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으로  바위를 친다고 했던가!

시간앞에 우리는 조금씩 지쳐갔다.

1년이상 민경이의 죽음에 대해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지만 우리는 어쩔수 없었다.

세상도 우리를 기다려주지않았다.

결국 수배중이던 영기형이 검거되어 징역을 살게 되고 나와 형진이형은 군입대를 조건으로 형을 면제받았다.

군대있으면서 김영삼정부가 탄생되었다.

많은기대를 하였지만 바뀐것은 없었다.

3년간 군대에서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휴가를나와서 진주교도소에 있는 영기형을 면회갔고 민경이의 묘지에 국화꽃을 놓아둔것 이외에 나는 아무것도 할수없었고 하지도 못했다.

대제후 복학을 하고 학교로 돌아갔을때에도 학교는 많이변해 있었다.

이제 이념이나 자유 및 민주화를 외치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취업과 취미가 주된 관심사였다.

복학후 나는 시유가 제대할때까지 친구를 사귀지는 못했다.

4학년 2학기 대학원진학과 고시공부를 두고 무척갈등했다.

취업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런데 참아이러니 하게도 동문후배녀석때문에 한여자를 만났다.

3:3 미팅에 펑크가나 동문녀석은 끈질기게 내게 대타로 나설것을 요구했고 나는 거절했다.

그녀석은 울다시피 애원했고 가만히 생각하니 졸업할때까지 미팅한번 못한내가 한번쯤 참석하여 그저한시간만 차한잔을 마시기로 하는것도 별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나는 운명의 여자를 만났다.

정은경,그녀는 참시원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묘하게도 그녀와 나는 짝짓기를 하여  파트너가 되었다.

그런데 애프터를 신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심하게 질책을 당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민경이를 맨처음 만나  다투었던 형법시험시간이  생각났다.

그리고 헤어졌지만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구내식당에서 밥을먹을때마다 마주치고 서로 모른척하기가 어색하여 인사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그해 가을에 우리는 시간이 날때마다 교정에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 이야기를 하며 사랑을 키워갔다.

왠지 민경에게 자꾸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에게 어렵게 민경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녀는 민경이처럼 당당한 여자였다.

"지훈씨 나사랑하지? 나도 첫만남에서 지훈씨가 마음에 들었어?" 

한동안 갈등의 시간을 보냈다.

그당시 나는 집에서 나와서 거의 부모님과 연락을 끊고 지냈다.

녹슬지 않은 영어수학 실력때문에 학비와 생활비는 별로 걱정없이 지냈다.

겨울 무작정 은경의 손에 이끌려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그녀는 내가 졸업과 동시에 나와 결혼할것을 선언했고,그녀의 부친은 그녀의 나이가 어리고 내장래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다.

그리고 그해겨울 크리스마스에 짐을싸들고 내자취방으로 은경이가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주저없이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였다.

졸업과 동시에 나는 취업을 위해 2주간을 뛰어 다녀서 섬유업체에 취업을 하였다.

그리고 일천만원짜리 전세를 얻었다.

그후로 아들 둘을 낳았다.

정신없이 그들의 생활을 위해서 뛰었고 그러는사이에 아이엠에프가 터지고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했다.

그리고 출소한 영기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의문사진상위원회가 만들어 지고 정식으로 민경의 죽음에 관한 것을 접수했다.

오랜만에 참으로 영기형과 시유,형진이형이 모였다.

영기형은 졸업후 낚시를 하면서 유랑생활을 하다 결국 낚시전문점을 차렸다.

그리고 딸둘을 놓고 부산이 싫다고 전북정읍에다 터를 닦고 있었다.

한때2만명이상의 학생들을 리더하던 형은 이제 가장으로 돌아와 딸자랑을 늘어놓았다.

시유는 안산공단에 취업하여 경기도에 살고 있었다.

형진이형은 한국이 싫다고 호주로 이민가서 살고 있었다.

문득 태석이형이 생각났다.

경정으로 근무하다 그만두고 유통과 부동산에 투자를 해서 돈을 좀벌었다고 했다.

가끔통화하면 서울올라오라고 하며 좋은술집많이 안다고 나를 유혹했다.

