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18 생명이냐 멸망이냐

4월 12일자 조선일보에 프랑스의 AFP 통신을 인용해 다큐멘터리 감독 ‘심차 자코보비치’가 유대교 대제사장 가야바의 무덤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사용했던 녹슨 대못 두 개를 찾았다고 보도했습니다. 가야바는 로마제국의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고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유물부는 "고고학적인 근거나 조사가 빈약해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이 못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일 때 사용됐던 대못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확실합니다. (저는 리 스트로벨 목사님의 [예수님의 수난을 체험하기(우리나라에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로 번역)]를 참고하여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하신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형은 로마제국에 반기를 든 반역자나 사람을 죽인 살인자에게 시행하는 잔인한 사형방법이었습니다. 사형수는 쇠와 뼛조각이 박힌 채찍으로 맞았습니다. 채찍을 맞으면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갔습니다. 사형수는 상처투성이의 몸을 이끌고 길이가 180센티미터 무게가 14킬로그램인 십자가의 가로 기둥을 어깨에 지고 사형장까지 걸어갔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빌라도의 관정에서 재판을 받고 성 밖에 있는 골고다 언덕까지 걸어가셨습니다. 너무 힘들어 3번 넘어지셨습니다. 사형장에 도착하면 길이가 18센티미터인 굵은 대못을 양손에 박고 몸을 지탱하기 위해 팔에 밧줄을 감았습니다. 한쪽 무릎을 조금 밀어 올리고 발을 겹쳐서 발등에 박았습니다. 십자가를 일으켜 세우면 압력이 가해져 숨쉬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사형수의 몸에서는 피와 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갈증이 났습니다./ 사막의 뜨거운 햇살이 얼굴을 내리 쨌습니다. 현기증이 일었습니다./ 사형수는 빨리 죽고 싶지만 쉽게 죽어지지 않았습니다. 사형수는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형을 보고 공포에 떨었습니다. 사형수는 보통 36시간이 지나서야 죽었다고 합니다. 저녁이면 피 냄새를 맡고 들짐승들이 나타나 십자가에 매달린 사형수의 살점을 뜯어 먹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매달려 오후 3시에 돌아가셨습니다. 6시간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금요일 오후 6시부터 토요일 오후 6시)이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예수님을 죽였는가?
누가 예수님을 죽게 만들었을까요?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 사람 유다일까요? 예수님을 구출하지 않고 도망간 제자들일까요?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한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일까요? 바라바를 살리고 예수님을 죽이라고 고함을 지른 유대 백성들일까요? 종교지도자들과 유대 백성들의 압력에 굴복해 사형선고를 내린 로마제국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일까요? 예수님의 손과 발에 대못을 박은 로마 군병들일까요? 아니면 모든 악한 일의 배후에 있는 사탄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5장 8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통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위의 본문들을 통해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시지 않고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죽음을 선택하셨을까요? 저와 여러분의 죄를 씻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죄를 씻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가 예수님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가?
예수님은 무슨 죄를 지어 사형선고를 받으셨을까요? 재판은 심문과정을 거쳐서 최종판결을 내리지만 사냥꾼이 올무를 쳐놓고 짐승을 기다리듯이 종교지도자들은 사형을 결정해놓고 재판을 진행하였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왜 예수님을 죽이려 했을까요? 유대교 서기관들은 성경을 옮겨 적을 때 ‘야훼’라는 단어가 나오면 목욕을 하고 와서 적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불렀습니다.(마14:36) 거룩하신 하나님을 친밀한 하나님으로 바꿨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기에 너무나 파격적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을 구약성경 다니엘서에 예언된 ‘인자’(단7: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메시야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인자는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며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예언되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고 자신을 인자라고 말하자 신성모독죄(하나님께 불경스런 말)를 적용하였습니다.(마26:63-66) 그러나 진짜 신성모독죄를 저지른 건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죽이려한 종교지도자들이 진짜 신성모독죄를 저질렀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었는가?
예수님이 정말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까요? 예수님의 죽음은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이 진짜라면 예수님은 진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겁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기록하였습니다. 거짓으로 기록하였다면 들통 났을 겁니다. 목격자들이 기록하였으니 신약성경은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정말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는 왜 고난을 받고 죽어야 했나?
예수님은 왜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3장 23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사람이 죄를 저지르면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짐승을 속죄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러나 유대 백성들은 죄를 저지르고 속죄제물을 드리고를 반복하였습니다. 속죄제물의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씻으시려고 속죄제물이 되어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부활은 무엇을 성취하였는가?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한두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여러 번에 걸쳐서 목격하였기 때문에 사실입니다. 부활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에 대한 승리이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보증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부활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고 우리는 나중 열매입니다.

