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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 동녘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바우만을 처음 만난 것은 2009년이었다. <액체 근대>를 읽고 나서 '유동하는 사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시간이 있었다. 물론 그 깊이를 바우만의 깊이와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나름대로 현 생활에서 내가 느꼈던 문제들에 대해 사회과학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로는 사회에 촘촘하게 자리한 문제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놀라우면서도 겁이 났다. 문제점을 알았지만, 그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흘러가는 세상, 무엇 하나도 진득하게 오래가지 못하는 상황 그 속에서 승자와 패자만이 나뉘어지니, 패자가 되기 싫으면 끊임없이 흘러흘러 가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불안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지그문트 바우만과 만났다.


그리고 2012년,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으로 다시 그와 만났다. <액체 근대>에는 그가 천착한 유동성에 대해 차근차근 짚어 들어갔다면, 이번 책에서는 편지 형식으로 44개의 글이 실렸다. 우리가 평소에 궁금해할만한 크고 작은 사회 문제들이 대체로 비관적으로 파헤쳐져 있었다. 바우만은 긍정적인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않는다. 그는 현실의 아주 밑바닥까지 우리에게 보여주어야 할 책무가 있는 사회학자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긍정적이지 않은데, 장미빛 미래만을 제시한다면, 그건 거짓일테다. 그런 점에서 그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속담처럼 어쩌면 이 세상에 널려있는 쓰레기 같은 현상들을 막지 못한다면 모르는 게 행복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읽다 보면, 수많은 고민을 던져준다.


하지만, 불확실한 세상에서 그나마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혼미한 정신을 조금이라도 또렷하게 할 수 있을지 힌트를 준다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다. 읽는 내내 도무지 타협할 수 없는 세상의 비극적인 이면들에 답답함을 느꼈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난 내가 세상 안에서 내딛어야 할 걸음의 모양은 계획할 수 있겠다는 마음은 생겼기 때문이다. 첫 번째 편지인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부터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는 마흔 네 번째 편지까지 긴장하며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나름대로 한 가지 결론을 얻었다. '불확실성이 가득한 수수께끼의 시대,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에 대해서다. 그것은 바로,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외로움을 즐기는 것'이다.


우리는 외로움에 너무도 취약하다. 세상이 우리에게 너무나 강력한 외로움을 준 것인지, 우리가 외로움에 너무나 취약한 것을 습관화 한 것인지. 이것은 '닭이냐 알이냐'의 문제다. 어쨋든 우린 외롭다. 끊임없이 외로움을 느끼고, 끊임없이 그 외로움을 채우려고 안달내며, 실제로 외로움을 채우기 위한 행동을 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다양한 방식으로 그런 일련의 행동이 존재하겠지만, 아무래도 바우만이 꼽은 것처럼 가장 최강자는 '온라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온라인'은 우리 삶에 여러가지 모습으로 존재하는데, 그 중 요즘 가장 우리의 외로움을 손쉽게 채워주는 것은 스마트폰이 아닌가 싶다. 지하철을 타면 앉아있는 사람 일곱 명 중 거의 대부분이 스마트폰 화면에 머리를 박고 손가락을 움직인다. 물론 나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에 시선을 거두고 타인을 바라볼 때에만 그런 현상 개선의 절박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 현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세상은 액체처럼 온라인에 젖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다 외롭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지만, 스마트한 삶을 살지 못한다. 스마트폰으로 이어진 인연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우리는 실제 삶에서는 그들과 깊은 연대를 맺지 못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하루하루를 스펙으로 채우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의 구체적 방향과 맞는 소규모 커뮤니티를 결성하고, 그 안의 사람들과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깊은 정에 기반한 관계 맺음이 지속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삶 자체가 불확실하기에 개인의 인성 문제를 떠나 오랫동안 한 공동체에 머무는 시간이 부족한 탓이다. 그래서 우린 사람의 관계부터 물건과의 관계, 세상 전체와의 관계 모두가 복잡하고 아슬아슬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바우만이 펼쳐낸 수많은 편지 중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을 한 두개 소개하려고 한다. 


편지19. 질병 권하는 사회 中

오랫동안 계속되어온 수줍음이든 일시적인 수줍음이든 간에 그 수줍음이라는 경험을 활용한 성공사례 말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과연 그 누가 자신을 무언가를 꺼려하거나 조심스러워하면서 주눅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그처럼 아주 흔하며 자주 경험되던 그 수줍음이라는 일상적인 불쾌감을 요즘의 의료 업계에서는 '사회불안장애'라는 한층 더 심각하게 들리는 병명으로 규정한다. 


왜 현재 사회는 모든 것을 질병으로 만드는 걸까. 왜 사람들은 '성형 수술'을 해서라도 똑같이 예쁜 얼굴을 가져야 할까. 아니 그것이 정말 '예쁜' 것이긴 한 것일까. 마찬가지로 이제 질병은 마음의 영역, 정신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말았다. 우리는 스스로 끊임없이 자신의 어떤 요소들도 질병으로 몰아가고 스스로를 상처줄 수 있는 험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세상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욕망의 상품들을 소비하며 일시적으로 수습하며 사는 방법밖에 없는 것만 같다. 적어도 힘없는 개인이 보기엔 말이다. 아무리 강철 심장을 갖고 '난 다른 사람과 달라!'를 외친다 해도 어느 순간에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자신의 삶을 발견하고 놀랄테니 말이다.


편지34. 불황에는 과연 끝이 있을까?

젊은 세대들은 계속해서 굴욕적인 행위들과 사회적인 배제로 인해 겪게 되는 궁핍한 상황, 또 무직이라는 부끄러움으로 뒤덮인 미랭 직면해 있다. 또한 오랜 기간 동안 실업 상태로 지냈기 때문에 겪게 된 물질적 어려움과 취업상담소나 직업소개서 앞에서 기다리는 긴 줄을 견뎌내야 하는 상황, 또 정말 자신의 운수가 확 빨리 뒤집어지거나 갑자기 높은 지위에 진입할 수 있기를 바라는 헛된 희망들로 뒤덮인 미래에 직면해 있다. 


다른 사람들과 같아질 수 밖에 없는 것. 그것은 먹고사는 문제가 심각한 불황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실제로 의식주를 채울 수 없는 '절대적 빈곤'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보다 더 나아지려는 '상대적 빈곤'의 문제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보다 더 나아지려고 하는 행위는 지금의 시대에서는 단순히 개성이나 인기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하는데 필요한 무엇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벌고, 힘을 갖는 것. 그것들을 꿈꾸면서 외로울 수밖에 없는 우리. 하지만 인내심은 바닥으로 치달아 외롭지 않으려고 세상과 자신의 삶을 바르게 바라볼 고독의 시간을 바보같이 소모하고 있는 우리들. 그런 우리에게 진정한 고독의 시간을 권유하고 있다. 한번쯤은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고. 그래서 아주 잠깐씩이라도 검증하며 살아가라고.


'어쩔 수 없다'는 말에 동요하지 않는 것. 가장 어렵지만, 인간이라면 가장 기본이 아닐런지. 어쩔 수 없지만, 인간이기에 나눌 수 있는 정과 지켜야 할 세계관이 있는 것이 아닐까. 요즘 뉴스들을 보면 모두가 불확실한 세상에서 버티지 못하고 나가 떨어지는 일들 천지다. 이런 세상 속에서도 또 누군가는 자신의 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 있을 테다.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고 싶다면, 정신적으로 벅차더라도 이 책을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역시나 지크문트 바우만의 책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줬다. 하지만, 그만큼 짐도 주었다. 이제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또 어깨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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