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9:28-36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중대한 결단을 내리기 전에 측근들을 이끌고 산행을 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이 습관은 예수님에게 배웠나 봅니다. 예수님도 중요한 순간에 산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에서 사역을 마치고 유대 지방으로 가서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핵심 제자들인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셨습니다.(눅9:28) 예수님은 중요한 순간에 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학자들은 이 산이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있는 헐몬 산이거나 아니면 갈릴리 지방에 있는 다볼 산이라고 추정합니다. 이 산이 어느 산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신 이유가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산은 특별한 장소입니다. 모세는 시내 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출24:12이하) 엘리야는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왕상19:8이하) 시내 산과 호렙 산은 같은 산입니다. 우리 감리교회의 장광영 전 감독회장님도 산 기도를 하다 성령님을 체험하고 하산하는 길에 꼽추를 만났는데 불쌍한 마음이 들어 간절히 기도했더니 반듯하게 펴졌다고 간증했습니다. 성경에서의 산도 오늘날의 산도 하나님을 체험하는 장소입니다. 기도원을 보십시오. 대부분 산에 있잖아요? 요즘도 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들 덕분에 이 나라가 이 만큼이라도 사는 겁니다.

예수님이 산에 오르시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중요합니다. 산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셨습니다. 이 변화는 내면에서 시작된 외면의 변화였습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 원래의 모습인 하나님이신 예수님으로 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변하시자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서는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다고 말씀하고, 마태복음 17장에서는 예수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났고 옷이 빛 같이 희어졌다고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34장 29절 이하를 통해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내려 올 때에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났다고 말씀했는데 예수님의 얼굴도 해 같이 빛났습니다. 다니엘서 7장 9절을 통해 하나님의 옷은 눈 같이 희다고 말씀했는데 예수님의 옷도 빛 같이 희어졌습니다. 옥시크린으로 빨래를 한 것보다 더 희었습니다. (저도 기도하다가 환상 중에 예수님을 보았는데 옷이 빛 같이 희었습니다.) 그러더니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눅9:30) 여러분, 모세와 엘리야가 누구입니까?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신명기 18장 15절을 통해 모세는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신다고 말씀했는데 그 선지자는 메시야입니다. 모세는 메시야가 오신다고 예언했고 그 메시야는 예수님입니다. 모세는 또한 하나님께서 묻어 주셨으나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었습니다.(신34:6)/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말라기 4장 5절을 통해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온다고 예언됐습니다. 그 엘리야는 세례자 요한으로 요한은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했습니다. 엘리야는 또한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하늘로 올라갔습니다.(왕하2:11) 모세와 엘리야는 율법과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승천한 인물이지만 이들 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들과 함께 대화하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를 완전하게 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도 중요합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했습니다.(눅9:31) 여기서 ‘별세하다.’는 ‘떠난다.’는 말로 예수님의 죽음을 가리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돌아가실 것을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라 애굽을 떠난 것을 연상시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종살이에서 해방되었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세상을 떠나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만 구원했지만 예수님은 열방을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모세를 능가하시는 분이십니다.

베드로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베드로는 깊이 졸다가 아이가 어른들 이야기에 끼어들듯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의 이야기에 끼어들었습니다. 베드로가 제안했습니다.(눅9:33)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베드로는 장막절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을 짓고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했듯이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고 생각하고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기념하여 초막을 짓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영광이 있기 전에 고난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간과했습니다. 예수님은 며칠 전에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셨습니다.(눅9:23)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은 제자가 되려면 자기 생각과 욕심을 버리고 고난과 순교를 각오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눈물로 씨를 뿌리지 않으면서 기쁨으로 단을 거두려고 합니다. 밥상은 차리려 하지 않고 차려 놓은 밥상을 받으려고 합니다. 헌신은 하지 않고 축복을 받으려 합니다. 고난이 없는 영광은 모래위에 지은 집처럼 기초공사가 부실해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릅니다. 고난이 있는 영광은 반석위에 지은 집처럼 기초공사가 튼튼해 비바람이 불어도 끄떡없습니다. 진도 7의 강진에도 끄떡없습니다. 여러분, 고난은 성장 통입니다. 과정입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난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도 지금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이 고난을 이기면 나중에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겁니다. 지금은 아주 미약하지만 나중에는 심히 창대해질 겁니다.

하나님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베드로가 초막을 짓겠다고 제안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성경에서 구름은 하나님이 임하셨다는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구름 기둥으로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고(출13;21),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도 구름으로 가득하게 임하셨습니다.(왕상8:10)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듯이, 호렙 산에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듯이, 산을 덮은 구름 속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말씀하셨습니다.(눅9:35)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예수님이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대하던 그 메시야이십니다. 예수님은 메시야가 오신다고 예언했던 모세와 메시야가 오실 길을 준비한 엘리야와 차원이 다른 분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조연이라면 예수님은 주연이고, 모세와 엘리야가 전령이라면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신분을 알려주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들으라.’는 듣고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누가복음 3장 22절을 통해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자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고 신분만 알려주셨는데 9장 35절을 통해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고 신분도 알려주시고 순종도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누군지 부터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군지 안다면 그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다시 오셔서 심판을 하십니다. 하와는 뱀의 말을 들었고 아담은 하와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피조물의 말을 들었기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창조주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도 성공하고 인생도 성공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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