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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아민 말루프 지음, 김미선 옮김 / 아침이슬 / 2002년 4월
평점 :
향료와 계피, 화려한 직물과 비단의 천국으로 불리던 천년 전의 페르시아반도는 복면의 순교자와 ‘눈먼 유도미사일’을 끝없이 불러들이는 땡볕과 화염과 기름의 지옥으로 변했다. '말이 통할만한' 아랍의 지도자들은 오로지 악마의 눈물을 얼마나 비싸게 팔것인가를 골몰할 뿐이다. 그건 유일신과 구세주에의 ‘숭배’를 폐기하고 대신 합리적 이성을 ‘구사’하며 그에 따라 세상을 재단해야 하는 아랍의 적들이 밟아 온 기회주의적인 역사와 밀접하다. ‘유일신 부자’에 이어 권좌를 차지한 합리성의 신화는 고기를 감싼 푸른 채소의 면죄부를 걷어내고 필요에 따라 남의 고기마저 빼앗으라고 가르친다.
지하드의 리믹스버전은 천년에 이르도록 갱신되는 중이다. 그 격렬하고 오랜 접촉에도 아랍과 ‘아랍의 적’들은 아직도 ‘내 살길’과 ‘네가 가진 것’만을 바라본다. 보다 정확히 팔백여년을 으르렁거렸으면서도 생판 남남이다. 천국으로부터 추락하여 이젠 모든 것을 잃고 돌격의 순간만을 기다리게 된 지옥의 전사들이 차선을 위한 깡통을 돌릴 리도 만무하다. 반면 ‘아랍의 적’들은 온건한 합리주의자들임을 자칭하는 지상의 메트로폴리탄들이며, 그 ‘수괴’격인 미국인들은 본토침공의 유례없음이 말해주듯 이념의 승리를 구가하고 있다. 그들은 범법자의 머리에 총을 겨눈 채 그의 권리를 설명한다.
나름대로 고백의 형식을 빌린 전쟁의 실체를 넘기면서 근시안, 속물근성, 표리부동, 사리사욕 등등 가능한 모든 한심한 수식어들을 그 멋들어진 터번의 주름속에 쑤셔넣고 싶지만 예나 지금이나 악의 축은 여전히 ‘아랍의 외부’, 그리고 심지어 ‘나의 내부’에 있기 때문에 ‘결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이라는 판단유보로 스스로를 구원하는데 그치겠다. 악은 풍요롭고 정의는 지옥의 구호일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