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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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 아름다움을 보는 마음의 열정만 있으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한 것을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추함까지 감싸야 하는 포용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속물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사랑에는 어떤 것에도 구속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아마도 나의 이 말이 거슬릴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나의 말을 들어줬으면..내가 말하려는 것은 가식적인 사랑에 대한 비난이 아님을, 어떤 사랑의 형태에 감동받은 나의 마음을 전하려 할 뿐임을 그저 들어줬으면..

여기 모모라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부모에게 버림받았고, 로자라는 '엉덩이 빌려주는 일'로 살아온 늙은 여자와 함께 살아간다. 그 아이의 주위에는 온통 버림받고 아프고 소외받는 사람들 투성이다. 그래서, 모모는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다른 아이보다 일찍 알아버린다.

불공평한 세상에서 사는 모모는 말한다. '선생님, 내 오랜 경험에 의하면 나는 어떤 일에도 너무 어렸던 적은 없어요.'라고 말이다. 갑자기 이 구절을 읽었을 때, 가슴이 뭉클했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다. 철이 들어버린 아이는 겨울에 핀 꽃을 보는 것처럼 애처롭다. 모모는...애처로운 아이였다.

많은 내용들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모가 개를 팔았던 장면이 기억난다. 모모는 자신이 키우던 개를 500프랑이라는 큰 돈을 받고 부잣집 부인한테 판다. 하지만, 그 돈을 하수구에 버려버린다. 왜냐하면, 모모는 개를 정말로 사랑했으므로.. 돈으로 거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아이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사랑'의 감정을 툭툭 던진다. 그래서 사랑없이도 살 수 있는 수치스러운-모모의 말처럼-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래킨다. 모모는 계단도 오르락 내리락 할 수 없을 정도로 뚱뚱해지고 살이 늘어질대로 늘어져 더이상 예쁘지 않은, 그리고 정신이 밝지도 않고 세상에서 가장 못생기고 불행한 로자 아줌마를 사랑한다. 모모가 로자 아줌마가 죽은 후에 그녀의 곁을 지키고 앉아, 그녀를 돌보는 모습은 우리에게 큰 질문을 던진다.'사랑없이도 살 수 있나요?'

모모가 했던 말처럼, 불공평한 세상..이 세상에서 끊임없는 탐욕과 위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모모를 돌아보면서 잊고 사는 순수한 감정을 찾는 기분이다. 그것은 흔한 말이지만, 절대로 빛바랠수 없는 단어이고. 말로는 할 수 없는 영혼의 움직임임을.. 그리고, 모모처럼, 사랑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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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해도 괜찮아 1
권교정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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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면 인물, 성적이면 성적 부족한 것 없고, 각종 재주와 재능을 모두 갖춘 남자 주인공과 가진 것은 귀여운 정의감 하나뿐인 여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심하다 싶을 정도로 순정 만화는 같은 주제가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그래서, 이 만화는 '무언가 다르다'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물론 남자 주인공은 잘 생겼다. 하지만, 만능은 아니다. 성적때문에 고민도 하고 장래를 생각하는 보통의 남자애다. 여자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노래를 잘하고 공부를 잘하지만, 모든 주위의 꽃미남들이 그녀를 죽자사자 따라다니지는 않는다.여기서 말하는 보통이란, 평범하고 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모습중의 일부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언제나 처럼 '그 개인이 가진 비범함과 특별함'이 숨어있다.

가창 실기평가나 모의고사때문에 고민을 하는 고등학생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정말로, 그랬지.. 그 당시 모의고사 문제 하나 실수했을때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모른다. 이 만화의 진가는 이런 부분에서 발휘된다. 특별한 주제로 주제 자체만으로 이야기가 되는 화려함없이도, 작은 일 하나하나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공감이 가게 표현해 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잡아낸다. 평범한 것이 개성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산다. '어색해도 괜찮아'는 이제 고등학생이 된 긍하의 하루하루를 보여주며, 그곳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잊혀졌던 혹은 현재 겪고 있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들이나,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일들이 '추억'으로 드러난다.

또 하나, 스스로 평범하다고 느끼고 있어도 실은 비범하다는 것. 긍하, 강이, 그리고 정언이나 현민이 희정이 덕현이...이들은 학교에서 흔히 보는 학생들일 수 있지만, 그래도 한 사람 한 사람은 독특하고 '남과 다른 재주'를 가진다. 하지만 그 재주들은 오버되지 않아 자연스럽고, 노력하기 때문에 성실하다.잊고 있었던 어떤 그 순간을 살아낼때만이 느낄 수 있는 소중함. 그것을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나는 정말 이 만화를 추천하고 싶다. 책장에 어릴적 읽던 동화책이 한 권쯤 남아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기쁨을 아는 사람은, 이 만화책이 주는 섬세하고도 사실적인 잔 감동을 느낄 줄 알것이다. 지금 자신의 생활에 변화가 필요하다면, 혹은 잃었던 일상의 소중함을 되찾고 싶다면 이 작은 이야기들에 빠져보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여겨진다. 내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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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 - 대중가요를 통해 바라본 우리 시대 이야기
이영미 지음 / 황금가지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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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어느 한 시절도 음악없이 살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음악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렸을때부터 줄곳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동요도 부르고, 만화주제곡부터 CF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까지.. ...정말 그런가?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노래에 인생이 들어 있다는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이 책 안에는 이런 생가드을 구체화 한다.

