶어서 손에 든 책이 바로 <벨기에 디자인 여행>이다.


컨셉을 디자인으로 맞춘 것은 잘 한 것 같다. 흥미롭다. 저자가 전시 기획자이자 에디터이기 때문이었을까.

다음의 구절에서 벨기에 디자인에 주목한 이유를 알 수 있다.

"프랑스의 화려함, 독일의 미니멀리즘, 네덜란드 실용주의, 북부 유럽의 담백함이 어우러져 언뜻 이도 저도 아닌 듯 보이지만, 사실은 각 스타일의 장점만을 모아놓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벨기에 디자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동시대인들이 추구하는 문화 성향과 적절한 만남을 이루어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다른 시대, 각기 다른 디자인의 물건들과 오브제들이 모여 산만한 듯 뒤섞여 새로운 스타일이 탄생하고 있다. 이것은 전 세계의 레스토랑이나 카페 등에서 선도적으로 이끄는 인테리이어 디자인 스타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벨기에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이러한 스타일을 누려왔다. 따라서 다음 디자인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면 벨기에의 현대 스타일을, 그리고 그들이 지향하는 스타일을 한 번쯤 엿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18~19p)


저자는 '벨기에 디자인'이어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유럽의 중심에 위치하여 교통의 발달과 교류를 통한 현대문화의 발달을 이룬 지리적 특성, 역사와 언어의 혼란 등 수많은 불협화음을 독특한 강점으로 바꾸었고 다양한 생각과 언어에 따른 분열을 국제화시대에 폭넓은 시각으로 인식한 역사적 배경, 그리고 현실적이며 긍정적 타협정신을 바탕에 둔 벨기에 사상 때문이라고 했다.

저자는 이러한 벨기에의 특성을 밝히고, 첫 장에서 도시 디자인과 아이콘을 살핀 후, 본격적인 디자인 여행으로 접어든다. 요리를 다룬 <테이블 위의 디자인>, <전통 위에 뿌리 내린 패션 실험 정신>, 건축과 인테리어를 다룬 <공간을 위한 디자인 철학>, <디자인 속의 예술과 장인 정신>, <진정성 있는 삶을 향한 디자인>으로 각 장을 구성하였다.


여담이지만 지금 어린 세대들에게 뽀로로는 가히 신적인 존재이다. 울다가도 뽀로로만 틀어주면 울음을 그치니 전래동화의 곶감과 같은 존재이다. 우리 세대가 어렸을 때 즐겨보았던 만화 드라마는 개구장이 스머프였다. 뽀로로 정도의 인기였다. 그 스머프가 벨기에 작가 피에르 쿨리포드가 1958년에 완성한 만화이다.





자, 이제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을 벨기에를 한 번 살펴보자.

먼저 벨기에 맥주가 유명한 것은 누구나 다 안다. 맥주에 한 자부심 하는 독일인들도 좋아하는 맥주로는 벨기에 맥주를 꼽는다. 맥주순수령으로 인해 물과 호프만을 사용해야 하는 독일과 달리 벨기에는 다양한 방법과 재료를 통해 독특한 풍미와 향을 가진 맥주를 만들어내고 있다. 

맥주의 꽃이라고 할 트라피스트 맥주를 우선 꼽을 수 있겠다. 바티칸에서 인정하고 트라피스트수도회에서만 만드는 맥주 트라피스트는 전세계에 벨기에가 6종, 네덜란드가 1종 있을 뿐이다. 그 맛을 보려면 생산량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몇 년 전에 예약해야 한다고 한다. 

물론 두블(Duvel), 레페(Leffe), 호가든, 오르발 맥주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벨기에 맥주의 다양성에 '언제 저걸 다 맛보나' 싶을 정도이다. 브뤼헤에서 열리는 브뤼헤비르페스티발은 세계 최대 맥주 축제로도 불린다.


벨기에 하면 맥주만큼이나 유명한 것이 초콜릿이다. 품격 있는 맛과 모양은 가히 아트 수준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브랜드는 노이하우스, 마콜리니, 고디바이다. 고디바는 광화문, 삼청동, 홍대, 가로수길, 청진동 등에 있는 전문점에서도 맛볼  수 있다. 

요즘 초콜릿만큼이나 사랑을 받는 것이 와플이다. 벨기에 와플은 그 자체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든다. 프렌치후라이라 불리는 감자튀김의 원조가 벨기에이고, 홍합요리로도 유명하다.

패션도 빼놓을 수 없다. '레이스의 도시'로 불리는 브뤼헤, 전 세계 다이아몬드 유통 물량의 60%를 담당하고 있는 앤트워프의 다이야몬드의 거리, 세계3대 패션학교로 손꼽히는 앤트워프왕립예술학교를 위시하여, 드리드 반 노튼, 마튼 마르겔라, 엘비스 폼필리오와 같은 디자이너의 명성은 너무도 높다. 


