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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문을 두드리다 - 오늘의 중국 문화와 예술 들여다보기
인지난 지음, 김태만 옮김 / 학고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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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베네에서 인지난의 홀로 문을 두드리다(獨自叩門)(학고재, 2012)를 읽다.

오늘의 중국문화와 예술 들여다보기라는 비교적 명징한 부제에 비하여 다소 막연하고 문학적 느낌마저 자아내는 홀로 문을 두드리다중국 예술 평론서 출판사상 최다 쇄수 기록 보유라는 설명도 붙어 있다. 책이 많이 판매된다는 건 그만큼 주목받는다는 의미 외에도 그 영향력이 크다는 말도 된다. 인지난(尹吉男)이라는 저자 이름만 알고 있던 나로서는 도대체 얼마나 팔렸기에?’라는 약간의 궁금함과 거부감이 함께 버무려진 정도의 관심으로 책을 펼쳤다. 학고재라는 출판사의 신뢰성이 조금 더해지긴 했지만 중국 현대미술의 거품 가운데 하나라는 이미지를 떨칠 수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한국어판 서문을 읽으면서 나의 선입견은 깨지기 시작하였다. 이 책이 지닌 영향성과 인기도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저자는 예술의 감응과 그것을 포착하여 글로 쓰는 비상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글들은 가장 소박한 표현에 기초하고 있는 만큼, 대단히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다. 이 때문에 다른 난삽하고 거친 평론들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5p)

구체적이면서 직접적이라는 말은 작품에 대하여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얘기를 하지 않고 구체적인 언급, 직접적 표현이라는 의미이다. 그렇게 하려면 그만큼 작품에 대한 분명한 주관과 작가 의중을 꿰뚫는 통찰력, 면밀한 검토, 충분한 예지력이 충족되어야 가능하다. 미술관련 책들을 살펴보면 막연함과 이해 못할 용어와 표현들이 난무한다. 구체성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안지난은 1993년 서문에 부제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해놓았다. 이 설명만으로도 저자가 어떤 생각과 의도로 연재원고를 썼고, 이를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하게 되었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오늘의 중국 문화와 예술 들여다보기라는 부제에서 들여다보기라는 것은 가까이서 자세히 살핀다는 의미다. 첫째로는 시간상 현재와 매우 가깝다는 의미고 둘째로는 공간상 나와 매우 가깝다는 뜻이다. 결국 나는 가까운 곳에서 마음으로 느끼는 자연적 친밀 상태에 도달함으로써 생활과의 일치를 추구한 것이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에서 언급한 작가나 작품은 주류에 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생활했던 그 순간에서는 매우 특별한 것으로서, 내게 무엇인가 쓰고 싶다는 동기를 부여해 나의 생활을 한층 더 풍부하게 해줬다. 들여다봄으로써 시선이 명확해질 뿐 아니라 앞을 똑바로 볼 수 있다. 이런 근거리 관찰을 통해 얻은 성과를 돌이켜보면 수많은 글 속에 생활사와 연관된 이야기나 상황들이 엮여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15p)

안지난의 말대로 들여다보기시선이 명확해질 뿐 아니라 앞을 똑바로 볼 수 있다.” 반면 시간과 공간상 너무 밀접하다는 건 거리감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문제점도 노출시킨다.


그러나 예술작품 감상에 있어서 객관성이 가능할까. “예술을 논하는 글을 쓴다는 것은 조류학(鳥類學)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13p)는 저자의 말처럼 예술은 완전히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일”(345~347p)이다. 예술감상은 마땅히 개인적인 직접 체험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당연히 마음에 와 닿는 예술작품이 글을 쓰도록 추동하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술에 대한 나의 태도는 매우 주관적일지도 모른다. 예술 작품이나 예술 현상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고 해서 모두 결과로 남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마음과 부딪혔을 때라야 글로 남을 수 있다.”(13p)

오늘날 출간되는 수많은 미술평론서들이 막연할 뿐만 아니라 감동적으로도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마음에 부딪힌작품들, 쓰고 싶다는 동기부여 없이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글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쓰고 싶다는 간절함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작품에 대해 들여다보기를 시도하기란 당연히 쉽지 않다.


    


원서의 대중적 반응과 그 가치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 가진 것은 인지난이 주류가 아닌,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대하면서, 혹은 다가가서 들여다보면서 중국 미술의 순간을 어떻게 보았는가 하는 점이다.

어차피 생존하여 현재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살피는 일이라면 오늘 한국의 현재에서도 연관성이 있을 것이고, 그러할 때 인지난의 시선과 관심은 우리에게도 유효할 수 있을 테니까.

 

이 책의 가치는 역시 현대 미술의 현장에서 생동하는 기운을 느끼게 해주는 데 있다. 물론 이 책이 처음 출간된 시기로 보면 20년이 지났지만, 그 역시도 현대, 당대의 저자와 호흡하던 시기의 작가와 작품들이다.

저자는 북경대학에서 고고학을, 중앙미술학원에서 중국미술사학을 전공하였다. 이러한 학문 과정을 그가 오늘의 중국 문화와 예술들여다보게한 바탕이 되었다.

