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2:1-8 향유를 발에 붓고

예수님에게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저는 나이가 비슷한 사람이 친구인지 알았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가깝게 오래사귄 사람이 친구라고 하네요. 나이가 달라도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이 친구라는 뜻이죠. 친구에 대한 속담도 여럿 있더라고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은 너무 잘 알려진 속담이죠. ‘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는 속담도 공감이 가네요. ‘술친구는 친구가 아니다.’는 속담은 새겨둘 만하네요. 술 마실 때 어울리는 친구는 참된 친구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고슴도치도 살친구가 있다.’는 속담도 중요하네요. 누구에게나 친하게 사귀고 지낼 친구가 있다는 뜻이죠. 고슴도치도 친구가 있는데 사람이 친구가 없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 거겠죠? ‘좋은 친구가 없는 사람은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와 같다.’는 속담도 의미심장하네요. 좋은 친구가 없으면 위급할 때에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될 수 있다는 속담이네요. 자신이 남을 도와주지 않으면 자신도 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거겠죠? 여러분도 좋은 친구를 사귀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에게는 친구가 있었다.
예수님에게는 서로 도와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삼남매였어요. 삼남매 모두가 예수님의 친구였죠.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북부인 갈릴리 지방에서 주로 활동하셨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명절이 되면 고향을 방문하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 명절이 되면 남부인 유대 지방 예루살렘 마을을 방문하였어요. 예루살렘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이 있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절에 고향에 가서 조상들에게 제사도 드리고 선산도 둘러보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명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어요. 우리나라는 조상을 섬겼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겼어요.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를 때마다 동쪽으로 3Km로 떨어진 베다니 마을을 방문하셨어요.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가 베다니에 살았기 때문이죠. 예수님이 베다니에 오시면 언니인 마르다가 나가 예수님 일행을 맞이했습니다.(요11:20) 마르다는 부엌으로 들어가 눈코 뜰 새 없이 음식을 장만했어요.(요12:2) 마르다는 종갓집 맏며느리처럼 손님 접대를 중요시했어요. 오빠인 나사로는 예수님을 귀한 손님으로 환영했습니다.(요12:2) 이스라엘 사람들은 손님이 방문하면 종이 발을 닦아주는데, 종이 예수님의 샌들을 벗기고 땀과 먼지로 범벅 된 발을 닦아주면 나사로는 머리에 올리브기름을 붓고 볼에 입을 맞추고 포옹을 했습니다. 거실에는 좌탁이 'ㄷ‘ 모양으로 펼쳐져 있었고 소파가 놓여있어 예수님이 중앙에 앉으시면 손님들은 자기 서열에 따라 자리를 잡고 왼손으로는 소파를 기대며 비스듬하게 누웠고 오른손으로는 음식을 집어 먹었습니다.

예수님은 친구인 나사로를 살려주셨다.
예수님은 삼남매와 친구이기도 했지만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을 통해 오빠인 나사로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어요. 삼남매만 사는데 오빠가 죽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마르다,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도와달라고 사람을 보냈죠. 삼남매가 도와달라면 예수님이 당장 달려가실 텐데 이번에는 차일피일 미루셨어요. 나사로는 그만 죽고 말았어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더운 나라라 당일 장을 치르는데 예수님은 나흘 만에 오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사흘간 머문다고 생각했기에 나흘이 지났으니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어요. 친구가 도와달라는데 나 몰라라 했기 때문이죠. 예수님은 그들이 우는 모습을 보시고 마음이 비통하여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서 돌문을 열라 하시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고 나사로야 나오라고 부르셨습니다. 나사로는 손과 발이 베로 동인체로 걸어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풀어서 다니게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어요.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면서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사람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보여주셨습니다.(요11:25-26)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면서 우리도 예수님을 믿다가 죽으면 다시 살아난다고 알려주셨어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는 장면을 목격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요11:45) 죽은 사람이 살아났으니 안 그러겠어요? 그러나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은 죽은 사람도 살리는 예수님이 두려워 죽이려고 모의하였습니다.(요11:53) 마르다와 나사로는 생명의 은인인 예수님을 더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마르다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고 나사로는 귀중한 손님으로 환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곤 했던 마리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눅10:39) 마리아는 어디를 갔을까요?