이제 이 책의 제목이자 주제인 '디자인'에 대해 마무리 언급을 할 차례이다. 제목이 '벨기에 디자인 여행'이라고 했지만 저자는 디자인과 무관해 보이는 것들도 꽤나 열심히 설명한다. '벨기에 안내서' 같아 보이는 부분도 있다. 테마를 벗어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처음부터 저자는 벨기에 디자인을 알기 위해서는 역사와 사회와 문화와 기호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왜? "우리 시대의 디자인은 곧 모든 것"(183p)이라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자신이 몸 담고 살아가는 이 현실의 모든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끊임없이 연구와 모색과 창조를 시도해야 한다.


아르누보(새로운 예술) 정신은 세상의 모든 생각, 모든 만남, 모든 현상 속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아름다우면서도 실용적이고, 곡선의 부드러움을 한껏 표현하면서도 견고하며, 저마다 독특한 스타일의 표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로 어우러지는 하모니를 지닌다.

벨기에 디자인은 바로 이 아르누보 정신의 산물이다. 그것이 건축이든 패션이든, 가구, 도예, 주얼리, 음식 등 모든 것을 관통한다.

작은 국가 벨기에가 작지 않은 이유이다. 생각보다 크고,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생각보다 유연하며, 생각보다 포괄적이며, 생각보다 실질적이다.


브라질 월드컵 H조에 속한 우리나라는 벨기에와의 마지막 예선 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1무1패로, 16강 진출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태에서 벨기에를 상대한다. 현재 벨기에 축구는 시드 배정을 받을 만큼 탑클레스에 올라 있다. 벨기에 축구가 강하다면 그건 각 국가의 축구 특성과 장점이 벨기에의 특성으로 재창조된 것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벨기에를 이기고 희망을 현실화시켜 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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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 지승호가 묻고 강신주가 답하다
강신주.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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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지승호 인터뷰집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은 "인문학은 고유명사이다"라는 데로 집결된다. 모든 인문학자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랑하고 자유로워야 한다. 이것에 얽매이고 저것에 눈치보고 자기 검열을 거쳐야 한다면 진정으로 사랑을 할 수 없고, 자유로울 수도 없다. 결국 자기의 인문학을 할 수 없다. 강신주 인문학의 지향점은 고유성이며, 구현하는 원리는 '사랑과 자유'인 것이다.


강신주의 고유명사인문학의 기반은 어디인가? 제자백가와 김수영이다. 물론 두텁게 쌓은 동서양의 철학, 거기에 현재를 읽어내는 정신도 한 축을 더한다. 강신주 인문학은 동서고금을 종횡하면서 형성된 주체의식이다. 자기 학문의 중심은 자기라는 분명한 인식이다. 김수영의 스스로 도는 팽이가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데, 강신주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것은 바로 스스로 돌고자 하는 의식이다. 바로 자기 글과 사유의 생명성이다. 타인을 모방한 생각이나 글은 이미 죽은 것이다. 설혹 자기의 생각일지라도 타인이 먼저 언급하거나 유사하다면 과감히 폐기하는 정신, 그것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김수영이 말한 글 이전의 아픔이다. 아픔을 겪지 않고서는 결코 고유명사인문학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강신주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현재 인문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경험하고 사유해야 할 것인가? ‘비겁해지지 않고 억압에 저항할 것. 저항자유를 위한 것이다. 제도적으로 만들어놓은 자유가 아니라 진정한 자기해방이다. 제도적으로 만들어놓은 자유란 기득권자들에게 유리한 것들이요,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자유일 뿐이다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라는 말은 곧 보수기득권자들이 만들어놓은 테두리 안에서 당신이 누릴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누리시오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민주란 모든 사람들이 자유로운 상태를 말한다. 민주주의는 아나키즘과 상통한다.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다수결이나 대의민주주의와 등식으로 착각한다. 대의제로는 결코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 국민들을 위한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원 자신들이 생각하는 법을 만드는 것이다. ‘민주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통제장치일 뿐이다. 진정한 자유는 모든 억압으로부터, 모든 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누구나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어떻게 자유를 형성할 수 있는가? “한 사람이 국가와 사회와 가정의 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 그 사람의 진정한 자유란 얻기 힘들다.” 강신주가 말하는 자유란 자신을 둘러싼 외형적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 자유, 정신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리하여 자기 고유의 정신을 표출하는 것이다.


     

강신주 인문학의 핵심은 사랑과 자유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글을 쓸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니 남이 좋다 하는 것을 따라가거나 짜깁기 하여 자기 것처럼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랑을 하려면 온몸으로 해야 한다. 끝까지 가보는 것만이 사랑이다. 어떤 여지를 남겨두거나 비껴갈 틈을 주거나 활로를 열어놓는 것이 아니라 끝내 되돌아 나올 수 없는 그러한 곳으로 나를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 그러할 때 그 글은 진정성을 얻을 수 있다. 앎과 사랑함은 다르다. 앎만 가지고 쓰는 글은 죽은 글이다. 사랑할 때만이 자유로울 수 있고, 자유로운 글이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글이다.