전설의 미자선배의 행방을 아는사람은 안무도 없었다.

한간에 이민갔다는 설도 있고,양심의 가책을 받아 머리깎고 비구니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아무도 그행방을 몰랐다.

민경의 죽음에 관하여 끝까지 증언을 거부했던 유광수 박사에 관하여서도 그의 행방을 아무도 몰랐다.

항간에 이민설이 있었지만 그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았다.

의문사진상위원회가 조사한 결론은 민경의 죽음이 타살로 밝켜지고 민경은 모교에서 명예졸업장을 수여 받았다.

우린모두 민경의 무덤가에 참으로 오랜만에 국화꽃을 놓았다.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던 소주를 무덤에 뿌려놓았다.

그날저녁 집으로 돌아와 나는 윤종신의 오래전그날을 틀어놓고 민경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아내인 은경은 벌써 눈치를 채고 아직도 마음속에 민경이고 자신은 껍데기라며 하소연했지만

그런 아내를 가만히 안고 토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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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신문을 우리는 샅샅이 훌텄다.

한겨레신문만이 비교적 상세히 우리의 기사를 실었다.

부산일보는 6줄자리 기사를 실었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실은 신문은 하나도 없었다.

"어짜피 데스크에서 다 짤렸겠지, 그들도 기업이잖아"

우리는 정식으로 국가배상구조청구권 신청을 했다.

각대학학보사에서 민경의 죽음을 상세하게 보도하였고,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종교계가 움직였다.

그런데 일은 엉뚱한데서 터졌다.

침묵을 지키던 신문들이 일제히 우리들에게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영주반점주인이 민경이와 나에게 짜장면을 준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실었다.

분명 안기부에서 손을 쓴게 틀림이 없었다.

영주반점에 갔을때 주인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이사건이 잠잠해질때까지 그들이 도피시킨게 틀림없었다. 

우린길고도 지루한싸움을 시작했다.

나를 비롯하여 영기형,형진이형 세사람은 허위사실유포와 명예회손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안기부 및 행정자치부에 의해 고발을 당했다.

저녁부터 우린바빠졌다.

외국어학부( 미국,영국,독일,일본,대만등)에서 각대사관에 민경의 죽음을 소상히 적어 알렸고

세계각국의 언론사에도 알렸다, 마지막으로 우린엠네스티(역주-국제인권사면위원회) 에도 알렸다.

세벽까지 대자보를 쓰고 해가 뜨고 있었다.

집에도 며칠못들어 가서 옷이나 갈아입고 다시나와야 겠다고 생각했다.

교문을 나서는데 도서관에 좋은자릴 잡기위해 아이들이 한둘 올라오고 있었다.

불과 얼마전까지 이렇게 올라오는 아이들속에 내가 있었고, 지금 집으로 가고 있는자리에 민경이가 있었을 것이다.

하늘을 쳐다보니 민경이가 웃고 있는것 처럼 보였다.

다시 힘을내고 싶었다.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서

 

 슬픈일만나에게 (박정만)  

 

사랑이여,슬픈일만 내게 있어다오.

바람도 조금 불고

하얀 대추꽃도 맘대로 떨어져서

이제는 그리운 꽃바람으로 定處정해다오

 

세상에 무슨 수로

열매도 맺고 저승꽃으로 어우려져

서러운 한 세상을 건너다 볼것인가.

 

오기로는 살지 말자.

봄이오면 봄이 오는 대로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오는 대로

새 울고 꽃피는 역사도 보고

한 겨울 新雪이 내리는 골목길도 보자

 

참으로 두려웠다.

육신이 없는 마음으로 하늘도 보며

그 하늘을 믿었기에 山川도 보며

산빛깔 하나로 大國도 보았다.

 

빌어먹을,꿈은 아직 살아있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은 西域에서 자고

그 꿈자리마다 잠만 곤하여

녹두꽃빛으로 세월만 다 저물어 갔다.

 

사랑이여,정작 슬픈일만 내게 있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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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에 도착하여 유광수박사의 스케줄을 체크했다.

오전진료후 오후에는 수업이 있었다.

뒤편 의대교정에서 수업시간을 체크한후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키가한170센티쯤 되어보이는 40대후반의 남자가 강의실을 나오는데 직감적으로 유박사일것 같았다.

