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6:1-15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4 복음서에는 35 가지의 기적이 나오는데 오병이어의 기적은 4 복음서에 모두 나오는 유일한 기적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만이 모두 나오는 걸로 보아 이 기적은 여러 기적 중에서도 중요한 기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기까지 3 사람이 눈에 띕니다.

첫 번째 사람은 빌립입니다. 예수님은 인기스타였습니다. 인기스타가 가는 곳마다 열성 팬들이 몰려들듯이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큰 무리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이 식사도 못하고 몰려오자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음식을 먹이고 싶어서 빌립에게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5절) 예수님은 빌립이 디베랴 호수(갈릴리 호수) 근처인 벳새다에서 살았기 때문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고 싶으셨습니다. 빌립은 무리들을 둘러보고 사람 수에 빵 값을 곱했습니다. 빌립이 대답했습니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1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200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200 일 품삯입니다. 미국의 NIV 성경은 노동자의 8 달 봉급이라고 말합니다. 주일을 빼면 200 일은 8 달이 됩니다. 빌립은 무리에게 음식을 먹이려면 노동자의 8 달치 봉급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빌립은 그동안 수많은 기적을 목격했으면서도 신앙적으로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빌립은 계산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계산적인 신앙인은 수지타산을 맞춰보고 신앙생활 합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지 불리한 지를 따져보고 신앙생활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숫자를 초월하시는 분입니다. 사사기 6-7 장을 통해 미디안 군대가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습니다. 미디안 군대는 바닷가의 모래알만큼 많았습니다.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우고자 군대를 모집하였더니 3 만 2 천 명이 모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군인이 너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쟁을 하려면 군인이 많아야 유리하잖아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쟁은 숫자가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드온은 3 만 2 천 명 중에서 싸움을 두려워하는 자 2 만 2 천 명을 돌려보냈습니다. 만 명이 남았습니다. 기드온은 무릎을 꿇고서 물을 먹는 자 9 천 7 백 명을 돌려보냈습니다. 3 백 명이 남았습니다. 기드온은 3 백 명의 군인으로 바닷가의 모래알만큼 많은 미디안 군대를 격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군인이 많으면 사람의 힘으로 이긴 줄 알까봐 소수의 군대로 다수의 군대를 격파하시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하였다’라고 자랑하게 만드셨습니다. 신앙은 숫자 놀음이 아닙니다. 계산적인 신앙으로는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안드레입니다. 안드레는 어린아이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와서 말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안드레가 여기까지만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쓸데없는 말을 덧 붙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9절) 안드레는 어린아이를 데려왔지만 사람 수에 비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안드레도 수많은 기적을 목격했으면서도 신앙적으로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안드레는 믿음이 없는 신앙인이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신앙인은 끊임없이 의심하며 신앙생활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지 틀리는지 따져보며 신앙생활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심을 초월하시는 분입니다. 마태복음 14 장을 통해 제자들이 거센 바람과 성난 파도에 휩쓸려 위태롭게 되자 예수님이 물을 밟고 걸어오셨습니다. 베드로는 너무 감격한 나머지 예수님을 보고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오라고 하시자 베드로는 물을 밟고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바람이 불어오자 물속으로 빠지면서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며 나무라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믿음이 생겨 물 위를 걸어갔으나 바람이 볼 때는 의심이 생겨 물속으로 빠져갔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의심하는 자에게 기적을 베풀지 않습니다. 믿는 자에게 기적을 베푸십니다. 기적은 우리의 믿음이란 성냥개비에 하나님의 능력이란 성냥갑이 부딪힐 때 일어납니다. 젖은 성냥개비로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의심하는 신앙으로는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세 번째는 어린아이입니다. 예수님은 배고픈 무리들을 먹이고 싶으셨지만 갑작스럽게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일 돈도 없었고 음식도 없었습니다. 어린아이는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안드레를 통해 예수님께 건네 드렸습니다. 비록 어린아이의 한 끼 식사밖에 안 되지만 예수님이라면 배고픈 무리들을 먹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린아이는 수많은 기적을 목격하고는 신앙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어린아이는 과자 하나를 주면 한 봉지를 사주겠다고 해도 망설이는데 하나가 아닌 한 봉지를 준다는 것은 대단한 결단입니다. 어린아이는 헌신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헌신적인 신앙인은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신앙생활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며 신앙생활 합니다. 하나님은 작은 헌신을 거름으로 삼아 큰 열매를 맺으십니다. 열왕기상 17 장을 통해 이스라엘에 가뭄이 들어 먹을거리가 떨어졌습니다. 가난한 과부는 마지막 식사를 준비하려고 나무를 줍고 있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나타나 마지막 식사를 주면 가뭄이 끊나는 날까지 통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올리브기름이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과부는 마지막 식사를 엘리야에게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통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였고 병의 올리브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과부가 한 끼 식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몇 년 동안 먹을 음식을 주셨습니다.

요즘은 집집마다 상수도가 연결돼 있지만 예전에는 마을에 수동식 우물펌프가 있었습니다. 우물을 길으려면 바가지에 물을 가득 담아 우물펌프에 넣고 펌프질을 하면 공기압력에 의해 우물물이 올라왔습니다. 한 바가지를 부으면 끝도 없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물이 아까워서 한 바가지의 물을 붓지 않는다면 얻을 수 없었습니다. 신앙은 투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 바가지의 물을 부으면 끝도 없이 되돌려 주십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의 도시락을 받아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무리에게 나누어주었더니 성인남자 오천 명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예수님은 남은 조각을 거두고 하셨더니 열 두 바구니나 걷혔습니다. 무리들은 이 기적을 보고 예수님은 세상에 오실 그 선지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라고 생각하고 임금으로 삼으로 했으나 예수님은 혼자서 산으로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 장 35 절을 통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설명하며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에게 나아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는 떡입니다. 우리가 생명의 떡인 예수님께 정성껏 드리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풍성하게 되돌려 주십니다. 차고도 넘치게 되돌려 주십니다. 예수님은 빌립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테스트하셨듯이 우리도 어떻게 대응하는지 테스트하십니다. 우리는 빌립처럼 계산적인 신앙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안드레처럼 믿음 없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작은 것을 드려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하시도록 내어드려야 합니다. 작은 자동차 키가 큰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듯이 우리는 작은 헌신을 통해 하나님이 큰 역사를 이루시는 기폭제가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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