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5:22-23 성령님의 열매는?

우리 속담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는 속담이 있습니다. 콩 씨를 심으면 콩 열매가 맺히고 팥 씨를 심으면 팥 열매가 맺히듯이 육체의 씨를 심으면 육체의 열매를 맺고 성령님의 씨를 심으면 성령님의 열매가 맺습니다. 성령님의 씨는 어떻게 심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순간 성령님의 씨가 내 안에 심어집니다. 우리 교회는 글 없는 책으로 구원 상담을 하는데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성령님의 씨가 뿌려졌습니다. 성령님의 씨가 뿌려진 후 성령님과 친하게 지내면 성령님의 열매가 맺습니다. 성령님의 열매는 성령님이 주시는 열매입니다. 제가 울진에서 목회할 때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과실수를 심었는데 에스라가 태어나고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포도는 처음에는 좁쌀만 한 크기의 연두색 열매가 맺히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구슬만한 크기의 자주색 열매로 커져가더라고요. 포도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포도송이가 달리듯이 우리는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성령님의 열매가 맺힙니다. 언젠가 뉴스를 보니 일꾼이 과수원 주인에게 앙심을 품고 과실수를 싹둑 잘랐다고 하더라고요. 포도를 따 가면 한 해 농사를 망치지만 포도나무를 자르면 몇 년간 손해를 봅니다. 과실수가 잘리면 열매를 맺지 못하듯이 하나님과 떨어져 있으면 성령님의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발버둥 칩니다. 돈에 약한 사람은 돈으로 유혹하고 이성에 약한 사람은 이성으로 유혹하고 감투에 약한 사람은 감투로 유혹합니다. 사탄은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하나님과 갈라지면 성령님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성령님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을 꼭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을 붙잡는다고 성령님의 열매가 금방 맺히지는 않습니다.

성령님의 열매는 시간이 필요한 열매입니다. 바나나는 열매를 먹으려면 1년이 걸리고 파인애플은 2년이 걸리고 키위는 3년이 걸립니다. 과실수를 심으면 시간이 지나야 열매가 달리듯이 성령님의 열매도 인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KBS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을 보니 제주도에서 파란색 감귤을 따서 에틸렌가스로 분사하니 노란색 감귤로 바뀌더라고요. 강제 착색시킨 감귤은 당도도 떨어지고 빨리 썩습니다. 과일을 인위적으로 빨리 익게 하면 부작용이 생기듯이 성령님의 열매도 갑작스럽게 맺으면 설익게 됩니다. 신앙은 콩나물이 자라듯이 갑작스럽게 자라지 않고 나무가 비바람을 견디면 나이테가 생기듯이 점진적으로 자랍니다. 이 기간이 시련기고 시련기를 견뎌야 성령님의 열매가 알차게 열립니다. 아이도 아프고 나면 크잖아요? 신앙도 시련기를 거쳐야 한층 성숙해 집니다. 성령님의 열매는 시련기를 거쳐 몇 개나 열릴까요?

성령님의 열매는 하나의 열매입니다. 성령님의 열매는 포도송이와 비슷해서 포도 한 송이에 여러 포도 알이 달리듯이 성령님의 열매는 한 송이에 9가지 열매가 달립니다. 포도송이에 알이 떨어져있으면 상품가치가 떨어지듯이 성령님의 열매도 9가지가 달려야 완전한 열매가 됩니다. 성령님은 성령님의 은사를 각 사람에게 맞게 몇 가지를 주시지만 성령님의 열매는 모든 사람에게 9가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9가지 열매가 모두 달리면 하나님의 성품이 완성됩니다. 9가지 열매는 크게 하나님과 이웃과 자신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사랑은 자기희생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자기희생이 사랑입니다.(롬5:5)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해야 마땅합니다. 희락은 내적인 기쁨입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격하여 안에서부터 기쁨이 솟아오릅니다. 사도 바울은 환란 가운데도 기뻐했습니다.(고후7:4) 우리가 기뻐해야 우리의 행복한 얼굴을 보고 전도가 됩니다. 우리가 오만상 찌푸리고 ‘예수 믿으세요.’ 하면 ‘너나 믿어라.’ 고 핀잔합니다. 화평은 내적인 평화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입니다. 돈이 있어서 편안한 게 아니라 고난이 닥치더라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인사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보낼 때 인사말에 ‘주님의 은혜와 평화를 빕니다.’ 라고 썼습니다. 기독교서점에서 파는 액자에도 ‘여기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평화를’ 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이웃과 관련해서는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오래 참음은 인내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납해야 합니다. 눈에 거스른다고 담을 쌓다보면 온 세상이 담벼락이 됩니다. 예수님은 70번씩 7번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한대로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고 했는데 주먹은 멀고 인내가 가까워야 합니다. 자비는 친절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만난 유대인을 외면했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은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친절하고 나쁘면 불손하지 않고 기분에 상관없이 상황에 관계없이 친절해야 합니다. 양선은 선함입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담임목사인 바나바는 부목사인 바울을 자신보다 유명한 사도로 만들었습니다. 악한 끝은 있어도 선한 끝은 없다 고 했습니다. 남에게 악한 일을 하면 보응을 받게 되고 착한 일을 하면 보답을 받게 됩니다. 선행을 베푸십시오./ 자신과 관련해서는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맺어야 합니다. 충성은 믿을 수 있음입니다. 사람은 신실해야 합니다. 장사도 신용이 있어야 사업할 수 있듯이 사람도 신실해야 사람이 따릅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온유는 부드러움입니다. 모세는 온유했습니다. 모세는 불평덩어리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간 이끌었습니다. 부드러운 물방울이 강한 바위를 뚫잖습니까? 강한 다이아몬드도 물의 압력으로 잘리지 않습니까? 우리 부드러운 사람이 됩시다. 절제는 자기 다스림입니다. 운동선수는 자기를 다스리고 훈련에 매진해야 메달을 딸 수 있습니다. 우리도 자기를 다스려야 신앙과 인격을 지킬 수 있습니다. 말도 절제하고 행동도 절제하고.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성령님의 열매는 사랑으로 시작해서 절제로 마칩니다.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을 시작할 수 없고 절제가 없으면 은혜롭게 마무리 될 수 없습니다. 사랑으로 시작해서 절제로 마무리합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열매를 맺고 어떤 열매는 맺지 못하고 있습니까? 성령님의 열매는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면 시련기를 거처 한 송이에 9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9가지 열매를 모두 맺으면 하나님의 성품에 도달하는데 우리는 포도 알이 떨어져나간 포도송이처럼 9가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울진에서 목회할 때 국도를 타고 고향으로 가다보면 상주시 모서면 포도단지를 지나게 됩니다. 포도를 살 때 포도 알이 떨어져나간 포도송이를 고르면 인심 좋은 주인아주머니는 몇 송이를 더 얹어 주더라고요. 우리는 포도 알이 떨어져나간 포도송이처럼 서로 부족합니다. 그러나 포도송이를 얹어 주듯이 우리가 서로를 보완해준다면 포도 알이 꽉 찬 포도송이처럼 값이 나갑니다. 우리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공동체가 됩시다. 나의 부족한 부분은 남이 채우고 남이 부족한 부분은 내가 채우고. 우리는 포도 알이 떨어졌으니 몇 송이를 얹어서라도 예수님의 성품에 도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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