"유광수박사님 되시죠?"

"안녕하세요?"

"누구~~~~시더라?"

"강민경학생의 일로 찾아왔습니다" 

그이야기를 듣는 박사는 일순간 심하게 인상을 구겼다.

"경찰에서 나왔어요?,아님 기자인가?"

"아닙니다. 민경이 친구입니다."

"근데 나에게 무슨볼일이?"

교정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민경이와의 일을 소상하게 이야기 했다.

듣고 있던 유박사는 한참을 허공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학생 혹시 담배가진거 있나?"

"예"

내가 담배를 건네나 한모금 깊이 마시던 유박사는 내게 이야기 했다.

"나는 아무것도 이야기 해줄수가없네"

"자네도 언젠가는 이해하겠지만, 나혼자가 아니라 우리학교와 우리병원의 존폐가 걸릴지도 모르는 문제야. 그리고 그부검의 소견서에 싸인한건 내가 맞고 그부검결과도 사실일세."

"박사님 만일 박사님 따님이 그런일을 당했다면 박사님께서는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쉬운일은 아닐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유박사는 완강히 나의 질문을 거부했고 사실확인도 거부했다.

참으로 난감했다.

"전 민경이의 죽음의 진실을 알고싶습니다.자신의 국가권력으로 부터 살해를 당했는데 어찌박사님같으면 하늘에서 편히 눈을감고 쉴수있겠습니까?."

"박사님 박사님은 혹20여년전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하시면서 의사가 되셨을때를 기억하십니까?"

유박사는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박사님을 이해하지만 용기를 내셔서 한슬픈영혼에게 꼭 안식처를 줄수있게 도와주셨으면합니다"

나는  형진이형의 삐삐번호와 학생회사무실전화번호를 적은 메모지를 건네었다.

"생각이 바뀌시면 꼭연락주십시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요"

학교로 오는버스속에서 생각했다. 어차피 쉽지않은 싸움이 안닌가?

상대는 무소불위의 국가권력이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았다.

학교로 도착해 학생회장실에 들어가니 시유와 형진이형이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떻게 됬어?"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진실의 하늘을 어찌저들이 손바닥으로 가릴수 있겠니"

약속된 시간에 기자들이왔고 우리는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부검의의 증언은 첨부를 하지못했다.

다만 나와 중국집아저씨의 사실내용만이 우리가 싸울수 있는 유일한무기라고 생각했다.

보도자료를 배포한후 기자들의 질문사항을 간단히 받았다.

내일신문에 분명히 무삭제로 싣게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녁에 시유랑 형진이형이랑 세명이서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였다.

상당히 내몸이 축나있다며 시유가 형진이영을 졸라 술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목이메어 고기를 입에넣을수가 없었다.

말없이 그저 소주를 입에넣었다.

"지훈아 술만 먹지말고 고기좀먹어,힘을 내야 싸우지"

"고맙다 시유가 그렇지만 별로 배안고파"

"오히려 민경이가 배고플거야,제대로 밥한번먹이지도 못하고 보냈잖아"

일순간 모두가 울음바다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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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하자마자 영주동의 영주반점으로 향했다.

들어서는 순간 며칠전 민경이와 짜장면을 먹던 모습이 떠올랐다.

또다시  내눈에 눈물이 흘렀다.

일단 짜장면과 소주한병을 시켰다.

짜장면과 소주한병을 가져다 주던 주인아저씨는 나를 알아보았다.

"어 며칠전 이쁘장한여학생과 짜장면먹던 학생이네!"

"근데 왜 그여학생안왔어?오면 내가 탕수육공짜로 준다고 했는데"

나는 민경이의 이야기를 주인아저씨에게 들려주었다.

말없이듣던 아저씨는 내소주잔을 뺐어 소주를 따라서 연거푸 마셨다.

"나쁜놈들,뭐세상천지에 할짓이 없어서 연약하고 어린여학생을 죽여,하여튼 세상말세여"

"아저씨 저 민경이의 죽음의 진실을 밝키고 싶어요,좀도와주세요."

