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1-7 처음 사랑을 가지라.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일곱 교회는 오늘날의 터키 서부지역에 있던 교회로 지상에 있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는 일곱 교회가 어떻게 신앙 생활했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신앙 생활해야 할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나오는 교회는 에베소 교회로 지금은 셀주크(Selcuk)입니다. 에베소는 로마제국에서 3번째로 큰 도시로 아시아 지역의 수도였습니다. 행정의 중심지였습니다./ 에베소는 로마제국의 해안도로와 서부도로가 교차하는 지역에 위치했고 근처에 항구가 있었습니다. 교통의 중심지였습니다./ 에베소에는 아데미 여신전과 다이아나 여신전이 있었고 시저와 도미티안 황제 신전도 있었습니다. 우상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에베소에는 2만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이 있었고 사람과 맹수가 싸우는 경기장이 있었습니다. 관광의 중심지였습니다./ 에베소는 행정과 교통의 중심지다 보니 상업이 발달했고 아데미 신전과 원형극장이 있다 보니 관광객이 몰려들었습니다. 에베소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다보니 사도 바울은 2차 선교여행을 하는 동안 에베소를 잠깐 방문하였고, 3차 선교여행 중에는 2년 동안 머물면서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가르쳤습니다.(행19:10) 에베소는 우리나라의 부산정도 되는 도시로 사도 바울이 오랫동안 목회한 도시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이지만 에베소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에도 주신 말씀입니다. 1절 하반 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나옵니다. “오른손에 있는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 라고 말씀합니다.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입니다.(계1:20) 예수님이 일곱별을 붙잡았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에 대한 통치권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이고, 일곱 촛대 사이를 거니신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통치자요 교회의 주님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님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교회의 통치자요 교회의 주님인 예수님은 먼저 에베소 교회를 칭찬합니다. 2절 전반 절을 통해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라고 말씀합니다. 나는 네 행위 즉 네 수고와 인내를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의 수고와 인내를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수고와 인내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어떻게 수고하는지 우리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인내하는지 알고 계십니다. 에베소 교회의 수고는 2절 하반 절을 통해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 이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거짓 사도에 대항하여 싸우는 수고를 했습니다. 우리도 거짓 선지자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이단에 빠지지 않는 것도 수고하는 겁니다. 에베소 교회가 이단과 맞서느라 수고 했듯이 우리 교인들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이단과 거리를 두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의 인내는 3절을 통해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박해를 받았지만 끝까지 참고 견디는 인내를 했습니다. 신앙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입니다. 단거리 선수처럼 순간적인 힘이 아니라 장거리 선수처럼 꾸준한 힘을 발휘해야 합니다. 우리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또 하나를 칭찬받았는데 6절을 통해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니골라당은 우상숭배와 음란한 행동을 조장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음란하게 살지 않고 정결하게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신랑이고 교회는 신부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신랑과 신부가 만납니다. 결혼을 앞둔 신부가 정결하게 살아야 하듯이 우리 교인들도 가정을 지키며 정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세 가지를 칭찬받았습니다. 이단에 맞서느라 수고했다고, 박해를 견디고 인내했다고, 몸을 정결하게 지켰다고.

교회의 통치자요 교회의 주님인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를 책망합니다. 4절을 통해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이광진 교수는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을 향한 처음 사랑과 이웃을 향한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해석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않았는지요? 은혜를 받을 때는 주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눈물 콧물 흘리며 다짐했지만 사이다에 김이 빠지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신앙이 약해지더니 주님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을 위해 살기에 급급해합니다. 우리는 이웃을 향한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않았는지요? 가장 가까운 이웃은 부부입니다. 부부는 결혼할 때는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 사랑하겠다고 맹세했지만 비바람에 바위가 깎여 나가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이 식어가더니 천생연분이 아니라 철천지원수가 되고 맙니다.

교회의 통치자요 교회의 주님인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 경고합니다. 5절을 통해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옮기리라.” 고 말씀합니다.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처음 사랑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사랑이 식은 원인을 찾아 다시 사랑에 불을 붙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 다시 말해 지상에서도 천상에서도 사라지게 하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처음 사랑이 식은 원인은 감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직분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의 월급봉투를 감사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연봉이 작다고 불평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처음에는 애굽에서 구해주신 것을 감사했는데 광야를 지나면서 목이 마르다고 불평하고 고기를 먹고 싶다고 불평하게 되었습니다. 감사가 사라지면 처음 사랑이 식어버립니다. 우리는 없는 것을 불평하지 말고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어느 날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님에게 어떤 사람이 사업에 실패했으니 자살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필 목사님은 잃은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그 사람은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이 더 많았습니다. 그 사람은 다시 용기를 냈습니다. 우리도 없는 것을 불평하기보다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차동엽 신부님은 우리나라가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되기 위해 Thank you!와 Congratulation!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마운 일이 있으면 감사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축하해 주는 게 선진국민입니다.

교회의 통치자요 교회의 주님인 예수님은 이제 에베소 교회를 위해 약속합니다. 7절을 통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네가 영적인 귀를 가지고 있다면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촉구합니다. 예수님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고 약속합니다. 생명나무가 어디서 나오는지 기억나십니까?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창조하신 에덴동산에서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하셨지만 다시 창조하실 천국에서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계22:2,14,19) 천국은 에덴동산보다 낫다는 말씀입니다. (이필찬 교수처럼 계 21장 1절부터 22장 5절을 천국이 아니라 교회로 해석한다면 처음 사랑을 회복한다면 교회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설교해야 한다.)

그렇다면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회복했을까요? 회복하지 않았습니다. 에베소는 주후 262년에 고투족의 공격을 받아 폐허가 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의 3대도시가 폐허도시가 되었습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촛대를 옮기신 결과입니다. 우리도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 사랑을 회복한다면 가정은 전쟁터가 아니라 개그콘서트 현장이 됩니다. 웃음꽂이 만발합니다. 우리가 처음 사랑을 회복한다면 목사님은 생활을 간섭하는 사감선생이 아니라 천국으로 안내하는 가이드가 됩니다. 천국가이드가 됩니다. 하나님에 향한 처음 사랑을 회복합시다. 부부끼리 처음 사랑을 회복합시다. 그것이 가정이 살고 신앙이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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