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디자인 여행 안그라픽스 디자인 여행 7
지은경 지음, 세바스티안 슈티제 사진 / 안그라픽스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지은경의 <벨기에 디자인 여행>(안그라픽스, 2013)을 읽다. 

벨기에는 작은 나라이다.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의 크기이다. 영토가 작은 이 나라는 묘하게도 네덜란드어를 쓰는 북부의 플랑드르 지방, 프랑스어를 쓰는 남부의 왈로니아 지방, 그리고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도 또 다른 지자체를 이룬다. 그러다보니 세 명의 국무총리로 세 영역의 통치가 따로, 또 함께 이뤄진다. 그럼에도 조화롭고 평화롭다.


벨기에 디자인은 뛰어나다. 그 디자인은 고유성이나 단일성을 고집하지 않는 수용과 유지, 조화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벨기에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벨기에가 작은 나라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벨기에 수도 브뤼셀은 유럽의 수도라고 불릴 만큼 유럽의 정상들이 브뤼셀에 모여 주요한 회의를 하고 정책을 논의한다.

19세기에 벨기에가 국가로 설립될 때 세계에서는 벨기에가 10년도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벨기에는 국제 동세를 면밀히 살핀 다음 식민지 경쟁에 효과적으로 뛰어들었고, 19세기 중반 공업국가로 자리매김하였다.

심지어 미국의 디자인 평론가 마이클 캐널은 "다음 세대의 디자인 스팟이 벨기에"라고 할 정도로 세계 디자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금 이 시대의 디자인 코드를 읽고 다음 디자인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면 벨기에가 가진 디자인 이야기는 분명 그 안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10p)




나는 벨기에에 단지 2박3일 머물렀지만, 전통과 현대의 공존, 전통 벽돌 건물과 아르누보 구조의 만남, 오랜 세월과 현대 조명과의 만남은 가히 신비로울 정도였다. 지금 되새겨보면 왜 그렇게 서둘러 벨기에를 지나갔던가 아쉬울 정도이다. 브뤼헤와 겐트, 안트워프에 주저 앉아 오래 머무르며 "시대와 공간의 다양성, 형태들의 상이함에서 균형을 이루며 동시애 전통을 자킬 줄 아는 벨기에 서람들의 지혜"(18p)를 잘 살펴보았어야 했지 싶다. 벨기에를 더 잘 알아야 할 숙제로 남겨두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벨기에를 조금 더듬어 보고 싶어서 손에 든 책이 바로 <벨기에 디자인 여행>이다.


컨셉을 디자인으로 맞춘 것은 잘 한 것 같다. 흥미롭다. 저자가 전시 기획자이자 에디터이기 때문이었을까.

다음의 구절에서 벨기에 디자인에 주목한 이유를 알 수 있다.

"프랑스의 화려함, 독일의 미니멀리즘, 네덜란드 실용주의, 북부 유럽의 담백함이 어우러져 언뜻 이도 저도 아닌 듯 보이지만, 사실은 각 스타일의 장점만을 모아놓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벨기에 디자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동시대인들이 추구하는 문화 성향과 적절한 만남을 이루어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다른 시대, 각기 다른 디자인의 물건들과 오브제들이 모여 산만한 듯 뒤섞여 새로운 스타일이 탄생하고 있다. 이것은 전 세계의 레스토랑이나 카페 등에서 선도적으로 이끄는 인테리이어 디자인 스타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벨기에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이러한 스타일을 누려왔다. 따라서 다음 디자인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면 벨기에의 현대 스타일을, 그리고 그들이 지향하는 스타일을 한 번쯤 엿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18~19p)


저자는 '벨기에 디자인'이어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유럽의 중심에 위치하여 교통의 발달과 교류를 통한 현대문화의 발달을 이룬 지리적 특성, 역사와 언어의 혼란 등 수많은 불협화음을 독특한 강점으로 바꾸었고 다양한 생각과 언어에 따른 분열을 국제화시대에 폭넓은 시각으로 인식한 역사적 배경, 그리고 현실적이며 긍정적 타협정신을 바탕에 둔 벨기에 사상 때문이라고 했다.

저자는 이러한 벨기에의 특성을 밝히고, 첫 장에서 도시 디자인과 아이콘을 살핀 후, 본격적인 디자인 여행으로 접어든다. 요리를 다룬 <테이블 위의 디자인>, <전통 위에 뿌리 내린 패션 실험 정신>, 건축과 인테리어를 다룬 <공간을 위한 디자인 철학>, <디자인 속의 예술과 장인 정신>, <진정성 있는 삶을 향한 디자인>으로 각 장을 구성하였다.


