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5:11-24 아버지가 그를 보고 달려가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한계에 도달한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습니다. 큰아들은 아버지를 도와 묵묵히 집안일을 했으나, 둘째아들은 집안일은 고사하고 어떻게 하면 집을 떠날까를 궁리했습니다. 어느 날 둘째아들이 아버지에게 당돌하게 요구했습니다.(눅15:12)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둘째아들은 아버지의 재산 중에서 자기 몫을 미리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 재산을 상속했는데 둘째아들은 아버지가 살아 계신데도 유산을 미리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한 무례한 행동이었습니다. 아버지도 물러 터졌습니다. 아버지는 둘째아들을 호되게 나무라지 않고 큰아들과 둘째아들에게 율법의 규정에 따라 유산을 분배해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큰아들은 다른 아들보다 두 배의 유산을 상속받았습니다.(신21:17) 아들이 둘인 경우 큰아들은 3분의 2를, 둘째아들은 3분의 1을 물려받았습니다. 둘째아들은 며칠이 안 되어 유산을 처분하고 현금으로 바꾸어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미리부터 집을 떠날 계획을 한 모양이었습니다. 둘째아들은 수중에 돈이 들어오자 온 세상을 얻은 것처럼 들떠서 돈을 물 쓰듯이 펑펑 썼습니다. 둘째아들이 돈을 쓰자 물고기가 먹이를 찾아 몰려들듯이 아첨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둘째아들은 아버지가 조폐공사 사장이라도 되는 듯이 돈을 흥청망청 썼습니다. 둘째아들이 기분을 내면낼수록 돈도 빠르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다 돈이 바닥이 났습니다. 둘째아들이 돈을 쓸 때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달라붙던 무리들도 돈이 떨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매몰차게 떠나갔습니다. 돈 때문에 모인 사람은 돈 때문에 떠나기 마련입니다. 그게 사람의 인심인가 봅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 먹을거리가 떨어졌습니다. 둘째아들은 돈은 없지 배는 고프지 어쩔 수 없이 그 나라의 지주에게 몸을 의탁했습니다. 지주는 둘째 아들을 들로 보내 돼지를 치게 하였습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습니다만 이스라엘 사람은 돼지를 부정한 짐승으로 여겼습니다.(신14:8) 돼지고기를 먹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제물로도 드리지 않습니다. 돼지를 만지지도 않는 이스라엘 사람이 돼지를 친다는 것은 엄청난 굴욕이었습니다. 막장 인생도 이런 막장 인생은 없었습니다. 둘째아들은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돼지치기가 됐는데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도 부족해 굶기를 밥 먹듯이 했습니다. 둘째아들은 돼지보다 못한 비참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비유입니다. 여기서 아버지는 하나님입니다. 둘째아들은 하나님을 떠난 불쌍한 인생을 가리킵니다. 둘째아들이 아버지에게 구속받기 싫어 집을 떠났듯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방탕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살 수 없듯이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면 살 수 없습니다. 물을 떠난 물고기가 숨을 쉬려고 아가미를 헐떡거리듯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조만간 한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정의 문제가 생깁니다. 남편이 속을 썩이든지 아들이 속을 썩이든지 집안에 걱정거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아니면 건강의 문제가 터집니다. 몸이 아프다 보니 그동안 안 먹고 안 입고 모은 돈을 고스란히 병원에다 갖다 바치게 됩니다. 둘째아들이 이 지경이 됐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둘째아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한계에 도달하면 정신을 차리게 된다.
둘째아들은 주린 배를 끌어안고 들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았습니다. 둘째아들은 자신의 신세가 너무도 처량해 한줄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둘째아들은 그제야 스스로 돌이켰습니다. 정신을 차렸습니다.(눅15:17-19)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둘째아들은 돈이 있을 때는 집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막장에 떨어지다 보니 꿈속에서 고향 집이 보였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일꾼이 여럿 있는데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러나 둘째아들은 돼지가 먹는 음식도 부족해 배를 곪기 일쑤였습니다. 둘째아들이 왜 이렇게 비참하게 됐습니까? 아버지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집에 있었다면 부자 집 도련님으로 호의호식하며 살았을 텐데 아버지에게 구속받지 않으려고 받은 복을 걷어찼기 때문입니다. 둘째아들은 배도 고프고 아버지께 사죄도 하기 위해서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집에 가면 아들이 아니라 일꾼으로 써달라고 부탁할 요량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따뜻하게 맞아주신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어떻게 지내셨을까요? 아버지는 둘째아들을 떠나보내고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좋은 음식을 먹을 때마다 둘째아들은 삼시세끼를 거르지 않는지 걱정을 했습니다.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둘째아들은 편히 쉬는지 염려를 했습니다. 아버지는 둘째아들을 떠나보내고 마을 입구에 나가 저 멀리 떨어진 지평선을 바라보는 게 하루일과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날도 지평선을 바라보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 힘겹게 걸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둘째아들인가 싶어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둘째아들은 명품으로 치장하고 큰 소리 치며 떠났는데 그 사람은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있었고 몸이 불편한지 지팡이에 의지해 힘겹게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사람이 둘째아들이라고 직감했습니다. 아버지는 둘째아들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들이 먼저 사죄하면 아버지가 마지못해 용서해주는 게 관례인데 아버지는 아들을 측은히 여기고 사죄도 받지 않고 먼저 용서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아버지는 둘째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눅15:20) 둘째아들은 아버지가 일꾼으로 맞아주기만 해도 감사할 텐데 아버지가 마중까지 나오자 너무나 황송했습니다. 둘째아들은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눅15:21)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둘째아들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말씀도 불순종했고, 아버지가 살아 계신데도 유산을 달라고 무례를 저질러 도저히 아들이라고 불릴만한 자격이 없다고 뉘우쳤습니다. 둘째아들이 아들이 아니라 일꾼으로 써 달라고 부탁할 틈도 없이 아버지가 종들에게 일렀습니다.(눅15:22-25)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아버지는 둘째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라고 했습니다. 좋은 옷은 귀한 손님에게 내주는 옷입니다. 아버지는 가락지를 끼우라고 했습니다. 반지는 아들로서 맞아들이겠다는 의미입니다. 아버지는 신을 신기라고 했습니다. 신발은 일꾼이 아니라 아들이라는 표시입니다. 아버지는 둘째아들이 진심으로 뉘우치자 다시 아들로 맞아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아들이 다시 살아나고 잃어버린 아들을 다시 되찾은 것이 기뻐서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라고 지시했습니다. 살진 송아지는 들에서 풀을 먹으며 방목하지 않고 우리에서 곡식을 먹으며 자란 귀한 송아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말수가 적지만 속 깊은 정을 가지고 계시듯이 우리 영혼의 아버지도 멀리 떨어져 계신 것 같지만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로봇인양 리모컨으로 조종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자유의지를 선용하길 바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침반의 N극이 언제나 북쪽을 가리키듯이 언제나 하나님을 떠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혹시 하나님을 떠났더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돌아오면 하나님 아버지는 버선발로 마중 나오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손을 잡고 따뜻한 안방으로 이끌고 들어가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푸짐하게 잔치 상을 차려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기 원하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오면 열렬히 환영하시고 풍성한 잔치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 창대교회는 잃어버린 영혼을 구하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환영하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교회가 돼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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