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5:16 오분의 일을 더하여

사람에게는 오장과 육부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장기는 심장입니다. 심장은 자기의 주먹만 한 크기지만 사람 몸에 퍼져있는 8만 킬로미터의 혈관에 피를 순환시킵니다. 심장이 피를 빨아들이고 내보내고 펌프질을 해야 피가 온몸을 돌면서 산소를 전달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다른 영양분을 공급해 사람이 살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은 심장이 중요하듯이 성경은 레위기가 중요합니다. 레위기에서 피의 의미를 설명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피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5가지 제사는 예수님의 다른 모습입니다. 지금 카타르에서 아시안 컵 축구를 하는데 골인이 되면 그 순간을 여러 각도에서 다시 보여주듯이 5가지 제사는 예수님을 여러 각도에서 다시 보여줍니다.

오늘은 다섯 번째 날로 속건제입니다. 속건제는 실수로 죄를 지었을 때 제물을 불살라 바치는 제사입니다. 속죄제도 실수로 죄를 지었을 때 바치는 제사이고 속건제도 실수로 죄를 지었을 때 바치는 제사인데, 속죄제는 죄를 씻는 정결제라면 속건제는 손해를 갚아주는 배상제입니다. 고의로 지은 죄는 번제인데 번제는 가죽만 빼고 모두 다 불사르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제사였습니다. 소제는 고운가루 한 움큼(기름과 유향과 소금)을 불사르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주는 제사장을 먹이는 제사였습니다. 소제는 다른 제사를 드릴 때 함께 드렸습니다. 화목제는 기름과 피를 하나님께 드리고, 가슴살과 뒷다리 살을 제사장에게 드리고, 나머지를 제사 드리는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 제사였습니다. 속죄제는 죄를 지은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제물을 달리 드렸습니다. 다른 제사는 번제단에서 제물을 불살랐는데 속죄제물은 진영 바깥에서 불살랐습니다. 속죄제물을 진영 바깥에서 불태웠듯이 예수님도 예루살렘 성 바깥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성 바깥으로 가져나가 완전히 없애셨습니다.

속건제는 여호와의 성물을 실수로 건드렸을 때 드렸습니다.(레5:15) 하나님은 레위기 5장 15절을 통해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부지중에 범죄하였으면 속건제를 드리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성물은 제사장이 가져야 할 부분을 일반인이 가져가거나,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했다가 지키지 않은 경우에 바쳤습니다. 속건제를 드릴 때는 제사장에게는 원래 금액과 거기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드렸고, 하나님께는 흠 없는 숫양을 바쳤습니다. 우리 속담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했는데 원래 금액 100%에 오분의 일 20%를 더하고 숫양 한 마리를 추가로 바치다 보니 정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컸습니다. 속건제는 하나님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콜게이트 치약을 아십니까? 윌리엄 콜게이트는 십일조를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고 정확하게 드리고자 돈을 버는 즉시 십분의 일을 떼어 오른쪽 주머니에 넣었다고 합니다. 콜게이트는 “나는 오른쪽 주머니에는 십일조를, 왼쪽 주머니에는 이익금을 담는다.”고 말했습니다. 회사원은 월급명세서가 나오기 때문에 정확하게 드릴 수 있지만 자영업자는 수입이 생기는 즉시 떼놔야 합니다.

