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역사적 예수 연구 동향
데이비드 가울러 지음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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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기보다 전체를 종합적으로 조망하기를 좋아한다. 이 책은 역사적 예수 연구의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역사적 예수의 옛 연구는 18세기 중반 이성종교의 옹호자였던 ‘라이마루스’에게서 시작되었다.(원조는 따로 있다.) 그는 종교적인 언급을 신중하게 표명해야 하는 시대에 예수의 메시지는 그의 제자들의 메시지와 다르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슈트라우스’는 기적 이야기를 신화라고 주장해 튀빙겐대학교 강사직을 잃었다. ‘르낭’은 동정녀 탄생과 성육신을 부인했다. ‘네자료설’은 마가복음의 우선성을 인정하였다. ‘리츨’과 ‘하르낙’은 기독교의 교리와 역사적 예수를 분리하였다. 그들은 그들만의 예수 상을 만들었다. ‘브레데’는 [메시야 비밀]을 통해 마가복음에서 역사적인 예수를 찾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그는 역사적 예수 연구에 찬물을 끼얹었다. 바이스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메시지는 묵시적이라고 주장했다. 슈바이처는 묵시적 예수 연구의 지지자로 임박한 종말론이 예수님 생애의 전 과정이라고 결론지었다. 슈바이처 이후 역사적 예수 연구는 방법론적으로 불가능하고 신학적으로 불필요하다고 믿었다.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와 예수의 메시지를 분리하여 예수는 메시야라고 주장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그는 역사적 예수 연구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1953년 10월 20일 불트만의 제자인 ‘케제만’은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는 연속성이 있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해 방법론적으로도 가능하고 신학적으로도 필요하다고 강연하였다. ‘푹스’는 예수의 행동과 가르침의 상관관계를 찾아서 예수의 메시지를 파악하자고 제안하였다. ‘보른캄’은 참된 신앙은 역사적 예수 연구에 의존하지 않으며 나사렛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는 연속성이 있다고 동의하였다. ‘콘첼만’은 기독론이 예수님의 메시지의 기본이라고 주장했다. ‘로빈슨’은 역사적 예수 연구는 실재의 예수님을 발견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예레미아스’는 역사적 예수와 부활한 그리스도 사이에는 어느 정도 연속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페린’은 공관복음의 공통자료는 진정한 자료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유, 하나님의 나라 메시지 그리고 주기도는 어느 정도 확실히 재구성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1985년은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있어 중요한 해였다. ‘샌더스’는 어떻게 예수는 유대교 안에 있으면서 유대교와 갈라지는 운동을 했는지에 대해 대답을 시도했으며 ‘예수 세미나’가 발족하였다. 샌더스와 예수 세미나의 결론은 달랐지만 신학적인 토론이 아니라 역사적인 담론을 펼쳤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로버트 펑크’는 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고 출판사와 연구소를 설립하고 ‘예수 세미나’를 소집하여 예수님의 행동이 역사적으로 믿을 만한지 아니면 개연성이 없는지 투표하였다.(빨강, 분홍, 회색, 검정) 그들은 일 년에 두 번씩 모여 투표로 합의점을 찾았다. ‘펑크’는 [예수에게 솔직히]에서 참된 역사적 예수가 기독교 정통주의 신조와 그리스도를 전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정한 비유들에서 역사적 예수 재구성의 토대를 삼았다. 그는 예수님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통치였다고 단언했다. ‘보륵’은 [예수:새로운 시작]에서 역사적 예수는 유대교의 은사적인 흐름 안에 있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는 예수님은 사회, 정치적인 상황에 깊숙이 개입했으며 회복 운동의 창시자로 은사적이고 방랑적인 운동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갱신하고자 했다고 주장했다. 예수 세미나에 대해 칭찬하는 사람도 있지만 조롱과 심지어는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는 그룹도 있다. ‘헤이스’와 ‘존슨’은 예수 세미나 멤버는 일류대에서 가르치는 사람도 없고 학문적인 지위도 두드러지지 않다고 폄하하였다. ‘위더링턴’은 예수 세미나는 다양성이 부족하고 사회과학적인 방법과 컴퓨터 과학을 맹종한다고 비판하였다. 이게 커다란 약점이다. ‘라이트’는 예수 세미나의 학문적인 공헌은 인정하면서 ‘샌더스’같은 학자와 상호교류가 부족하였다고 한탄했으며 그들은 복음서의 극소수의 견해를 주장한다고 지적하였다. 저자는 예수 세미나의 공정한 평가는 ‘마크 포웰’의 [역사의 인물로서의 예수]에 들어있다고 알려준다. 저자는 ‘헤이스’를 비롯한 비판가들의 학문적인 속물근성에 실망을 표시하면서 예수 세미나가 학계에서 흔치 않는 협력 연구를 한다고 높은 점수를 주었다. 역자가 그 이유를 설명한다. 저자는 역사적 예수는 묵시적 예언자였고, 억압받는 사람 편에 선 사회적 경제적 정의의 예언자였다고 이해하며 본서를 집필했다고 알려준다. 역사적 예수 연구는 실재의 예수가 아닌 자기가 그린 예수였다. 채로 돌을 걸러내고 쌀독에 넣듯이 신앙을 파괴하는 급진적인 주장은 배제하고 건전한 퍼즐을 하나씩 조립하여 실재와 가까운 예수 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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