이 이야기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의 십자가와 영광의 부활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 생명의 길로도 갈 수 있고 멸망의 길로도 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생명과 멸망의 갈림길입니다. 분기점입니다. 분기점에서 길을 잘 들어야지 잘못 들어섰다가는 낭패를 당하잖아요? 하나님께서는 고린도전서 1장 18절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멸망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은 십자가의 도를 거부합니다. 메시야가 어떻게 죽을 수 있느냐 며 비아냥거립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옥으로 던져집니다. 지옥은 죽으려고 해도 죽어지지 않는 곳입니다. 살아서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입니다.(계20:10) 이것이 두 번째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거부하면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의 길에 들어선 사람은 십자가의 도를 받아들입니다. 메시야가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고 믿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갑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나 애통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있지 않습니다.(요21:3-4) 여러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오렌지를 먹을 때 껍질을 벗기고 알맹이를 먹듯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지식으로 아는 껍데기 교인이아니라 마음으로 믿는 알맹이 교인이 돼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믿으십시오. 그리고 부활하셨다고 믿으십시오. 그러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갈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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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7일(주일) 여디모데가 친구 조원영을 전도하다.(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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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2일(화) 11시에 드리다. 74명이 참석했고 6,500,000원이 헌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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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0일 주일 박승자 성도(11-4)가 출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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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3:6-10 율법을 지켜 행하라.

우리나라 전래동화 중에 [비오는 날 슬피 우는 개구리]가 있습니다. 옛날에 엄마 개구리와 아기 개구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기 개구리는 엄마 개구리의 말씀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엄마 개구리가 이리 가라고 하면 저리 가고, 서 있으라고 하면 앉아 버렸습니다. 아기 개구리는 엄마 개구리의 말씀을 반대로 듣는 말썽꾸러기였습니다. 아기 개구리가 속을 썩이자 엄마 개구리는 병이 나서 죽었습니다. 엄마 개구리는 시냇가에 묻어달라고 유언했습니다. 아기 개구리가 반대로 했기 때문에 시냇가에 묻어 달라고 하면 산에 묻어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기 개구리는 속을 썩인 것을 뉘우치고 엄마 개구리의 유언대로 시냇가에 묻었습니다. 그런데 장마철이 문제였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아기 개구리는 엄마 개구리의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슬피 울었습니다. 반대로 하던 아기 개구리도 엄마 개구리의 유언은 들었습니다. 사실 개구리가 엄마 개구리의 무덤이 떠내려 갈까봐 우는 것은 아닙니다. 개구리는 비가 오면 피부가 젖어서 피부 호흡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힘이 나서 노래하는 거라고 합니다.

말썽꾸러기 아기 개구리도 엄마 개구리의 유언은 들었습니다. 유언은 죽기 직전에 남기는 말로 법적인 효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유언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우리 교인들은 유언할 나이가 아니라 유언을 지킬 나이니까 성경의 인물들이 어떻게 유언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여호수아는 뭐라고 유언했을까요? 여호수아 23장 6절을 봉독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여호수아는 모세의 율법 책 다시 말해 성경책에 기록된 말씀을 다 지켜 행하라고 유언했습니다. 성경책에 기록된 말씀을 지킨다면 어떻게 될까요? 여호수아 23장 10절을 봉독합니다. “너희 중 한 사람이 천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도우셔서 한 사람이 천 사람을 쫓아낸다고 유언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순종하면 인생에서 성공한다고 유언했습니다. 신앙에 성공해야 인생에도 성공합니다.

