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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 나의 야고보 길 여행
하페 케르켈링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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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자는 우리를 공중에 던진다. 그리고 결국에는 놀랍게도 우리를 다시 붙잡는다. 부모가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하는 자유로운 놀이와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너를 던지는 사람을 믿어라. 그는 너를 사랑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너를 다시 붙잡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시 차례차례 돌이켜보면 길 위에서 신은 나를 끊임없이 공중에다 던졌다가 다시 붙잡아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날마다 마주쳤다.
<362-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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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례기의 끝이다. 그와 함께 4일간 내 나름의 순례를 했던 나는 이 구절에서 눈물이 흘렀다. 저자만큼 진한 확신과 느낌은 아니었겠지만 나름 결실이 가득한 나만의 순례에서 다시금 다가온 깨달음도 이와 비슷한 지점에 있었기 때문이다.
유난히도 험난한 일정이 예상되는 일주일의 시작,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앞서 책 무더기에서 이 책 저 책 뒤적이다 잡아든 책이다. 재미있다고 하는데, 출근길에 조금이라도 나를 웃게 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으로 집어 들었다. 먼저, 그러한 면에서 이 책은 소임을 다했다. 아침 출근길에는 킥킥대며 웃는 동안 오늘 하루의 삶이 즐거울 것이란 생각을 하게 해 주었고, 저녁 퇴근길에는 복작대는 전철에서도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해주었으니, 저자 하페 케르켈링이 애용하는 파워 뮤슬리바처럼 4일간의 순례 여정에서 이 책은 안내서이자 내 마음의 포도당이었다. 앞으로도 가끔은 꺼내서 힘을 얻을 별미가 될 것이고…
덥디 덥던 어느 여름, 파리에 잠깐 머무를 때 성 야고보의 길에 대해 처음으로 들었었다. 남프랑스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에 이르는 순례길에 대해 올해도 어김없이 새로운 정보로 업데이트된 안내서 개정판이 나왔다는 광고를 통해서였던 듯 하다. “깨달음의 길”이라는데, 나도 그 길을 걸으면 내가 원하는 것들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고, 그래서 그 길은 언젠가는 가보고 싶은 곳 리스트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길을 언제 걸을 지 모른 채, 그 길을 먼저 걸은 이의 글을 통해 실제로 걷기 전 마음으로 먼저 걷게 된 셈이다.
프랑스의 쌩장드피에드뽀에서부터 시작하여 스페인의 산티아고에 이르는 약 800킬로미터의 길을 걸어간 42일간의 여정은 하페 케르켈링의 일기를 책으로 만들어서 지극히 개인적이고, 그래서 좀 더 깊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매일매일 길을 걸으며 본 풍경과 만난 사람들에 대한 관찰(?) 기록, 혼자 투덜거린 내용들까지 솔직한 한 개인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이 글을 읽다보면 저자를 길동무삼아 걷는 느낌마저 준다.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해대지만, 그들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친구, 특정 종교의 테두리에 국한되지 않은 채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친구(사실, 거룩한 신앙인의 순례기가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 인지…), 사람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생명체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가진 친구, 변덕스럽고 까탈스러우나 솔직한 친구, 진지한 의심 가운데 모든 가능성에 자신을 열어두는 친구를 알게 된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말들이 모두 그를 적절히 표현한다기 보다 나에게 특별히 다가온 단편적인 인상들에 이름을 준 것에 불과하지만, 정말 멋진 길동무와 걷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멋진 길동무와 함께 나는 세 개의 여정을 동시에 걸어갔다. 하나는 머리 속으로 풍광을 그리며 따라간 성 야고보의 길, 다음으로는 책을 읽는 내내 끊임없이 떠오르던 내 인생의 한 기간(내 인생에서 떼어내 던져버리고 싶던 기간이다;;)에 대한 기억의 여정, 마지막으로는 바로 지금의 삶이라는 일상의 여정이다.
성 야고보의 길… 이 길을 걷는다고 어떤 절대적인 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는 생각 하지 않는다. 나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여러 길 중 하나이지만, 그래서 꼭 가야만 하는 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더 한 설레임을 가지고 걸어갈 날을 기대하는 길이 되었다.
그리고 기억의 여정…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고, 몸과 마음이 아팠던 그 시간이 결국은 좀 더 진실한 내가 되기 위해 배워야 할 것들을 배워나간 시간이었다는 것을 좀 더 확실하게 보게 되었다. 그 시간은 내가 삶을 보는 태도를 날것 자체로 보도록 이끌어간 시간이었고,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나의 온갖 두려움과 신에 대해 갖고 있던 피상적인 관념의 실체를 보게 한 시간이었고, 동시에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삶의 신비를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와 나를 돌보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이끈 시간이었다.
다음으로 일상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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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단지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다. 길은 하나가 아니라 수천의 길이 존재한다. 그러나 길은 각자에게 한 가지 질문만을 던진다. “당신은 누구인가?”
<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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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옳은 말인지…
삶의 매 순간에 나를 바로 알기 위해 깨어있다면 나는 순례의 여정을 걷고 있으며 따라서 내 삶 자체가 순례라는 생각에 그렇다고 동의를 표하는 길동무를 만난 건 행운이었고,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을 걸은 사람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동경의 눈길보다 다른 길을 통해서 같은 지점을 향해가는 동료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결국 이 순례의 여정 끝에서 나의 길동무는 나를 공중에 던진 존재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제한된 시간이나마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 흥분과 스릴을 느끼며 맘껏 몸을 펼치고 날아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공중에 띄워진 그 시간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시간이 되어버릴 것이라고 일러준다. 4일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좋은 동무를 벗삼아 길을 걸었던 추억은 매일매일 하루의 자유를 만끽하며 아침마다 공중으로 솟구칠 용기를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