여담이지만 지금 어린 세대들에게 뽀로로는 가히 신적인 존재이다. 울다가도 뽀로로만 틀어주면 울음을 그치니 전래동화의 곶감과 같은 존재이다. 우리 세대가 어렸을 때 즐겨보았던 만화 드라마는 개구장이 스머프였다. 뽀로로 정도의 인기였다. 그 스머프가 벨기에 작가 피에르 쿨리포드가 1958년에 완성한 만화이다.





자, 이제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을 벨기에를 한 번 살펴보자.

먼저 벨기에 맥주가 유명한 것은 누구나 다 안다. 맥주에 한 자부심 하는 독일인들도 좋아하는 맥주로는 벨기에 맥주를 꼽는다. 맥주순수령으로 인해 물과 호프만을 사용해야 하는 독일과 달리 벨기에는 다양한 방법과 재료를 통해 독특한 풍미와 향을 가진 맥주를 만들어내고 있다. 

맥주의 꽃이라고 할 트라피스트 맥주를 우선 꼽을 수 있겠다. 바티칸에서 인정하고 트라피스트수도회에서만 만드는 맥주 트라피스트는 전세계에 벨기에가 6종, 네덜란드가 1종 있을 뿐이다. 그 맛을 보려면 생산량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몇 년 전에 예약해야 한다고 한다. 

물론 두블(Duvel), 레페(Leffe), 호가든, 오르발 맥주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벨기에 맥주의 다양성에 '언제 저걸 다 맛보나' 싶을 정도이다. 브뤼헤에서 열리는 브뤼헤비르페스티발은 세계 최대 맥주 축제로도 불린다.


벨기에 하면 맥주만큼이나 유명한 것이 초콜릿이다. 품격 있는 맛과 모양은 가히 아트 수준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브랜드는 노이하우스, 마콜리니, 고디바이다. 고디바는 광화문, 삼청동, 홍대, 가로수길, 청진동 등에 있는 전문점에서도 맛볼  수 있다. 

요즘 초콜릿만큼이나 사랑을 받는 것이 와플이다. 벨기에 와플은 그 자체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든다. 프렌치후라이라 불리는 감자튀김의 원조가 벨기에이고, 홍합요리로도 유명하다.

패션도 빼놓을 수 없다. '레이스의 도시'로 불리는 브뤼헤, 전 세계 다이아몬드 유통 물량의 60%를 담당하고 있는 앤트워프의 다이야몬드의 거리, 세계3대 패션학교로 손꼽히는 앤트워프왕립예술학교를 위시하여, 드리드 반 노튼, 마튼 마르겔라, 엘비스 폼필리오와 같은 디자이너의 명성은 너무도 높다. 


이제 이 책의 제목이자 주제인 '디자인'에 대해 마무리 언급을 할 차례이다. 제목이 '벨기에 디자인 여행'이라고 했지만 저자는 디자인과 무관해 보이는 것들도 꽤나 열심히 설명한다. '벨기에 안내서' 같아 보이는 부분도 있다. 테마를 벗어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처음부터 저자는 벨기에 디자인을 알기 위해서는 역사와 사회와 문화와 기호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왜? "우리 시대의 디자인은 곧 모든 것"(183p)이라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자신이 몸 담고 살아가는 이 현실의 모든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끊임없이 연구와 모색과 창조를 시도해야 한다.


아르누보(새로운 예술) 정신은 세상의 모든 생각, 모든 만남, 모든 현상 속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아름다우면서도 실용적이고, 곡선의 부드러움을 한껏 표현하면서도 견고하며, 저마다 독특한 스타일의 표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로 어우러지는 하모니를 지닌다.

벨기에 디자인은 바로 이 아르누보 정신의 산물이다. 그것이 건축이든 패션이든, 가구, 도예, 주얼리, 음식 등 모든 것을 관통한다.

작은 국가 벨기에가 작지 않은 이유이다. 생각보다 크고,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생각보다 유연하며, 생각보다 포괄적이며, 생각보다 실질적이다.


브라질 월드컵 H조에 속한 우리나라는 벨기에와의 마지막 예선 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1무1패로, 16강 진출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태에서 벨기에를 상대한다. 현재 벨기에 축구는 시드 배정을 받을 만큼 탑클레스에 올라 있다. 벨기에 축구가 강하다면 그건 각 국가의 축구 특성과 장점이 벨기에의 특성으로 재창조된 것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벨기에를 이기고 희망을 현실화시켜 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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