속건제는 사람에게 실수로 손해를 끼쳤을 때도 드렸습니다.(레6:2-3) 하나님은 레위기 6장 2-3절을 통해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하여 범죄하되 곧 이웃이 맡긴 물건이나 전당물을 속이거나 도둑질하거나 착취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남의 잃은 물건을 줍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의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웃의 물건을 도둑질하거나 남의 물건을 줍고도 돌려주지 않으면 주인에게는 원래 물건과 거기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주었고 하나님께는 흠 없는 숫양을 바쳤습니다. 속건제는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올해 돈을 두 번 주웠습니다. 얼마나 주웠을까요? 20원을 주었습니다. 이런 경우 주인에게는 20원과 거기에 20%인 4원을 보태 24원을 돌려주고 하나님께는 숫양을 바쳐야 합니다. 예수님이 피를 흘려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숫양을 바쳐야 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속건제에서 무엇이 예수님을 상징할까요? 번제는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죽은 흠 없는 수컷이 예수님을 상징했습니다. 소제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소금이 예수님을 상징했습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해시킨 예수님이 화목제였습니다. 속죄제는 사람의 죄를 깨끗하게 씻은 예수님이 속죄제였습니다. 속건제는 사람의 죄를 보상해서 죽은 흠 없는 숫양이 예수님을 상징했습니다. 속건제를는 반드시 흠 없는 숫양을 드렸는데 양을 잡아 그 피를 번제단 사방에 뿌리고 나머지를 번제단 밑에 쏟았습니다. 내장에 붙은 기름은 번제단에서 불사르고 나머지 고기는 제사장이 먹었습니다.(레7:1-6) 하나님은 이사야서 53장 10절을 통해 고난 받는 종이 속건제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속건제로 드린 어린 양이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번제와 화목제와 속죄제를 통해 제물의 피는 죄를 씻는 속죄의 기능을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속건제를 통해 제물의 피에는 속죄의 기능뿐만 아니라 피해를 갚아주는 배상의 기능도 있다고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해 대신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저지른 손해를 보상하시려고 돌아가시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을 기억하십니까? 신애 전도연은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자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와 피아노 학원을 차립니다. 피아노 실력이 부족해 서울에서 학원을 차릴 수 없어 밀양으로 내려왔지만 남편을 사랑했기 때문에 밀양으로 내려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혼자 사는 여자라고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돈이 있는 척하며 투자할 땅이 있는지 알아봅니다. 신애는 자신의 실제 모습을 과장해서 포장합니다. 신애가 돈이 많은 줄 알고 웅변학원 원장이 아들 준을 납치합니다. 준은 시신이 되어 발견됩니다. 신애에게 아들은 인생의 전부였는데 그 전부가 사라졌습니다. 신애는 절망가운데 방황하다가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신애는 교회에서도 신앙심이 깊은 사람으로 행세합니다. 신애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듣고 납치범을 용서하겠다고 교도소로 찾아갑니다. 그러나 아들을 죽인 범인은 너무나 태연히 하나님이 자신을 용서했다고 말합니다. 신애는 자신이 용서하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이미 용서하셨다고 하자 분노하며 절망에 빠집니다. 신애는 하나님께 반항하다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납치범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고 신애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 장면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욕했습니다. 원래 이창동 감독은 호의적이지 않다 보니 기독교를 저급하게 묘사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납치범의 모습이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고 신애 주변에서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종찬 송강호가 예수님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속죄제까지만 안다면 죄를 용서받기만 하면 됩니다. 납치범도 하나님께 용서받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속건제까지를 안다면 손해를 보상하기까지 해야 합니다. 납치범은 신애에게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이미 죽은 준을 다시 살려낼 수도 없고 돈으로 보상할 수도 없으니 적어도 신애에게 만큼은 평생을 죄스러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만 받으면 되는 줄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속건제를 통해 손해를 끼쳤으면 갚아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삭개오가 누구의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고 하자 오늘 구원이 삭개오의 집에 이르렀다고 칭찬하셨습니다.(눅19:8-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가 씨줄과 날줄로 번갈아가면서 짜이는 옷감과 같습니다. 어느 한 올이 풀리면 옷도 풀립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은 죄를 보상하고자 속건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손해를 끼친다면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같습니다. 남을 속이려 하지 말고 차라리 적게 버십시오. 예수님은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형제와 화목하고 후에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5:23-24) 남에게 손해를 끼쳤다면 감추려 말고 갚아주는 저와 여러분이 돼야 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