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1 (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제임스 카메론 감독,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제7의 봉인>과 <웨스트월드>. 내가 이해하는 터미네이터는 이 두 작품으로부터 기원한다. <...봉인>으로부터는 떨쳐버릴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를, <웨스트월드>에서는 적대적인 기계-인간을 닮은-의 섬뜩함을 가져왔다. <...봉인>에 담겨있는 근원적인 공포는 <웨스트월드>의 사이버펑크적 시각으로 해석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은 인간과 미래간에 이루어진 유일한 약속이며 인간들은 그 약속의 땅을 묘사한 구체적인 상상도로서 지옥도를 그려냈다. 관념으로서의 죽음은 망각이라는 삶의 그늘에 늘 가려져 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로 다가오는 특별한 단면, 즉 지인의 죽음과 가족의 죽음, 그리고 나의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터미네이터는 이러한 인식의 입체적 변화를 병리적 형태로 꼬아서 교묘하게 제시했다. '인류가 맞게될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누구나 두려워하는 저승의 지옥도'와 뒤섞어놓고는, 새라의 죽음과 그 지옥의 실제라는 상관도를 활용하여 게임을 벌인다. 새라가 죽으면 그 지옥은 현실이 되며 새라가 죽지 않으면 그 지옥은 상상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반신반기계인 지옥의 군주들은 이제 새라를 잡기 위해 교활하게도 '육체파' 저승사자를 보내온다. 새라는 죽음과 조우할때마다 죽음의 우람한 육체에 홀린다. 카메론은 포르노그라피적 암시를 피하기 위해 새라의 시선과 터미네이터의 육체를 한 화면에 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의도했던 것은 분명한 성적환락이었다. 오나니즘의 금기, 죽음의 리허설인 성에 대한 은유다. 새라는 항상 무릎이 풀려 주저앉거나, 약에 취한 노리개처럼 눈을 반쯤 뜬채로 마지못해 카일의 손에 이끌린다.

새라가 죽음에 맞서, 카일을 독려하는 여전사로 거듭나는 분기점은 터미네이터의 육체가 다 불타버리고 그의 메카니즘-실체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환상은 걷히고 악마는 본성을 드러냈다. 이제 그녀가 해야할 일이란 자신의 생존, 그리고 섹스가 아닌 번식이다. 조금 더 오바한다면 수태고지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 지옥에서 온 카일은 수태를 알리는 메신저 가브리엘이며 새라는 동정녀로서 임신을 하고 구세주를 잉태한다. 육체파 저승사자의 유혹은 끝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핵공포, 연쇄살인등의 인륜적 죄악에 대한 지속적인 묘사와 문란한 육욕지향과 성폭력에의 경고, 반결정론적 웅변이 더해져 사이버펑크 도그마는 완전한 현대판 묵시록이 된다. 묵시록은 유혹과 폭압을 이겨내고 권능을 증거하는 새로운 여성영웅의 신화를 낳는다. 그리고 13년 후 전세계를 향해 '나는 세상의 신이다'라고 외치는 남자가 나타난다.  

 

'저것봐요!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어요! (아직 끝난게 아니예요)'  

-멕시코 소년의 대사중에서 생각나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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