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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기담 - 고전이 감춰둔 은밀하고 오싹한 가족의 진실
유광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술술 잘 읽혀 들어간다, 는 것이 이 책의 강점이다. '가족 기담'이라는 제목처럼 그 내용도 우리가 어릴 적부터 접해 왔던 '옛날 이야기'들이고, 저자가 글을 풀어내는 방식도 대화하듯 톡톡톡 던져내는 방식이어서 글 읽는 품이 적게 든다. 나 같은 어른이나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나 쉽게 읽을 수 있을 터이다. 이야기를 한 땀 한 땀 내어놓는 데에도 재주가 있어서 양파 껍질 까듯이 비밀을 하나씩 하나씩 벗겨내는 글쓰기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래서 계단에 오르듯 하나씩 하나씩 숨겨진 질문과 답을 오가며 책에 빠져드는 묘미가 있다. TV드라마도 아닌데 긴장을 놓치 못하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그림동화'를 읽었을 때의 충격과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늘 알던 고전 스토리에도 자극적이고 믿지 못할 씨크릿들이 많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그게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서도 마냥 즐거워하지 못하는 반전 요소다. 그렇다. '가족 기담'은 우리가 늘상 접해오던 친근한 이야기소리에 기이한 공포가 뚝뚝 묻어나는 그런 책이다. 첫 장부터 '장화홍련전'이 나오기에 '공포'라고 하면 귀신 이야기 정도로 생각할 지 모르겠으나, 이것은 귀신 보다 더 무서운 사람 이야기다. 그것도 이야기 주인공들이 가장 가까운 심리적 거리의 사람들과 얽히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무서운 사연이다.


왜 무서울까. 이야기는 주인공들이 처한 현실적 삶과 끈끈하게 엮어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마치 요즘 뉴스사이트에서 읽는 르포 기사 혹은 기획 기사를 읽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기존에 우리가 알던 이야기에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가면서 풀어놓은 것이라 책에서 주장하는 바를 모두 수용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설득가능한 근거들이었다. 가장 주관적인 것이 가장 객관적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인간의 보편적인 의문, 그러니까 누구나 의문을 가질 만한 부분과 그 부분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들을 저자는 비춰낸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장화홍련의 아버지 배좌수는 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두 딸을 시집보내지 않았을까. 이런 퀘스천을 던지는 것이다. 계모가 장화홍련을 죽인 것은 누구나 아는 기정사실이다. 사실에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 계모를 향한 비난 자체에 이상한 꼬투리를 잡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배 좌수에 대한 시선은 다르다. 아니 이때까지 은폐되어 왔다. 그렇게 은폐되고 숨어 있는 부분, 그 부분을 저자는 영리하게 잡아낸다. 생부인 배 좌수는 왜 일을 그 지경으로 만들었나. 거기엔 숨은 이야기, 뒷목 잡을 진실이 숨어있는 것이다.


이 책은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기한 것은 그 9장의 이야기들에 요즘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대비해가며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분명 껍데기는 멀고 먼 옛날인데,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일들을 굴비 엮듯 엮어들어가도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냥 호기심과 흥미를 가지고 유쾌하게 읽을 수가 없었다. 옛날은 옛날이니까 그렇다고 하지, 지금은 인권, 성문제, 가부장 문제 등등 이 책에서 다루는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없어야 정상인 것 아닌가.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 책 속의 황당무계함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먹먹함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거꾸로, 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저자가 원한 것은 거꾸로 아니었을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혐오와 증오의 비인간적인 일들을 직구로 던져 풀지 않고, 옛날 이야기에 빗대어 풀어 보려는 시도를 한 것일 수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식의 해학과 풍자는 강한 목소리보다도 더 구체적이고 진정성 있게 사람을 잡아 끌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식이었다. 안 믿으면 그만이니까 부담없이 읽었다. 하지만, 읽을 수록 불편했다. 그냥 이야기로만 끝날 것 같지 않아서. 뭔가 지금 우리가 사회에서 해결할 부채가 남아있는 것 같아서. 내가 쓴 서평 안에 책 속의 내용은 일부러 담지 않았다. 이 책 속에 있는 내용을 구구절절 덧붙일 정도로 두껍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반나절에 이 책을 곱씹어 읽고, 개인의 욕망이 사회의 불합리성과 만나 부조리를 만들어 낼 때 얼마나 교묘하게 희생을 만들어내는지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괜한 상상을 해 봤다. 내가 지금 이 책 속 이야기들을 두 손에 쥐고 아주 안전한 내 방에서 편안히 읽는 것처럼, 지금 우리가 포털 사이트에서 클릭 한번으로 읽을 수 있는 비참한 사연들을 백년 뒤 천년 뒤 누군가는 또 읽어내지 않을까 하고. 적어도 그때는 이 책의 시대나 지금의 시대 속 장삼이사의 인생이 정말이지 과거의 일로서만 남았으면 좋겠다. 어떤 콘텐츠의 인기는 그 사회상이나 시대상과 반대일 때 더욱 인기가 많다고 했는데, 이 책이 지금 정말 인기가 많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더이상은 병들지 않았고, 이 책도 그냥 한낱 옛날 이야기에 대한 스캔들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깨달은 것. 진실을 찾는 것이야말로 정말 온 인생, 온 우주를 바쳐도 힘들다는 것. 우린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해 숱한 말과 글로 이렇게 궁리를 하며 살아가는구나 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 찾지 못하는 진실들이 읽고 보고 생각하는 행위만으로 조금씩 그 모습을 보여주는 데 가까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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