트로트에 담겨진 절망적인 비애감이라든지, 포크송을 부르던 젊고 순수했던 시절이라든지,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그 때의 인생을 노래로 들려준다. 사실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트로트란 남행열차의 시끄러운 리듬감뿐이니, '비애감'까지 느끼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평론가 '이영미'씨의 노래를 통한 세월들려주기는 재미있고, 때로는 가슴이 찡~해지기도 한다. 고무줄을 하면서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를 부를 때, 나와 내 친구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명랑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사를 다 읊어내려갔을 때 이 노래가 슬프고 가슴아픈 곡이라는걸 알았다.

이렇게 거슬러보는 시대 이야기란, 아직은 어리고 젊은 나에겐 거스른만큼의 시간을 덤으로 붙여준다. 우리 엄마가 이 책을 읽었다면, 그 만큼의 젊음을 돌려줄지도 모르지..
내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서태지'를 읽으며 이제는 내 눈에 아이에 불과한 중학생들은 그런 가수가 있었지,하고 고개를 끄덕이겠지. 웃음이 난다.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비평가다운 차갑고 매서운 소리도 낼 줄 안다. 무작정 좋아하는 맘이 아닌 한 발 밖에서 노래를 부르는 저자의 소리를 들으며, 으쓱한 기분으로 가요계를 바라보자. 건너,건너, 여기까지 오고 있는 우리 대중가요.. 그 안에는 흔할수도 있는 사랑 얘기도, 늙어가는 우리 부모얘기도, 사회를 향한 가슴앓이도, 잃어가는 순수에 대한 슬픔과 메마른 도시인의 목소리까지..인생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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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의 몰락 - 기업의 문화 지배와 교양 문화의 종말
모리스 버만 지음, 심현식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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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이란 말은 불타버리는 거리를 연상케 하고, 황폐해진 도시를 떠오르게 하는 희망없는 단어다. '미국'이란 나라는 강력한 경제력과 막강한 군사력으로 세계에서 제1의 파워를 자랑하는 선진국이다.

미국이 아무리 전세계적으로 '욕을 먹는 나라'일지라도 미국이란 나라가 차지하는 위치는 여전히 단단하지 않은가? 그래서, 처음에는 이 책이 단순한 미국 사회에 대한 불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뻔하게 다루어지는 강대국에 대한 비판은 지루하고 추상적일게 분명할거라는 건방진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우선 눈에 띄는 점은 작가의 성실성이다. 자신의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을 위해서 여러 분야의 책을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고심한 흔적.-밝히자면, 처음부터 쏟아져나오는 인용구들에 대한 반발은 있었다.- 작가는 그렇게 자신의 의견을 우리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 책을 딱 잘라서 '어떤 책'이다라고 정의내리기란 쉽지 않다. 경제적인 불평등, 지적 문화의 저질화, 정신 문화의 소실 등 의 주제로 다양하게 미국 문화와 사회의 여러부분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 그것도 우리가 흔히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던 사소한 부분들까지 들춰내면서 읽는 우리의 자존심을 심하게 상하게 하는 책이라는 점. 이정도일까?

미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할만한 부분까지도 그는 가차없이 건드린다. 대단히 용감하다고 느껴진다. 다수의 입맛에 맞는 책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심장을 찔러버리는 과감성.그리고 이런 시도를 하기위해서는 자신이 하고 있는 비판의 정당성에 대한 설명도 무리없이 해내야한다. 사회에 만연된 심각한 불평등의 문제와 소비주의와 상업주의에 물든 교육과 저질문화를 양상해 내는 미국. 그는 미국문화가 몰락하는 원인과 그 모습을 그려낸다.

이 부분을 읽을 때가 (이런 표현이 자연스러운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처절하다고 느꼈다. 상위 20%가 사회전체의 부의 90%이상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시장 경제에서의 자유경쟁의 한계를 지적한다. 자신들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지구가 태양을 돌고있는 사실조차 모르는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지함. 글쎄.. 이게 비단 미국만의 모습일까..

난 시장경제의 우수성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서 살아남은, 성공한 사람들의 능력을 훌륭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부뒤에 생계를 지켜내기 위해 급급한 사람들을 무능력하다고 생각하며 비난해온건 아닐까. 그들의 정당한 노동력에 대한 대가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있을까,난? ..부끄럽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다. 저자는 대중문화를 저질문화라고 몰아 붙인다. 대중은 그저 우민화 정책으로 떠밀려다니는 의식없는 무리들에 불과하다..그의 주장을 읽다보면 이렇게 생각하는 그의 견해를 엿본다.

