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2:1-3 영적 여정(약속의 언약)

무지개는 빛이 물방울을 비출 때 나타나는 일곱 줄입니다. 무지개가 일곱 빛깔을 가졌듯이 레노바레 운동의 설립자인 리처드 포스터 교수와 그의 제자인 게일 비비 교수는 기독교 역사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곱 가지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들이 지은 [영성을 살다(IVP)]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곱 가지 길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영적 여정으로서의 영성을 다루려고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믿음의 조상들이 어떻게 신앙 생활했는지를 보고 배우면 됩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우리의 역할모델입니다. 믿음의 조상들 중에서 아브라함은 영적 여정의 대명사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를 따라 고향인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던 중에 아버지가 하란에서 돌아가시는 바람에(창11:31-32)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니 그때까지는 아브람이었죠. 하나님은 그런 아브람을 부르셨습니다.(창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나님은 75세인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고향은 땅을 가리키고, 친척은 확대가족을 가리키고, 아버지의 집은 유산을 가리킵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다는 것은 자신의 지위와 재산과 안전을 포기한다는 겁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에게 미래를 맡기고 길을 떠났습니다. 아브람의 영적 여정은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영적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영적 여정을 시작하려면 미래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적 여정을 시작하는 아브람에게 두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첫 번째 약속은 2절을 통해 ‘내가 너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와 두 번째 약속은 3절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다.’ 이었습니다. 이중 첫 번째 약속인 큰 민족을 이루려면 후손이 있어야 하고 그들이 머물 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브람에게는 이때까지 아들도 없었고 땅도 없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망설이지 않고 길을 떠났습니다. 우리도 아브람처럼 순례자입니다. 하나님은 빌립보서 3장 20절을 통해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천국 문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아브람이 식솔들을 이끌고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도착하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12:7)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이제 아브람에게 땅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기뻤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뿐 그 땅에 기근이 들어 도저히 살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순례 길을 가다보면 고난이 찾아오게 됩니다. 아브람은 기근이 든 가나안 땅을 떠나 기름 진 애굽 땅으로 내려갔습니다. 여기서 애굽은 세상이요 가나안 땅은 천국을 상징합니다. 아브람은 애굽에서 아내인 사라를 바로 왕에게 빼앗겼습니다. 우리가 순례 길을 가다 고난이 닥친다고 세상으로 떠나면 우리는 더 큰 환란을 당하게 됩니다. 고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품에 머물러야 피할 길이 열립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가나안으로 올라왔습니다. 아브람은 가나안에 와서 조카인 롯과 분가하기로 결정합니다. 아브람은 롯에게 먼저 땅을 선택할 기회를 줍니다. 보통은 삼촌이 먼저 선택하지만 아브람은 조카에게 양보했습니다. 아브람은 관대했습니다. 롯은 물이 넉넉한 땅을 골랐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사악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롯은 육신의 눈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나중에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아브람은 반대편인 헤브론으로 옮겼습니다. 헤브론은 다윗 왕의 고향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북쪽과 남쪽과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고 하시고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13:15-16)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땅도 주시고 자손도 땅의 티끌만큼 많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렀지만 아브라함은 상속자가 없자 조바심이 나서 종인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아들로 삼으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만류하시고 아브람의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가리키셨습니다.(창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하늘의 별만큼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은 다시 한 번 그 땅을 아브람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이번에는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신다는 표징을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희생제물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양 고전을 보면 백마의 피를 나눠 마시며 의형제를 맺는데 고대 근동에서는 제물을 쪼개고 두 사람이 그 사이로 지나면 약속이 성립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 위에 놓은 쪼갠 고기 사이를 횃불 모양으로 지나셨습니다.(창15:17) 하나님과 아브람과 언약이 비준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제물 위를 하나님 혼자서 지나셨습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 혼자서 지키시겠다는 편무적인 약속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고 땅을 주시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도 우리가 인생을 계획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인도해 주셔야 가능합니다. 우리가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겁니다.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아브람에게 아들이 없었습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미안했는지 애굽 사람 하갈을 첩으로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아브람은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첩으로 맞아들였습니다. 아브람이 86세가 되었을 때에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고 낳은 아들로 오늘날 아랍 국가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와의 불행은 이렇게 태동했습니다. 아브람은 서자인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삼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99세가 되었을 때에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창17:1-2,4-5)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개명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무리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이름을 바꾸는 것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언약의 전제조건으로 완전한 행위를 요구하셨습니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려면 언약을 완전하게 지켜야 했습니다.(창17:2)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심히 번성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고 가나안 온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필수조건으로 할례를 요구하셨습니다.(창17:10-14) 할례를 행해야 영원한 언약이 성립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조건도 없었는데 약속을 믿지 않자 조건이 추가되었습니다. 이제 언약은 쌍무적인 약속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도 지켜야 하고 아브라함도 지켜야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추가하신 완전한 행위는 언약의 윤리적 조건이고 할례는 제의적 조건입니다. 언약이 유지되려면 윤리적으로도 정결하고 종교적으로도 정결해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유지하려면 도덕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의 이름도 사라라고 개명해 주셨습니다.(창17:15-16) 사라는 여주인이라는 뜻입니다.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하나님은 사라가 아들을 낳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사라가 89세니 어찌 아들을 낳을 수 있겠느냐며 비웃었습니다. 사라도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라가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으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이삭은 그가 웃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내년 이맘때 사라가 낳은 이삭의 후손과 영원한 언약을 맺겠다고 다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고 낳은 이스마엘이 아니라 아이를 낳을 수 없던 할머니가 낳은 이삭과 영원한 언약을 맺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해도 하나님에게는 가능합니다. 우리가 하면 어려워도 하나님이 하시면 쉽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요 사라가 90세였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사라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삭이라고 이름을 짓고 낳은 지 팔일 만에 하나님의 명령대로 할례를 행하였습니다.(창21:1-4) 하나님은 이삭에게서 낳은 자라야 아브라함의 씨라고 부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21:12) 언약은 이삭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이삭이 언약의 적자입니다.

이제 이삭이 성장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창22:1-2) “아브라함아,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게 무슨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입니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니요? 이삭을 각을 떠 제단 위에 올려놓고 완전히 태우라니요? 하나님이 이상하신 게 아닙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칼로 내리치려는 순간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 말리셨습니다.(창22:12)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지 이삭을 더 사랑하는지 알고 싶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지 세상을 더 사랑하는지 물으십니다. 아브라함은 뿔이 수풀에 걸린 숫양을 번제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언약을 확증하셨습니다.(창22:16-18)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순종하자 아브라함의 자손을 하늘의 별만큼 바닷가의 모래만큼 번성하게 해 주시고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재차 다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중 첫 번째 약속인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다는 후손과 땅이 있어야 하는데 후손은 이삭이 출생하면서 이루어졌고 땅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점령하면서 실현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약속인 모든 민족이 복을 얻게 하겠다는 약속은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면서 실현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실현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을 선택하여 믿음의 가문을 세우길 바라십니다. 아브라함이 영적인 여정을 완주했듯이 저와 여러분도 영적인 순례를 완주하길 바라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영적인 여정을 완주하므로 가정과 직장과 교회가 번성하고 저와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가정과 직장과 교회가 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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