여호수아의 멘토였던 모세는 뭐라고 유언했을까요? 신명기 32장 45-46절을 봉독합니다. “모세가 이 모든 말씀을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의 마음에 두고 너희의 자녀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율법의 말씀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고 유언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면 어떻게 될까요? 신명기 32장 47절 말씀을 봉독합니다. “이는 너희에게 헛된 일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한다면 장수한다고 유언했습니다. 운동한다면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면 대단한 유익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해야 오래 삽니다. 원광대학교 보건복지학부 김종인 교수팀은 1963년부터 2010년까지 48년간 언론에 난 3,215명의 부음기사와 통계청의 사망통계자료 등을 토대로 국내 11개 직업군별 평균수명을 비교 분석한 결과 종교인이 가장 오래살고(80세) 체육인 작가 언론인이 가장 짧게 산다고 발표했습니다.(67세) 무료 13년의 수명차이가 났습니다.(헤럴드 생생뉴스 2011년 4월 4일)

사사와 제사장과 선지자의 3중직을 감당했던 사무엘은 뭐라고 유언했을까요? 사무엘상 12장 20절 하반 절을 봉독합니다.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사무엘은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고 유언했습니다. 여호와를 섬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무엘상 12장 22절을 봉독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라고 유언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지 않는다고 유언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림자처럼 동행하십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은 뭐라고 유언했을까요? 열왕기상 2장 1-3절을 봉독합니다.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그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다윗은 솔로몬에게 모세의 율법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고 유언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면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다고 유언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형통하고 불순종하면 불통합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와 사무엘과 다윗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고 유언했습니다. 한 사람의 유언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유언이 동일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복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뭐라고 유언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유언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봉독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내 증인이 되라고 유언하셨습니다. 증인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증거 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증인의 헬라어는 순교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증인이 되라는 유언은 죽을 각오로 예수님을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마당만 밟으러 온다고 질타하셨습니다.(사1:12) 예배만 참석하고 돌아가는 교인이 마당만 밟는 교인입니다. 마당만 밟는 교인도 구원은 받겠지만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으시겠다고 하셨으니 상급은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마당만 밟는 교인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돼야 합니다. 제자는 스승의 길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스승이 십자가를 지셨으면 제자도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스승이 힘들어하면 아리마대 요셉처럼 십자가를 대신 져야 제자입니다.(마27:32) 저의 기도제목은 우리 교인들을 마당만 밟는 교인에서 십자가를 지는 제자로 성장시키는 겁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것은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 하는 겁니다. 박해를 받더라도 목숨이 위태롭더라도 예수님을 증거 해야 합니다. 전도하는 게 십자가를 지는 겁니다. 말썽꾸러기 개구리도 유언을 지켰는데 직분을 받은 우리가 지키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맹 집사가 꿈에 천국에 갔습니다. 천국은 황금빛으로 눈부셨고 꽃향기로 달콤했습니다. ‘아 여기가 천국이구나!’ 감탄하는데 아는 장로님 두 분이 보였습니다. 맹 집사는 너무 반가워 달려갔습니다. ‘장로님들, 저 맹 집사입니다.’ ‘오 맹 집사! 자네도 천국에 왔구먼. 반갑네.’ 그런데 두 분 장로님 중에서 김 장로님은 동 면류관을 썼고 이 장로님은 금 면류관을 썼습니다. 맹 집사는 ‘김 장로님은 헌금을 많이 했는데 왜 동 면류관을 썼지?’ 하고 의아해 했습니다. 김 장로가 물었습니다. ‘맹 집사, 내 동 면류관이 시시해 보여?’ ‘아니, 그건 아니지만.’ 맹 집사는 말을 얼버무렸습니다. 김 장로가 말했습니다. ‘나는 세상에 사는 동안 헌금은 많이 했지만 전도는 하지 못했거든. 그래서 동 면류관을 받았지.’ 맹 집사는 금 면류관을 쓴 이 장로에게 물었습니다. ‘이 장로님은 전도를 많이 하셨나보죠?’ ‘아니, 딱 한 사람을 전도했어. 바로 김 장로를 내가 전도했지.’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전도해도 칭찬하시지만 한 사람을 전도해도 칭찬하십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한 영혼을 소중히 해야 여러 영혼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99마리 양을 다른 목자에게 맡겨놓고 잃어버린 1마리 양을 찾아 나서섰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 받아 잃은 양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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