"어떻게 하면 되 내가?내가 할수있는일이라면 꼭할게"

"그냥 우리가 그때 여기서 짜장면먹었던 사실만 이야기해주시면 되요."
"그게 뭐어려워서 거짓말도 아니고 있었던 사실인데 염려마 학생"

"근데 그여학생 자꾸눈에 밝피네, 둘이 잘어울렸는데"

"소주한병더줘?"

"아니요, 됬어요 좀더 알아볼것도 있고 참 여기 계산얼마에요?"
"나둬,계산은 무신 이까짓것 얼마한다고, 다음에오면 든든한걸로 먹어"
"내계산은 안할테니까 언제든 오고"
"감사합니다. 연락드릴게요"

학교로 향했다.

이제기자들을 부르고 진실을 알리는 준비를 할차례라고 느꼈다.

영기형이 도피중에 있어서  부학생회장인 형진이형이 대신 준비를 했다.

비밀리에 몇몇기자에게 알렸다.

그리고 태석이형에게 전화했다.

"좀괜찮냐? 지훈아"

"형 나꼭한가지만 도와주라"
"뭔데?"

"민경이 부검의가 누군지 이름좀알려줘"
"건 뭐하게?"
"글쎄 꼭 의사에게 물어볼게 있어?"

"지훈아 나너한테 그거알려주면 모가지다"

"그래도 알려줘 형모가지되면 내가 막노동이라도 해서 평생 형책임질게"
"나 민경이 죽음의 진실을 꼭알고싶어"

"아님 평생후회하면서 살 것 같아"
"형어떤일이있어도 형이안가르쳐줬다고 할게? 응?"

"휴 ~~~~~~~~ 참 너란놈"
1시간뒤에 전화하라고 했다.

형은 부검의가 부산대학병원  내과전문의 유광수박사라고 알려줬다.

이제 유박사만 만나면 모든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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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바닥에 주저앉아 일어설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동료들이 내눈앞에서 깨지고 엎어지는 광경을 힘없이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이내난 그들에게 끌려서 버스에 올랐다.

계속해서 피가 흐르고 버스에 있던 전경한명이 내게 수건을던졌다.

"빨리닦아 임마 버스버리잖아"

쓴웃음이 나왔다.

경찰서에 도착하여 간단한 응급처치를 받고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이름"

"이지훈"

"주민번호"

"690"
이때 다친머리위로 서류를 집어던졌다

"아니 이자식이 여기가 너거집 안방이가?"

울화가 치밀어 조사하던 형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게 죽을라고 어디 눈깔을 치켜떠, 야임마"

"야 박형사,거기조사 하던 친구 이리로 데려와"

뒤를 돌아보니 태석이 형이 낯선사람과 서있었다

"지훈아  머리많이 안아프니"

휴게실로 데려간 형은 내게 걱정스러운듯 물었다

담배를 피워 불을붙이고 내게 줬다.

한모금 깊게 연기를 들이쉬었다.

"너 여기 있을줄알았다. 마침 여기서에 친한동기가 있어 다행이다"

"빨리 병원가서 치료받고 며칠쉬어 그리고 다음번에 들어가면 나 너못빼내줘"

"안갈래,동료들도 다여기있는데 나혼자 어찌나가"

"미친놈 너여기 있으면 민경이 진실을 누가 알아내냐?"

"멍청한놈 내가 말했지? 넌 니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태석이형의손에 힘없이 끌려나왔다.생각보다 머리상처는 크지는 않았다.

5일간 입원하면서 치료를 받았다.어머니는 몸져 누우셨다. 

시유가면회를 와서 그날의 상황을 알수있었다.

3천명이상이 경찰서로 끌려갔다.

영기형은 다행이 몸을 피했다고 들었다.

경찰의 공식발표가 있었다.

민경의 사망시간은  나와 헤어진시간뒤인  정확히 오후2시 30분 ,사망원인 질식사

근데 이상한건 민경의 부검뒤에 점심의 내용물이 밥이라는 발표였다.

분명나와 헤어질때 짜장면을 먹었섰다. 그런데 밥이라니

'오냐 두고보자 너희의 조작을 내가 꼭밝켜내겠다. 그래서 이세상에 민경이의 진실을 알리겠다'

퇴원하면 바로 그중국집부터 찾아갈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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