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3:1-9 회개하지 아니하면

2010년 1월 12일에 아이티에서 리히터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해 23만 여명이 숨진데 이어, 2월 27일에는 칠레 서쪽 태평양 연안에서 규모 8.8의 초대형 강진이 발생해 사망자가 800 여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3월 2일에 공군 F-5 전투기 2대가 추락해 조종사 3명이 순직한데 이어, 3월 3일에는 육군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 2명이 순직했습니다. 전투기 조종사인 어 대위는 만삭인 아내와 5살짜리 딸을 남겨 놓고 순직했고, 헬기 조종사인 박 준위는 4,200시간 무사고 조종사였는데 부인과 삼남매를 남겨두고 순직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런 사건 사고가 있었다.
오늘날만 이런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사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건 사고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인데 예수님이 살던 당시에 이스라엘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통치를 받았듯이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총독은 군인 출신인 ‘본디오 빌라도’였습니다. 빌라도는 로마제국의 변방에 있는 작은 나라의 총독이다 보니 자존심도 상했고, 진급 가능성도 없다 보니 미래도 불투명했습니다. 빌라도는 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혹하게 통치했습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빌라도가 가혹하게 통치할수록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세게 저항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독립운동을 벌인 사람들을 열심당원이라고 하는데 열심당원들은 우리나라의 독립투사들이 만주에 거점을 두고 항일운동을 벌였듯이 이스라엘의 북부인 갈릴리에 본거지를 두고 로마제국에 협조하는 사람들을 암살하거나 로마 군인들을 살해했습니다. 빌라도는 눈에 가시 같은 열심당원들을 토벌하려고 별렀습니다. 그 즈음에 열심당원들 중 몇 명이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성전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첩보가 입수되었습니다. 빌라도는 군대를 보내 열심당원들을 살해했습니다. 열심당원들은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에 그들의 피가 틔었습니다. 짐승의 피와 사람의 피가 섞였습니다.(눅13:1) 이스라엘의 독립운동을 반대하던 바리새인들은 갈릴리 사람들이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당연히 죽은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물을 끌어오는 수로 공사를 하다가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인부 열여덟 명이 깔려 죽었습니다. 그 당시는 엄청나게 큰 사고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독립운동을 벌이던 열심당원들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적국을 도와 부역을 했기 때문에 죽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개인이 겪는 고난은 개인이 지은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과론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지은 죄로 인해 자기가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논리로 따진다면 아이티나 칠레에서 지진이 발생해 안타깝게 죽은 사람들도 그리고 전투기와 헬기가 추락해 아깝게 순직한 사람들도 자신들의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됩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말로 그들이 죄를 지어 벌을 받은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사고로 죽었다고 그 사람이 죄를 지은 사람도 아니고, 살았다고 그 사람이 의로운 사람도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이고 의인이라고 죽고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들처럼 죽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죽을 수 있으니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13:3,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회개는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겁니다. 예수님은 회개하지 않으면 육체적으로도 죽을 수 있고 그것보다도 더 무섭게 영적으로도 죽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람이 한 번 태어나 한 번 죽는다고 생각하는데 성경에서는 한 번 태어난 사람은 두 번 죽는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서 9장 27절을 통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체적으로 한 번 태어난 사람은 육체적으로 한 번 죽고 영적으로도 또 한 번 죽게 됩니다. 영적인 죽음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요한계시록 20장 15절을 통해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적인 죽음은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겁니다. 지옥 불에 던져지면 죽지도 않고 밤낮으로 괴로움을 당합니다. 두 번째 죽음을 당하지 않으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두 번 태어나면 한 번만 죽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언제까지나 기다려주지는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지금 당장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장 회개해야 하는 이유를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비유로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사람은 무화과나무가 삼 년이 됐는데도 열매를 맺지 않자 포도원 지기에게 찍어버리라고 지시했습니다.(눅13:7)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목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저도 과실수를 심었었는데 삼 년이 되니 열매를 맺더군요. 삼 년이 됐는데도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무슨 문제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도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을 만들고 고추 모종을 심었는데 여름이 됐는데도 고추가 열리지 않는다면 뽑아버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주인도 열매를 맺지 않고  땅만 버리니 차라리 찍어버리라고 지시했던 겁니다. 포도원 지기는 일 년만 더 기다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눅13:8-9)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열매를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포도원 지기는 일 년만 더 기다려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어떤 사람은 누구일까요? 하나님입니다. 포도원은 세상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인들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들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는 겁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말해 교인들이 죄를 짓는 겁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는데 사람들이 세상을 악하게 더럽혔습니다. 주인은 더 이상은 볼 수 없어 무화과나무가 땅만 버리니 찍어버리라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교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어두운 세상에 동화되어가자 심판을 하시겠다고 나서신 겁니다. 그러자 포도원 지기가 말렸습니다. 포도원 지기는 누구일까요? 예수님입니다. 포도원 지기가 두루 파고 거름을 줄 테니 기다려달라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을 통해 교인들을 회개시킬 테니 심판을 미루어 달라는 부탁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부탁을 들으시고 심판을 유보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전서 3장 9절을 통해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셔서 심판을 미루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기다리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젠가는 심판하십니다. 예수님은 임신한 여자가 해산의 고통을 겪듯이 반드시 재림하시고(살전5:3) 밤에 도둑이 들어오듯이 갑자기 재림하십니다.(살전5:2)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나면 늦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두 번 태어났으니 한 번만 죽을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잠에서 깨어날 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