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21:4-9 그것을 보면 살리라.

1. 도입 질문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십자가가 없는 기독교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가 기독교의 핵심이라는 말입니다. 십자가가 기독교의 핵심이다 보니 교회의 종탑 위에 십자가를 높이 세웁니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보며 저기에 교회당이 있구나 하고 압니다. 교파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만 성단 중앙에 십자가를 배치합니다. 십자가가 설교와 성례전의 중심이란 의미입니다. 교인들은 목에 십자가 목걸이를 겁니다. 나는 교인이라는 표시입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기독교의 핵심인데 원래 십자가는 사형도구였습니다. 로마제국은 노예나 중범 죄인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면 피와 물을 쏟으며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십자가형이 너무 끔찍하다 보니 나중에는 폐지할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으셨지만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가 죄를 씻는 도구가 됐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십자가는 사형도구에서 기독교의 상징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 이전에도 죄를 씻는 도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2. 본문 질문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이 상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합니다. 백성들은 왜 마음이 상했을까요? 백성들은 가나안 땅으로 직접 들어가지 않고 에돔 땅으로 돌아가게 되자 마음이 조급해졌고 참을성이 없어졌습니다. 백성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벼가 여물기 위해서는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받아야 하듯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백성들은 조급증에 걸려 조금만 불편해도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하나님은 민수기 20장 5절을 통해 백성들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라고 원망했습니다. 백성들이 종살이가 너무 힘들다고 간청해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 애굽에서 탈출시키셨는데 그 은혜도 잊고 광야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셨는데 매일 먹게 되자 만나는 하찮은 음식이라고 싫어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물에 빠진 놈 건져놓으니 내 봇짐 내놓아라.’ 한다고 종살이에서 해방시켜주고 먹을 것도 줬더니 종살이할 때를 그리워하며 먹을 것이 형편없다고 불평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남의 은혜를 잊고 불평하지는 않는지요? 옛말에 네발 달린 짐승은 배신하지 않지만 두발 달린 짐승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3장 10절을 통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죄를 지으려는 나쁜 마음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죄를 씻어내야 합니다. 백성들이 원망하자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동안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보호하셨습니다. 먹을 것이 없자 아침에는 만나를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내리셨습니다. 물이 없자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오게 하셨습니다.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를 걸어 다녔지만 의복이 헤어지지 않았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셨습니다.(신8:4) 하나님은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셨지만 또 다시 불평을 늘어놓자 불뱀들을 보내 백성들을 물게 하셨습니다. 불뱀은 사막에 사는 불살모사가 아닐까 추정합니다. 뱀은 고대세계에서 지혜와 죽음을 상징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6절에 예수님은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뱀은 지혜로운 동물이었습니다. 뱀은 또한 죽음의 동물이었습니다. 뱀은 독이 있어 생명을 위협했습니다. 눈꺼풀이 없어 불가사의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뱀은 저승사자를 연상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죽음의 사자인 불뱀들을 보내셨고 많은 백성들은 죽었습니다. 그제야 백성들이 회개했습니다. 민수기 21장 7절을 통해 백성들은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라고 부탁했습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한 것이 죄라는 것을 자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요한일서 1장 9절을 통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스스로 말하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으면 때리시지만 회개하면 싸매십니다. 백성들이 회개하자 모세는 백성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불평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지도자는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민수기 21장 8절을 통해 모세에게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았습니다. 불뱀에 물려 죽은 사람들이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자 모두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자 불뱀들을 보내 징계하셨지만 백성들이 죄를 지었다고 자백하자 놋뱀을 쳐다보면 산다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자비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여기서 장대 위에 달리 놋뱀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하나님은 요한복음 3장 14-15절을 통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인자는 예수님입니다. 이 말씀은 민수기 21장 8-9절과 비교됩니다.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모세가 불뱀에 물린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놋뱀을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모세는 놋뱀을 장대에 달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놋뱀을 쳐다본 자는 모두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3. 적용질문
사람이 뱀에 물리면 독이 혈관을 타고 서서히 퍼져 몸이 퉁퉁 붓고 온몸이 마비되어 결국 심장마비로 죽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세상적인 가치관이 점차 우리를 세뇌시켜 돈을 준다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죄를 짓다가 결국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러나 모세가 놋뱀을 매달아 죽었던 사람들을 살렸던 것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죽지 않고 살아납니다. 십자가는 저와 여러분이 두 번째로 태어나는 장소입니다. 첫 번째는 산부인과에서 태어나고 두 번째는 십자가에서 태어납니다. 하나님은 한 번 태어난 사람은 두 번 죽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을 통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한 번 태어나면 육신의 생명이 한 번 죽고 예수님을 믿지 않아 지옥에서 두 번째로 죽습니다. 그러나 두 번 태어나면 한 번 죽습니다. 산부인과에서 한 번 태어나고 십자가에서 또 한 번 태어나면 육신의 생명이 한 번만 죽습니다. 십자가는 죽어가는 우리를 살립니다.

4. 적용예화
프란체스코는 우물에서 물을 깃는 하인을 지켜보았습니다. 하인은 큰 물통을 내려 물을 담아 올리면서 항상 나무토막 하나를 물통에 넣었습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프란체스코가 하인에게 물었더니 하인은 “물을 퍼 올릴 때 나무토막을 물통 안에 넣으면 물이 요동치지 않아 물이 밖으로 흘러넘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다 보면 물통 안의 물이 흔들리듯이 너무 자주 흔들립니다. 그러나 그 안에 십자가 막대기를 넣으면 물이 출렁거리지 않게 됩니다. 혹시 여러분의 마음이 걱정거리로 가득 찼습니까? 그 안에 십자가를 넣으십시오. 마음이 안정될 겁니다. 혹시 여러분의 마음이 미움으로 넘쳐납니까? 그 안에 십자가를 넣으십시오. 이해하는 마음으로 바뀔 겁니다. 혹시 여러분이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3장 17절을 읽으십시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대신 죽여서 세상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 중에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구원의 방법인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십시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불평하지 말고 감사할 조건을 찾으십시오. 십자가는 용광로처럼 여러분의 걱정과 미움을 녹여서 강철 같은 믿음을 만들어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것을 보면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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