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라고 생각했던 일이 알고보니 작년이었다. 아마 1년전쯤의 사건이지만 여전히 올해 벌어진 일 같다. 뱅고어에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시차적응을 핑계삼아 꽤 게으르게 지내던 중에 갑자기 형사들이 찾아왔다. 난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형사란 직업의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꽤 심각한 태도로 날 서초경찰서도 아닌 서울지방경찰청으로 데려갔는데 (경찰차는 아니었다) 대낮에 용산과 이태원을 지나 서울역에서 햇빛이 비칠때쯤엔 오늘 날이 참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
특수수사과. 라는 곳이었는데 정신을 조금 차렸을때 주위를 둘러보자 아마 '취조실'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방엔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로 내부에선 밖이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있었다. 내가 한 일은 누군가 이 방에 들어와서 내게 말을 걸어주길 기다리는것이었는데 그동안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관'에 있는 친구들의 목록을 점검했다.
그 후 몇 명의 형사들이 들어와서 질문을 해대었다. 이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옆 방엔 그때 당시의 직장동료가 있었고 난 참고인으로 그의 혐의를 확증하기 위해 불려온 것이다. 하지만 진실로 내가할 수 있었던 모든 말은 다 무죄를 증명하는 것들 뿐이었다.
참고인
이란 신분은 결코 참고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날 대하는 그들의 냉랭한 태도는 거의 공범자에 가까웠기 때문에 줄곧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닥치고) 변호사를 부르자였다. 그들은 굉장히 사소한 것들에서도 '왜?' 를 요구했다. 그걸 확인하는게 직업이지 않냐고, 지금 당장 알아보면 다 끝날텐데 왜 물어보냐고 되묻지 못했던것은 내가 꼬장을 부릴수록 옆 방의 동료가 괴로워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치사하다.
결국 난 절대 누구에게도 알려줄 필요가 없는 개인정보의 상당수를 공개했는데, 여전히 '왜' 가 달라 붙었다. 왜 이렇게 돈을 많이 쓰냐는 질문도 받았다. 아니 이게 무슨 미친소리야.
괴로웠던 것은, 동료의 무고함이었고 또한 이들의 무지함이었다. 세상엔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고 그 뛰어남은 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그 뛰어남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 불려와 있었다. 노력의 대가치고는 가혹한 상황이 마음이 아팠다.
세상엔 정보가 있고 기록이 있다. 이들이 그 모든 기록과 정보를 마음대로 볼 수 있다면 지금 당장 동료를 얌전히 내보내줄 것이다. 빅브라더라면 무고함을 증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렇지 못했고 (그럴수 있어도 상당한 행정적인 자원을 소모해야 가능했을 것이기에) 때문에 허공에 울리는 말로 기록을 대신해야 했다. 프라이버시는 좋은 것이지만 프라이버시의 내역을 증명해야하면 그건 꽤 괴로운 일이다.
저녁이 되어서 우호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옆방의 동료가 어떤 증거를 제시하여서 일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었다. 내 방에도 계속 다른 형사들이 들어와서 비슷한 질문을 반복하였는데 마지막에 들어온 형사는 자기 아들의 학력과 미래설계를 상담해왔다.
경찰청 문을 나섰을 때 정말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당시에 강남에서 벗어나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도심에 와있으니 평소보다 그녀와 가까이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