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5:1-11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는 4명의 성인이 있다고 말합니다. 동양에서는 석가모니, 공자, 예수, 마호메트를 4대 성인이라고 말하고, 서양에서는 소크라테스, 석가모니, 공자, 예수를 4대 성인이라고 말합니다. 4대 성인은 동양에서 먼저 정했는데 서양에서 마호메트를 빼고 소크라테스를 넣고 이것이 맞다 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서양의 영향을 받아 마호메트가 아니라 소크라테스를 성인으로 인정합니다. 아무튼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다른 성인들과 동격으로 이해합니다. 오늘날은 종교다원주의의 영향으로 모든 종교는 똑같은 종교지 우월한 종교가 없다고 단정합니다.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여겼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여겼다.
베드로는 갈릴리 지방 가버나움 마을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 마을을 선교의 베이스캠프로 삼으셨기 때문에 베드로와는 접촉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날은 베드로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으면서 시작됐습니다.(눅4:38) 그 당시는 말라리아에 감염돼 열병을 앓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열병이라는 단어는 불이라는 단어이기도 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습니다. 말라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흔한 질환으로 열병이 심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가버나움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예수님은 베드로의 집으로 달려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해열제를 처방하신 게 아니라 열병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열병이 떠났습니다.(눅4:39) 베드로의 장모는 곧바로 원기를 회복하고 예수님에게 수종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4장 35절을 통해 말씀 한 마디로 귀신을 쫓아내셨고 4장 39절을 통해 말씀 한 마디로 열병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베드로는 장모님의 열병이 낫는 기적을 목격했지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신분을 파악하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 나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그날따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으면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지지만 고기를 잡지 못하면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지기 마련입니다. 베드로는 오늘은 허탕을 쳤지만 내일을 위해 그물을 손질했습니다. 그물에 묻은 수초를 떼어 주고 돌에 찢긴 그물을 기웠습니다. 그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갈릴리 지방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달라고 몰려왔고 예수님은 해안가로 나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보시고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밤새 고기를 잡고 아침에는 그물을 손질하느라 피곤했지만 예수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었습니다. 그 당시 어선은 길이가 4-6미터 정도 됐고 어부 4명이 탔는데 중앙에는 돛이 있어 바람이 불면 돛으로 움직였고 바람이 없으면 노를 저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에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육지에서 배를 떼라고 했는가 하면 갈릴리 호수는 지표면 보다 200미터가 낮았고 주변에 언덕이 병풍처럼 쳐져있어 말씀을 전하면 멀리서도 잘 들렸습니다. 베드로는 눈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는지 꼬박꼬박 졸면서도 자리를 지켰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마치시고 베드로에게 지시하셨습니다.(눅5:4)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아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씀이란 말입니까? 예수님은 밤새 고기를 잡고 온 어부에게 배를 빌려 달라고 하시더니 이제 집에 가서 아침 먹고 눈 좀 붙이려 했는데 호수 한가운데로 나가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베드로는 기분이 상했습니다. 예수님은 탁자를 만드는데 전문가였고 베드로는 고기를 잡는데 전문가였습니다. 목수가 어부에게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니 주제가 넘어도 보통 넘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코칭도 엉뚱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고기는 밤이 되면 물가로 나와 신나게 놀았습니다. 어부들은 이때를 놓칠세라 저인망 그물을 던졌습니다. 저인망 그물은 한쪽에는 추가 달려 있어 아래로 가라앉았고 다른 한쪽에는 코르크가 달려 있어 물위에 떴습니다. 어부들은 배 두 척에 나눠 타고 그물을 던져서 원을 그리며 그물을 모아 아래쪽과 위쪽의 끈을 잡아당겼습니다. 고기들은 그물에 갇혀 옴짝달싹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해가 중천에 떠서 고기들이 쉬려고 강 아래로 깊이 숨었습니다. 지금 그물을 던져봐야 피라미 한 마리도 잡지 못할 게 뻔했습니다. 베드로의 동료들은 인상을 찌푸렸고 베드로도 잠깐 망설였습니다. 베드로는 어차피 자는 시간도 놓쳤으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결심했습니다.(눅5:5)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 이다.” 우리는 여기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른 호칭을 주목해 봐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존경했습니다. 베드로는 비록 터무니없이 들렸지만 예수님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어쨌든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순종은 전후좌우를 재보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따르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게 어디 이성적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그러나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존 웨슬리도 썩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올더스케이트 거리에 있는 신도회에 나갔는데 윌리엄 홀랜드가 마르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는 것을 듣고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졌던 것처럼 베드로와 동료들도 힘겹게 노를 저어가 길이가 90미터 정도 되는 그물을 던지기가 무섭게 고기들이 걸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다.
보통 때라면 고기들이 수면 아래에서 쉬고 있어야 하는데 이날따라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보통 때라면 그물을 피하려고 발버둥 쳐야 하는데 이날따라 그물에 걸리지 못해 안달이었습니다. 고기가 얼마나 많이 걸렸는지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었고 베드로와 동료들이 끌어당길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육지에서 구경하고 있는 다른 동료들에게 도와달라고 손짓을 하였습니다. 베드로와 동료들은 힘차게 그물을 끌어당겼고 고기는 두 배가 잠길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잡혔습니다. 베드로가 고기를 잡은 이래 이렇게 많이 잡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동료들은 기뻐했지만 베드로는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눅5:8)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우리는 여기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른 호칭을 다시 주목해 봐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베드로는 도저히 고기를 잡을 수 없는 시간에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고 저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느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환상 중에 부르시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면 두려워집니다. 중세시대 때 성당을 크게 짓는 이유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위엄 앞에 인간을 굴복종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권위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베드로는 장모님의 열병이 낫는 기적을 목격하고는 흔들리지 않았지만 한낮에 두 배가 잠길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는 기적을 체험하고는 고꾸라졌습니다. 인간은 버티어봤자 하나님께 항복하게 되는데 더 고집을 피운다면 채찍을 맞게 됩니다. 베드로는 맞기 전에 깨달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랐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만나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안심시키시고 사명을 맡기셨습니다.(눅5:10)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예수님은 베드로가 조금 전에 엄청난 고기를 잡았는데 이제부터는 엄청난 사람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잡은 고기는 베드로가 구원할 사람들을 암시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고기를 많이 잡아 처자식을 배불리 먹이는 게 인생의 목표였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는 예수님이 인생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모든 것 다시 말해 그 많은 고기와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세상적 가치는 작아지고 신앙적 가치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예수님이 가까이 계시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예수님과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다 누군가의 인도로 교회를 나왔습니다. 처음에 교회에 나오면 어린아이가 젖을 먹듯이 보살핌을 받지만 어린이로 커가면서 밥을 먹듯이 스스로 신앙 생활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신앙이 자라면 어른이 되듯이 교회를 처음 나온 교인들을 보살펴주게 됩니다. 사람이 자라듯이 신앙도 자라납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성장할 뿐만 아니라 성숙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신앙이 성장했다고 베드로처럼 모든 소유를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요구하시지는 않습니다. 특별한 경우에만 부르십니다. 그것보다도 예수님은 우리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바르게 산다면 자석이 쇠를 끌어당기듯이 다른 사람들을 주님 품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런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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