나는 당시 중앙미술학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옛것[]’지금의 것[]’이라는 거대한 두 영역에 대해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그 옛날 사마천이 그러했던 것처럼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변화를 통달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7p)

현재는 반드시 과거가 이룬 역사의 집적이나 정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는 과거가 있다는 자체로 많은 새로움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법고창신이 왜 중요한가. 바로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과거를 아는 것이요,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과정에 통달한다면 현재를 보는 눈은 그만큼 더 밝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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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시학 - 스물네 개의 시적 풍경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3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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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은 동파지림(東坡志林)에서 왕유의 시와 그림을 두고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라고 평하였다. 시에서 그림의 요소를 보고, 또 그림에서 시적 요소를 본다는 의미이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시··화 삼절을 높이 꼽았고, 또 지향해 왔다. 시와 서, 화가 상통 조화를 이루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서화(書畵) 이론에서 서(), () 용어를 시()로 바꿔 적용시켜 보면 참으로 묘하게도 서화론이 시론으로도 손색이 없다. 반대로 시론에 시 대신 서화를 적용시켜도 서화론이 된다. 물론 시, , 화 고유의 특성과 이론 체계가 따로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 , 화가 본질적 측면에서 교감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안대회 교수의 궁극의 시학(문학동네, 2013)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을 심도 깊게 분석한 궁극의 시학20111년 동안 매주 네이버 카페에서 온라인 강의 형식으로 연재한 것을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이다. 나는 연재 사실을 진작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시간과 정성 부족으로 모두 챙겨 읽지는 못하였다. 연재 원고를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하는 것은 우리 출판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처럼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룬 글이 7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묶여져 나온 것에 반가움이 앞선다.


시품은 스물네 가지 시의 풍격을 논한 글이다. 웅혼(雄渾), 충담(沖淡), 섬농(纖穠), 침착(沈著), 고고(高古), 전아(典雅), 세련(洗鍊), 경건(勁健), 기려(綺麗), 자연(自然), 함축(含蓄), 호방(豪放), 정신(精神), 진밀(縝密), 소야(疏野), 청기(淸奇), 위곡(委曲), 실경(實境), 비개(悲慨), 형용(形容), 초예(超詣), 표일(飄逸), 광달(曠達), 유동(流動) 이렇게 24개의 각 풍격마다 41248자로, 1,152자로 쓴, 짧은 시학서이다. 저자는 당나라 말엽의 시인 사공도로 의심 없이 알려져 있었지만, 사공도가 아닐 수 있다는 견해가 1992년 스티븐 오언에 의해 제기되었고, 지금은 사공도의 저작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우위에 있다.


시품이 지닌 의미를 저자는 해제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시품은 그 추상성 덕분에 중요한 시학의 진실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는 인정을 받았다. 그러한 방식은 인간과 예술과 문학을 직관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으로 판단하고자 한 동양 고유의 방식이자 심미적 판단의 틀이다. 시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최고의 진리를 표현한 시학의 모델로서 시적이기까지 한 시품은 비평임에도 불구하고 감상해야 할 일종의 문학작품으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시품을 이해하는 것은 지난날의 시 전반을 이해하고 나아가 동아시아 미학의 정수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다.”(8p)


시품은 시를 논할 때 빠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의 창작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축윤명은 시품을 서()로 썼고, 문팽은 시품을 새겨 이십사시품인보(二十四詩品印譜)를 남기는 등 시품을 내용으로 한 화보와 인보가 여럿 제작되었다. 시품은 명·청뿐만 아니라 조선에서도 일찍부터 크게 영향을 끼쳤다. 정선과 이광사는 그림과 글씨로 사공도시품첩(司空圖詩品帖)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시품을 그림으로 제작한 것 가운데 한두 가지만 예로 들어보겠다. 시품을 그림으로 옮기는 첫째 원칙은 형상성이다. 구체적 이미지를 통하여 추상적 의미를 획득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시적 대상의 중심을 잘 보여주기 위해서는 구체적 형상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구체적 형상을 보여주지만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 것은 더 중요하다. 시품각 풍격을 그린 반시직의 그림이 정선, 장부의 그림보다 더 추상적인 것은 초이상외 득기환중(超以象外 得其環中”, 형상 밖으로 훌쩍 벗어나 존재의 중심을 손에 쥔다.”는 시학을 극적으로 표출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 시품이 동아시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것일까? “시품이 지닌 미학과 표현 방식에는 당시 예술가들의 심미안을 강하게 자극하는 요소가 있었고, 그 미학은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18p)


그렇다면 오늘날 시품은 어떠한 미학적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가를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 대답이 바로 궁극의 시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시품은 시의 창작과 감상을 목적으로 한 시학서이다. 그러나 시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서예, 회화, 전각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나아가 삶의 방향과 태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현대사회에서의 문인적 삶은 전통사회와는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당연히 현대사회에 전통적인 문예 가치와 미학을 그대로 적용시키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품에서 제시한 풍격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술적, 예술가적 사유와 풍모에서 소홀하게 여겨왔거나 상대적으로 덜 중시되었던 풍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일깨우고, 나아가 전통시대에 동아시아 미학의 중요한 부분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의미를 지닌다.


그런 점에서 궁극의 시학시품의 각 풍격에 대한 해설에 그치지 않고 이 책의 저술 목표인 동아시아 지성인의 미학과 그 궁극적 담론인 인생의 품격을 제시하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을 성취해냈다는 데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자구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꼼꼼하게 분석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세한 고증까지 마다하지 않은 자세가 바로 이 책에 신뢰를 부여하게 한다. 나아가 시에만 국한하지 않고, 그림에도 큰 비중을 두어 시품을 소재로 한 그림들을 하나하나 분석하였다.

개인적으로 특히 관심이 가는 부분은 사공도시품첩(司空圖詩品帖)의 이광사의 글씨이다. 정선의 그림에 3년 후 서예로 시품 각 풍격을 쓴 이광사의 글씨는 전, , , , 초서의 다양한 변화로 풍격에 부합하는 서예 작품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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