강신주가 저술을 하는 것은 자유와 억압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그 억압에 대항하는 베이스를 만들고자 하는 데 있다. 제자백가 시리즈 출판 계획에서 그 부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처절한 절망 속에서 꿈꾸는 희망의 폭이 곧 그 사유의 깊이를 말해준다면 제자백가의 사유에는 깊이가 있어요. 그렇기에 우리가 이 절망에서 어떻게 벗어날까에 대한 꿈을 제자백가가 제시해줄 수 있는 거예요.”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은 강신주 인문학 입문서이자 강의와 책을 통하여 다 하지 못한 말들의 부언이며, 17권의 저서에 대한 해설이자 각주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내내 그의 다변에 가까운 말을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지겹기는 했지만 그래도 견딜만 했다. 생생한 토로는 높은 가독성과 흡입력을 지녔다.

그는 기독교와 한국 정치를 비판하는 책을 쓸 계획이라고 했다. 식상해 보이는 이 테마가 강신주에게 있어서만은 필연성을 지니는 이유는 종교와 국가가 사랑과 자유를 억압하는 대표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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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서가
신순옥 지음 / 북바이북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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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도서 가운데 먼저 배송되어 온 남편의 서가를 읽는다. 도서평론가 최성일의 부인 신순옥이 쓴 독서에세이이자 죽은 남편을 기리는 글이다. 남편의 유고집 한 권의 책》(연암서가, 2011) 서문에서 이미 그녀의 글솜씨를 보았던 터라 격주간 기획회의에 독서에세이를 연재할 때 책으로 엮여져 나오리라고 예상했다.

      


얼른 읽어보고 싶었다. 다만 마음속에서는 서두르면서도 책 구입을 망설였던 것은 얼른 읽고 싶은 욕구와 일단 책을 구입하면 당장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의무감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구입해놓고서도 미뤄둔 책들이 많은 탓에 당장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어쨌든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왔고, 퇴근길 전철 안에서 몇 꼭지를 읽는다.


신순옥 글쓰기의 힘은 서사능력에 있다. 소재를 잘 엮어 끝까지 이끌고 가는 힘은 깊은 숙고, 면밀한 관찰, 철저한 기획에서 나온다. 정해진 분량 안에서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연재글은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흔들림 없이 끌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에피소드를 긴밀하게 연결시킴으로써 테마를 유지한다. 사건과 의미를 연결 지으면서 결국에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지점으로 나아가는 능력은 저자의 기획 능력이 뛰어나다는 증거이다.


글쓰기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맞물린 결과이다. 머릿속에 발랄한 상상과 사유가 마구 뛰놀아야 한다. 이미지와 아이디어와 의미가 자유롭게 연결되어야 한다. 경직되면 수준 미달의 글이 나오기 마련이다. 내가 쓴 글도 억지로 쓴 것과 술술 풀려나와 쓴 것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

남편의 서가도 분량을 맞추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눈에 띄기도 한다. 그러나 숙성되고 소화가 되어 나온 글이라는 데 이견을 달고 싶지는 않다.

      


남편의 서가는 두 축을 기반으로 한다. 하나는 남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추억, 남편이 남긴 책과 글에 관한 것이다. 또 하나는 저자의 일상과 읽은 책들이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애절함, 후회와 자책, 사랑과 고마움, 존경과 감탄의 감정들이 녹아드는 글, 아이들을 키우면서 겪는 사소한 일상들, 책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와 책에 대한 견해가 녹아 있다.


제목만 보면 순전히 남편을 애도하는 내용으로만 채워져 있을 것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만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을 기르는 어머니로서의 일상이 더 많이 섞여 있다.

독서에세이를 표방하는 만큼 책을 중심에 놓았다. 그렇다고 칭찬 일변도로 전개하지는 않는다. ‘실망이라거나 주인공의 자기자랑’, 심지어 저자의 이름을 책 제목으로 올린 것에 대한 언짢음까지 언급한다. 물론 단편적으로만 판단하고 넘어가려고 했다면 저자는 그 책들을 언급 대상으로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실망의 총평 속에도 공감이 가거나 수용해야 할 부분들은 존재한다. 신순옥은 그것을 말하기 위하여 그 책들을 내세운다.

      


남편의 서가라고 하였지만, 남편의 서가에 꽂힌 책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다. 남편의 서가에서 골라온 책들도 있고, 남편 앞으로 배달되어온 책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책들 역시 저자가 새롭게 선정한 것이다. 남편의 독서 취향을 따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동화와 그림책들이 크게 차지하는 것은 지은이의 독서 취향과 육아의 입장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좋은 글이 되기 위한 첫째 조건은 감동이라고 생각한다. 감동을 주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글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슬픔이든 환희든, 열정이든 의욕이든, 좌절이든 사랑이든 읽은 이의 감정을 움직이게 하는 글은 좋은 글이 갖추어야 할 최대 미덕을 일단 확보하였다고 볼 수 있다. 나에게 이 책은 좋은 글의 범주에 속한다. 책에 스민 진정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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