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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 지승호가 묻고 강신주가 답하다
강신주.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강신주, 지승호 인터뷰집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은 "인문학은 고유명사이다"라는 데로 집결된다. 모든 인문학자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랑하고 자유로워야 한다. 이것에 얽매이고 저것에 눈치보고 자기 검열을 거쳐야 한다면 진정으로 사랑을 할 수 없고, 자유로울 수도 없다. 결국 자기의 인문학을 할 수 없다. 강신주 인문학의 지향점은 ‘고유성’이며, 구현하는 원리는 '사랑과 자유'인 것이다.
강신주의 ‘고유명사인문학’의 기반은 어디인가? 제자백가와 김수영이다. 물론 두텁게 쌓은 동서양의 철학, 거기에 현재를 읽어내는 정신도 한 축을 더한다. 강신주 인문학은 동서고금을 종횡하면서 형성된 주체의식이다. 자기 학문의 중심은 자기라는 분명한 인식이다. 김수영의 ‘스스로 도는 팽이’가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데, 강신주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것은 바로 스스로 돌고자 하는 의식이다. 바로 자기 글과 사유의 생명성이다. 타인을 모방한 생각이나 글은 이미 죽은 것이다. 설혹 자기의 생각일지라도 타인이 먼저 언급하거나 유사하다면 과감히 폐기하는 정신, 그것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김수영이 말한 ‘글 이전의 아픔’이다. 아픔을 겪지 않고서는 결코 고유명사인문학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강신주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현재 인문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경험하고 사유해야 할 것인가? ‘비겁해지지 않고 억압에 저항할 것.’ 그 ‘저항’은 ‘자유’를 위한 것이다. 제도적으로 만들어놓은 자유가 아니라 진정한 자기해방이다. 제도적으로 만들어놓은 자유란 기득권자들에게 유리한 것들이요,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자유일 뿐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라는 말은 곧 ‘보수기득권자들이 만들어놓은 테두리 안에서 당신이 누릴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누리시오’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민주’란 모든 사람들이 자유로운 상태를 말한다. 민주주의는 아나키즘과 상통한다.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다수결이나 대의민주주의와 등식으로 착각한다. 대의제로는 결코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 국민들을 위한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원 자신들이 생각하는 법’을 만드는 것이다. ‘민주’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통제장치일 뿐이다. 진정한 자유는 모든 억압으로부터, 모든 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누구나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어떻게 자유를 형성할 수 있는가? “한 사람이 국가와 사회와 가정의 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 그 사람의 진정한 자유란 얻기 힘들다.” 강신주가 말하는 ‘자유’란 자신을 둘러싼 외형적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 자유, 정신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리하여 자기 고유의 정신을 표출하는 것이다.

강신주 인문학의 핵심은 사랑과 자유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글을 쓸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니 남이 좋다 하는 것을 따라가거나 짜깁기 하여 자기 것처럼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랑을 하려면 온몸으로 해야 한다. 끝까지 가보는 것만이 사랑이다. 어떤 여지를 남겨두거나 비껴갈 틈을 주거나 활로를 열어놓는 것이 아니라 끝내 되돌아 나올 수 없는 그러한 곳으로 나를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 그러할 때 그 글은 진정성을 얻을 수 있다. 앎과 사랑함은 다르다. 앎만 가지고 쓰는 글은 죽은 글이다. 사랑할 때만이 자유로울 수 있고, 자유로운 글이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글이다.
강신주가 저술을 하는 것은 자유와 억압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그 억압에 대항하는 베이스를 만들고자 하는 데 있다. 제자백가 시리즈 출판 계획에서 그 부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처절한 절망 속에서 꿈꾸는 희망의 폭이 곧 그 사유의 깊이를 말해준다면 제자백가의 사유에는 깊이가 있어요. 그렇기에 우리가 이 절망에서 어떻게 벗어날까에 대한 꿈을 제자백가가 제시해줄 수 있는 거예요.”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은 강신주 인문학 입문서이자 강의와 책을 통하여 다 하지 못한 말들의 부언이며, 17권의 저서에 대한 해설이자 각주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내내 그의 다변에 가까운 말을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지겹기는 했지만 그래도 견딜만 했다. 생생한 토로는 높은 가독성과 흡입력을 지녔다.
그는 기독교와 한국 정치를 비판하는 책을 쓸 계획이라고 했다. 식상해 보이는 이 테마가 강신주에게 있어서만은 필연성을 지니는 이유는 종교와 국가가 사랑과 자유를 억압하는 대표성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