마리아는 친구인 예수님을 왕으로 섬겼다.
마리아는 자기 방에서 지극히 비싼 향유를 들고 나왔습니다. 향유는 인도에서 자라는 나드의 뿌리에서 추출한 향기 나는 기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부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향수인 클리브 크리스천스 임페리엘 메이저스티를 수입하려고 하듯이 이스라엘 부자들은 값비싼 향유를 수입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금의 시세차익을 노리고 재테크하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향유의 시세차익을 노리고 사재기했어요. 마리아는 그렇게 귀중한 순전한 나드 한 근을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손님의 발을 물로 닦아 주었는데 마리아는 순전한 나드 한 근을 발라주었습니다. 보통 한 병이 1온스인데 한 근이면 12온스나 됩니다.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머리에 올리브기름을 붓는데 마리아는 왕에게나 바르는 순전한 나드를 발라주었습니다.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마르다와 나사로는 친구인 예수님을 귀중한 손님으로 대접했지만 마리아는 친구인 예수님을 위대한 왕으로 섬겼습니다.

가룟 유다는 친구인 예수님을 이용해 먹었다.
마리아가 부은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했습니다.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마리아의 헌신에 놀랐으나 가룟 유다는 마리아의 낭비를 나무랐습니다.(요12: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삼백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삼백일치 품삯입니다. 일 데나리온을 오만으로 환산하면 천 오백만원이나 됩니다. 가룟 유다는 천 오백만원어치 향유를 발에 붓지 말고 부자들에게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룟 유다의 말은 실용적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고 한 말이 아니라 향유 판돈을 빼돌리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말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 일행의 돈궤를 맡고 있었는데 가끔씩 공적인 일이 아니라 사적인 일을 위해서도 돈을 빼갔습니다.(요12:6) 가룟 유다는 친구인 예수님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했습니다. 마리아가 친구인 예수님을 위해 헌신했지만 가룟 유다는 자신을 위해 친구의 금고를 털어갔습니다.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친구인 마리아를 두둔하셨다.
예수님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셨을까요? 당연히 마리아겠죠. 예수님은 마리아를 두둔하셨습니다.(요12:7-8)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동이 예수님의 장례식을 준비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신을 물로 닦고 기름을 발라 세마포 수의를 입혀서 동굴 무덤에 묻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향유를 바른 것은 시신에 바른 것을 예시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로마제국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를 바랐지만 예수님은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피를 흘리고 돌아가시러 오셨습니다. 이 일은 유월절 엿새 전에 일어났고 예수님은 유월절에 돌아가셨으니 마리아가 향유를 바른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암시한 것이죠. 예수님은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나중에라도 도울 수 있지만 지금은 자신을 도와야 한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예수님은 친구를 위해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누구를 위해 돌아가셨을까요? 친구를 위해 돌아가셨어요. 우리들을 위해 돌아가셨어요.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13-14절을 통해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친구를 위해 돌아가셨고 우리도 친구를 위해 헌신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은 마리아도 친구를 위해 헌신했다고 말씀하셨어요. 마리아가 친구를 위해 헌신하자 예수님은 마가복음 14장 9절을 통해 “온 천하에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고 말씀하셨어요. 친구를 위한 헌신을 칭찬하신 거죠. 그러나 가룟 유다는 친구 돈을 훔쳐간 것도 모자라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듯이 돈을 받고 친구 몸을 팔았어요.(막14:10-11)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룟 유다처럼 친구인 예수님을 팔겠습니까? 아니면 마리아처럼 친구인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시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마리아처럼 친구인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고, 친구를 위한 가장 큰 헌신이 우리 친구를 예수님의 친구로 만드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의 친구들을 예수님의 친구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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