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1-2 산에 올라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인사합니다.(김정은이 BC카드 광고에서 ‘여러분 부~자 되세요.’ 라고 한 이후 달라졌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福)을 좋아합니다. 복을 좋아해서 숟가락에도 젓가락에도 밥그릇에도 국그릇에도 그리고 밥상에도 복자를 새겼습니다. 밥을 먹기 위해 쌀을 이는 용기를 복조리라고 불렀지요. 우리가 성경을 외우기 위해 성경구절을 여기저기에 붙여놓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에 복자를 새겼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 중에서 오복을 좋아했습니다. 오복을 좋아해 오복 치약까지 나왔잖아요. 오복은 중국의 고전인 [서경]에 나오는 다섯 가지 복인데 수(壽) 오래 사는 복과 부(富) 부유한 복과 강녕(康寧) 건강하게 사는 복과 유호덕(攸好德) 덕을 좋아하고 베푸는 복과 고종명(考終命) 깨끗한 죽음을 맞이하는 복을 말합니다. 여러분도 오복을 좋아하십니까? 오복은 ‘사람’이 ‘현세’에서 누리는 ‘물질’적인 복입니다. 성경에도 복이 나옵니다. 성경의 복은 오복과 다릅니다. 성경의 복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옵니다.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까지를 포함합니다. 물질이 아니라 ‘신앙’적인 복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복은 팔복입니다.
팔복은 산상수훈(마 5~7장)의 서두(마 5:1~12)에 나옵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이 팔복입니다. 어떤 사람은 마태복음을 산으로 비유한다면 산상수훈은 산봉우리요 팔복은 정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주부터 마태복음의 엑기스인 팔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5장 1~2절입니다. 1~2절은 산상수훈이라는 산봉우리와 팔복이라는 정상에 오르기 위한 매표소입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야 입장할 수 있듯이 1~2절을 이해해야 팔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전후문맥을 살펴봐야 하는데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 23절을 통해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백성들의 병과 약함을 고치셨습니다. 그러자 각종 병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몰려들었습니다. 병자들이 예수님께 왔듯이 우리도 문제가 있으면 예수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해답이 있습니다.
(어디에)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산상수훈(팔복)은 산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산이 공간적인 배경이죠. 여러분은 산을 좋아하십니까? 저도 산을 좋아합니다. 성경에서 산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리심 산을 보고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을 보고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갈보리 산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한 장소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바로 그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이삭 대신에 숫양을 예비하셔서 그것으로 번제를 삼으셨지만 예수님은 어린양이 되시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살리셨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죽이셨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는데 천정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는 그림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내주셨습니다. 아들도 아끼지 않으셨는데 우리에게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우리가 문제를 가지고 나오면 하나님이 반드시 해결해 주십니다. 세월이 흘러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시온 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시온 산은 예루살렘 성전 중에서 다윗의 문 밖에 있는 산인데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가지셨던 마가의 다락방이 시온 산에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다윗의 무덤이 있고 베드로 통곡교회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시온 산으로 온다고 생각해 시온 산 방향으로 시신을 묻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시온 산을 거룩한 장소로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산을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 생각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를 유랑할 때 ‘성막’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는 ‘성전’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서나 계시기 때문에 예배하는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기도하는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가정도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지만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강력한 장소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 자리에서 기도하면 기도가 잘 됩니다.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축복 기도하고 이 자리에서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옥상에서도 하나님을 만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하나님을 만나십니까? 어디에서 기도해야 기도가 잘 됩니까? 그곳이 여러분의 ‘산’입니다. 그곳이 성막이고 그곳이 성전입니다. 사람은 공기를 마셔야 살 수 있듯이 교인은 하나님을 만나야 살 수 있습니다. 휴대폰도 충전해야 통화할 수 있듯이 교인도 신앙을 충전해야 교회 다닐 수 있습니다. 휴대폰도 충전하고 신앙도 충전하십시오.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를 가지십시오.
(어떻게) 예수님은 산에서 앉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랍비는 앉아서 가르치고 학생은 서서 들었습니다. 랍비가 앉았다는 무언가 중요한 것을 가르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입을 열어 가르치셨습니다. 입을 열었다는 중요한 말씀을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가르치다는 동사는 미완료 시제로 예수님은 반복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입을 연다는 표현이 4번 나옵니다. 예수님이 입을 열어 산상수훈을 가르치셨습니다. 입을 열어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빌립 집사는 입을 열어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는 입을 열어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게 설교했습니다.)
(누구에게) 예수님은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은 12 제자들입니다. 제자는 십자가를 지는 사람입니다. 무리는 병을 고치려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리가 되기보다 제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십자가를 구경하기보다 십자가를 지고 가길 바라십니다. (이단들은 이단숫자가 144,000명이 되면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말하는데 144,000은 실제숫자가 아니라 상징숫자입니다. 구약 12지파에 신약 12 제자를 곱하면 144가 나옵니다. 여기에 완전수인 1,000을 곱하면 144,000이 됩니다. 144,000은 하나님의 완전한 백성들의 수입니다.)
(무엇을) 예수님은 천국을 가르치셨습니다. 팔복의 첫 번째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라고 말씀하셨고 여덟 번째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5:10) 고 말씀하셨습니다. 팔복의 처음도 끝도 천국을 말씀합니다. 이것을 수미상관이라고 하는데 천국이 팔복의 핵심이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의 핵심은 천국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팔복을 가르치신 예수님은 천국의 왕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마2:2) 고 물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유대인의 왕 예수’(마27:37) 란 죄패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왕으로서 천국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천국처럼 살려면 팔복을 알아야 합니다. 팔복에는 천국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팔복의 세계로 들어오십시오. 우리 팔복을 배워 이 땅을 천국처럼 살아가십시다. 진정한 행복을 누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