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1:25-26(1-4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은 한번 태어나서 한번 죽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현세적인 만족을 추구합니다. 인생을 즐기며 살려고 하죠. 그러나 성경은 사람은 한번 태어나서 두 번 죽는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서 9장 27절을 통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육체적으로 한번 태어나면 육체적으로 한번 죽고 또 영적으로도 한 번 죽는다고 말씀합니다. 두 번째 죽음은 유황불이 활활 타오르는 불 못에 던져져 영원토록 밤낮으로 괴로움을 당하는 겁니다.(계20:10) 그러나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육체적으로 한 번만 죽습니다. 성경은 죽음을 잠으로 묘사하는데 잠을 자다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깨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시범 케이스로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성인 남자는 매 년 세 차례(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다.(출23:14)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갈 때마다 동쪽으로 3Km 떨어진 베다니 마을에 들르셨습니다. 베다니 마을에는 오빠 나사로, 언니 마르다, 동생 마리아 삼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나사로가 동생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언니인 마르다는 예수님을 집으로 영접하고 음식을 장만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오빠인 나사로는 하인이 예수님의 발을 물로 닦아주면 예수님의 머리에 감람유를 붓고 볼에 입을 맞추고 포옹을 하고 귀한 손님으로 환영하였습니다. 동생인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정신을 빼놓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삼남매는 예수님을 존경하였고 예수님도 삼남매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인 나사로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빠가 병들었다고 예수님께 전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의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병이라며 오지 않으셨습니다. 나사로는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더운 나라라 시신이 빨리 부패하기 때문에 당일 장을 치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산 중턱에 석회암 바위를 파서 동굴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물로 깨끗이 씻기고 냄새가 나지 않도록 향유를 바르고 천으로 둘둘 감싸고 세마포 수의를 입혔습니다. 동굴 무덤은 맷돌같이 둥근 돌로 굴려서 막고 시루떡을 찔 때 김이 새지 않도록 밀가루로 붙이듯이 점토로 동굴 틈새를 봉인하였습니다. 일 년이 지나 살이 썩으면 무덤 문을 열고 들어가 뼈를 추려서 유골함에 넣고 무덤 벽에 있는 납골당에 넣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일주일 동안 조문을 받았습니다. 상가는 조문하는 것을 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에 조문객들로 북적거렸고, 큰소리로 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에 일당을 받고 우는 사람들로 시끄러웠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째 되는 날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오셨습니다.(요11:17)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삼일 동안 무덤 주위에 머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나사로는 나흘이 지났기 때문에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그동안 의지하며 살던 오빠가 갑자기 죽자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이 조문을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언니인 마르다가 예수님을 영접하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11:21) 마르다는 예수님이 오빠를 살려주시지 않아 못내 아쉬웠습니다. 예수님이 마르다를 위로하셨습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11:23) 예수님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도 오빠가 다시 살아날 거라고 믿었습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11:24) 마르다는 오빠가 나중에 부활할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예수님은 지금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생명과 죽음을 주관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예수님은 부활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아납니다. 예수님은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이신 예수님을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동생인 마리아를 부르셨습니다. 마리아도 아쉬움을 쏟아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11:32) 마리아도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가 우는 모습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우셨는지 아니면 믿음이 없는 자매를 보시고 안타까워서 우셨는지 알 수 없지만 어찌됐든지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11:35) 나사로의 무덤에 이르자 시신 썩는 냄새가 새어나왔습니다. 예수님은 무덤 문을 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는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고 정색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를 보시고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11:40) 물으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르시고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하고 기도하시고,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고 부르셨습니다. (11:43) 사람들은 예수님의 얼굴과 동굴 무덤을 번갈아 바라봤습니다. 죽었던 나사로가 손과 발을 베로 동인 채 걸어 나왔습니다. 나사로는 중국 귀신인 강시가 손을 앞으로 내밀고 콩콩 뛰듯이 손과 발이 묶였기 때문에 깡충깡충 뛰면서 나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고 이르셨습니다.(11:44) 나사로를 풀어주자 썩어서 흐물흐물하던 살결이 건강한 사람처럼 탱탱하게 회복되었습니다.

1. 예수님은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시면서 예수님이 생명과 죽음을 다스리는 권세가 있다고 보여주셨습니다. 사람이 귀로 들어서 얻은 지식은 30%, 눈으로 보고 얻은 지식은 50%, 손으로 만져 보고 얻은 지식은 80%가 기억된다고 합니다.(한국학교발명협회 발명의 길잡이 365일) 예수님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예수님이 부활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아나고 예수님은 생명이기 때문에 살아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보여주셨습니다. 2.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시면서 예수님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예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시어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고전15:20)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죽음이 찾아왔지만 예수님의 순종으로 인해 생명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3.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시면서 우리도 예수님을 믿다가 죽으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 생명의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우리도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어 죽어도 살아나고 영원히 죽지 않는 체험을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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