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7:36-50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우리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 자기의 눈 속에 있는 대들보는 깨닫지 못합니다.(마7:3) 남에게 있는 작은 허물은 쉽게 발견하지만 자기에게 있는 커다란 허물은 금방 깨닫지 못합니다. 남의 사소한 실수는 눈에 거슬러 하면서 자신의 중대한 실수는 살짝 넘어갑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경우입니다. 본문을 보면 극명하게 대조적인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 시몬입니다.(눅7:36,40) 바리새인은 유대교의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유대인들은 바리새인을 존경하였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죄를 지은 여인입니다.(눅7:37) 이 여인이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알 수 없지만 본문을 통해 느껴지는 분위기로는 몸을 파는 여인으로 보입니다. 유대인들은 창녀를 멸시하였습니다.

본문은 바리새인 시몬이 자기 집에 예수님을 초청하면서부터 시작합니다. 유대인들은 랍비를 초청하여 음식을 대접하고 말씀도 듣고 하였습니다. 요즘도 교인들이 목사님을 초청하면 목사님은 교인들을 위해 간절히 축복기도를 드리고 음식을 먹잖아요? 유대인들은 귀한 손님이 집을 방문하면 먼저 종이 나가 손님의 샌들을 벗기고 물로 발을 닦아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더운 나라라 땀도 많이 흘렸고 석회암이다 보니 먼지도 많이 묻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어린 시절에 양말도 신지 않고 뛰어놀다 보면 발이 시커먼 해 졌잖아요? 종이 발을 닦아주면 주인은 손님을 환영한다는 의미로 볼에 입을 맞추고 감람유(올리브기름)를 머리에 부어주었습니다. 거실에는 좌식탁자가 ‘ㄷ’ 자 모양으로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는 음식이 소북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귀한 손님이 정중앙에 앉고 아니 앉는 게 아니라 비스듬히 눕는 거죠. 우리나라는 똑바로 앉아서 음식을 먹습니다만 유대인들은 비스듬히 누워서 왼손으로는 쿠션을 기대고 오른손으로는 음식을 집어 먹었습니다. 머리는 탁자를 향했고 다리는 쭉 뻗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을 초청했지만 커다란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집에 들어올 때에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고, 볼에 입을 맞추지도 않았고,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않았습니다.(눅7:44-46) 시몬은 아주 불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라는 사람이 말씀도 잘 전하고 병도 잘 고친다는 소문을 듣고 정말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확인하고 싶어서 집으로 부른 모양입니다. 그 당시는 명예와 수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였습니다. 주인이 정성껏 대접하면 손님을 명예를 얻었지만 소홀히 대하면 손님은 수치를 당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을 초청해놓고 수치를 안겨줬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시골 출신의 하찮은 순회 설교자라고 무시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이웃집에 거지가 왔는데 가족들은 마루에 앉아서 밥을 먹었고 거지는 마당에 앉아서 먹더라고요. 거지니까 가족들과 같이 밥을 먹을 수 없었던 거죠. 시몬은 거지에게 음식을 차려주듯이 예수님을 초청해 놓고 상만 차려 주었지 주인으로서 손님을 접대하는 의식을 생략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여인은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습니다. 여인은 식사 자리에 초청을 받지는 못했지만 바리새인 시몬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초청 받지 않은 사람이 잔치 집에 찾아가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도 남이 불러주지 않는데 찾아간다는 게 여간 어렵잖아요? 여인은 외국에서 수입한 향유를 부어드리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 큰 은혜를 받았던 모양입니다. 요즘도 은혜 받은 할머니가 금붙이를 헌물 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여인이 시몬의 집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왜 여기에 왔느냐는 눈치였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에게 곧장 달려가 발 앞에서 엎드렸습니다. 여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여인은 눈물이 예수님의 발을 적시자 자기의 긴 머리털로 닦아주었습니다. 감히 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먼지와 땀으로 얼룩진 예수님의 발에 연신 입을 맞추었습니다. 여인은 유대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감람유가 아니라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렸습니다.(눅7:37-38) 감람유와 향유는 이마트에서 파는 식용유와 시골에서 부모님이 농사지은 참기름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여인은 아주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존경했습니다. 그녀는 그 어떤 주인보다도 예수님을 최고의 손님으로 예우했습니다. 예수님의 발을 머리털로 닦아 주었고,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었고,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명예롭게 했습니다. 여인은 초청 받지는 않았지만 주인보다도 더 예수님을 극진히 환대했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여인의 행동을 보고 자신의 실수를 뉘우치기는커녕 여인이 죄인이라는 걸 문제 삼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죄를 지은 사람과 접촉하면 죄가 옮겨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시몬은 예수님이 여인을 쫓아내지 않고 만지도록 방치하는 게 못마땅했습니다.(눅7:39) 시몬은 여인을 정죄했기 때문에 여인의 행동을 본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으로 존중했기 때문에 회개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미워했지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병든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예수님은 여인이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더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을 통해 그리고 예수님이 보이신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확신했습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여전히 예수님을 못마땅해 했습니다. 예수님이 시몬에게 물으셨습니다.(눅7:41-42)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님은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일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치 품삯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은 노동자의 오백일치 품삯을 빚졌고 또 어떤 사람은 오십일치 품삯을 빚졌는데 갚을 수가 없어 탕감해 주었다면 누가 더 주인을 사랑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시몬이 대답했습니다.(눅7:43)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예수님도 그 판단이 옳다고 동의하시고 시몬에게 이르셨습니다.(눅7:47)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예수님은 죄를 지은 여인은 오백일치 품삯을 탕감 받았고 바리새인 시몬은 오십일치 품삯을 탕감 받았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시몬은 자신은 의인이라고 자부했기에 죄를 조금만 탕감 받았지만 여인은 자신이 죄인이라고 회개했기 때문에 더 많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남의 티끌이 아니라 나의 대들보를 보는 사람이 용서받습니다. 예수님이 여인에게 선언하셨습니다.(눅7:48)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여인이 죄를 용서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는 하나님만이 용서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를 용서해주실 수 있었습니다. 여인이 죄를 용서받은 것은 예수님의 발에 묻은 눈물을 머리털로 닦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눅7:50)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여인이 죄를 용서받은 것은 예수님께 헌신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베소서 2장 8-9절을 통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여인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알게 모르게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돌아가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하늘에 승천하셨다가 다시 재림하신다고 믿는다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보십니다. 우리의 죄가 아니라 믿음을 보십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었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헌신은 복 받으려고 가 아니라 감사해서 하는 겁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행함으로 감사를 표현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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