대중문화가 저질문화로 불릴수 있는 부분을 가졌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의 이런 견해는 독선적이라고 생각된다.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가 유치하게 생각하는 많은 영화와 베스트 셀러들이 상업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것처럼 모두다 '우스꽝스럽지'는 않다. 난 x-file을 좋아한다. 하지만 신봉하지는 않는다. 대개의 많은 사람들의 의식수준을 하향평준화하고 있는 저자의 주장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각각의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을 수도없이 들으며, 개인의 특성을 인정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 무지에 대한 관용 역시 개인에 대한 존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사회의 지식의 정당성과 고집을 꺽어버리는 상업주의 의식에 대한 경계부분도 새롭지는 않지만, 통쾌한 부분이었다. 미국문화의 몰락의 원인에 대한 저자의 분석과 많은 실례들은 많은 공감을 가져오는 부분이다.

미국에 대한 올바른 비판은 읽어볼만 하다. 그것이 한 쪽으로 치우친 생각만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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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 상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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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관심은 이 작가에 대한 요란한 소개에서부터 기인한다.몇 개국어에 능통하며, 철학이며 문학 등에 대한 해박함과 함께 기호학의 대가로 알려진 그에 대한 지적인 소개문구를 읽고 있노라면 '도대체 이 사람이 쓴 글이면, 어떤 글이 나올까?'하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다.

그리고 그럼 사람이 쓴 '추리소설'이라는 점은 내가 가지고 있는 소위 '지적인 허영심'을 잔뜩 부추키기 마련이다. 움베르토 에코. 이 사람이 가진 지식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거라는 자만심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라면 이라는 오만함이 함께 섞인 책읽기의 시작.
..만만치 않았다.

처음 프롤로그부터 사실 나는 내가 알아 듣지 못할 그 숱한 말들 앞에서 놀라버렸다. 수도원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과 그 살인사건을 밝혀내는 윌리엄이라는 수도사와 그의 제자의 추리극이라는 매력적인 스토리라고 알고 있던 나는, 그 글을 왜 쓰기 시작했는지 동기를 밝히는 부분부터 긴장해버렸다.

잘 알지 못하는, 아직 좀 더 솔직하자면 전혀 알지 못하는 중세의 유럽에 대한 그의 설명들은 내가 알고 있던 설명방법이 아니었다. 근사한 드레스를 입은 채로 적당히 예술을 음미하던 상류층의 타락성 혹은 사랑얘기도 아니었고 사회 제도의 불합리성때문에 발목이 잡힌채로 살아가는 농노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이 책에서는 그 당시에 벌어진 종교에 대한 논쟁과 이단과의 반목 또한 학문이나 철학에 대한 중세사람들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내가 너무 어둡게 설명한건가? 그와 동시에 이 '비밀스런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살인사건을 이렇게 표현함이 어쩐지 죄스럽지만..)살인 사건에 대한 시작도 함께다.그러니 너무 긴장하지 않았으면 한다.

게다가 이 두가지 이야기는 동떨어졌다고만은 볼 수 없다. 여기는 수도원이고, 이 시기는 중세다. 종교가 사회 전반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현재보다 높았고 그 연관성도 긴밀했으므로 그들이 종교에 대한 이야기들이 꼭 피상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운 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재미있는 책이다.

분명 세장, 네장에 걸쳐서 설명하고 있는 장서관이 한 번에 그려지지 않아서 내내 머릿속으로 헤매다가 결국은 연필로 도면까지 그려보고야 마는 나는 그의 치밀함에 놀란다.
이 책에는 중간중간 이렇게 치밀한 논리와 상상의 끌어당김이 있다. 아마 이 '치밀함'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한 사람 한 사람의 말 속에서도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고민했는지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과연 몇 권의 책을 읽은 사람일까..책 속에 빠져서도 작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윌리엄과 아드소가 경험하는 살인사건들 속에서 그들이 범인을 찾기 위한 과정속에 난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다. 이 사람이 범인이 아닐까 하는 단지 심리적인 정황만을 만들어 놓는 작가. 그러다가도 그 사람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지면 맥빠진 실망도 한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읽어 나가다, 절정 부분에 다 다르면..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이야기들이 어렴풋이나만 이해가 되는 기쁨도 맛본다. 그는 학문에 대해, 철학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럴테지만, 그의 고민을 이 작품을 통해 읽는 나로서는 그의 수많은 화려한 간판을 보기에 앞서 그 간판을 세운 그의 튼튼한 지적 기반의 성실함을 본다.

이야기가 상당히 길어졌지만,그래도 이야기는 꼭 해야겠다. '장미의 이름'속에 담긴 그 추리의 통쾌함또한 지루함에 지쳐있다면 신선한 체험이 되어 줄 거란 얘기 말이다. 사실, 나 이 이야기들의 모든 것에 고개가 숙여질만큼 이야기를 따라가는 나의 무지에 놀랐다. 그래서, 지금은 말고 조금 시간이 흐른후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다. 이 말은 정말이다. 한 번은 꼭. 이 책을 따라가는 내 호흡이 적어도 작가와 비슷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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