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신문을 우리는 샅샅이 훌텄다.

한겨레신문만이 비교적 상세히 우리의 기사를 실었다.

부산일보는 6줄자리 기사를 실었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실은 신문은 하나도 없었다.

"어짜피 데스크에서 다 짤렸겠지, 그들도 기업이잖아"

우리는 정식으로 국가배상구조청구권 신청을 했다.

각대학학보사에서 민경의 죽음을 상세하게 보도하였고,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종교계가 움직였다.

그런데 일은 엉뚱한데서 터졌다.

침묵을 지키던 신문들이 일제히 우리들에게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영주반점주인이 민경이와 나에게 짜장면을 준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실었다.

분명 안기부에서 손을 쓴게 틀림이 없었다.

영주반점에 갔을때 주인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이사건이 잠잠해질때까지 그들이 도피시킨게 틀림없었다. 

우린길고도 지루한싸움을 시작했다.

나를 비롯하여 영기형,형진이형 세사람은 허위사실유포와 명예회손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안기부 및 행정자치부에 의해 고발을 당했다.

저녁부터 우린바빠졌다.

외국어학부( 미국,영국,독일,일본,대만등)에서 각대사관에 민경의 죽음을 소상히 적어 알렸고

세계각국의 언론사에도 알렸다, 마지막으로 우린엠네스티(역주-국제인권사면위원회) 에도 알렸다.

세벽까지 대자보를 쓰고 해가 뜨고 있었다.

집에도 며칠못들어 가서 옷이나 갈아입고 다시나와야 겠다고 생각했다.

교문을 나서는데 도서관에 좋은자릴 잡기위해 아이들이 한둘 올라오고 있었다.

불과 얼마전까지 이렇게 올라오는 아이들속에 내가 있었고, 지금 집으로 가고 있는자리에 민경이가 있었을 것이다.

하늘을 쳐다보니 민경이가 웃고 있는것 처럼 보였다.

다시 힘을내고 싶었다.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서

 

 슬픈일만나에게 (박정만)  

 

사랑이여,슬픈일만 내게 있어다오.

바람도 조금 불고

하얀 대추꽃도 맘대로 떨어져서

이제는 그리운 꽃바람으로 定處정해다오

 

세상에 무슨 수로

열매도 맺고 저승꽃으로 어우려져

서러운 한 세상을 건너다 볼것인가.

 

오기로는 살지 말자.

봄이오면 봄이 오는 대로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오는 대로

새 울고 꽃피는 역사도 보고

한 겨울 新雪이 내리는 골목길도 보자

 

참으로 두려웠다.

육신이 없는 마음으로 하늘도 보며

그 하늘을 믿었기에 山川도 보며

산빛깔 하나로 大國도 보았다.

 

빌어먹을,꿈은 아직 살아있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은 西域에서 자고

그 꿈자리마다 잠만 곤하여

녹두꽃빛으로 세월만 다 저물어 갔다.

 

사랑이여,정작 슬픈일만 내게 있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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