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2:11-22 둘로 하나를 만드사

1.
유대인들은 사람을 유대인과 이방인 이렇게 두 부류로 나눴습니다. 유대인들은 유대인이 아니면 모두다 이방인으로 간주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 가운데 오직 유대인들만을 사랑하신다고 믿었습니다. 선민의식을 가졌습니다. 유대인들이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자부하는 것은 자유였지만 이방인들을 죄인으로 취급하고 경멸하는 것은 문제였습니다. 어떤 유대인은 하나님이 이방인을 만드신 까닭은 지옥의 땔감으로 사용하시려고 만드셨다고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습니다. 또 어떤 유대인은 뱀을 밟아 죽이는 것과 이방인을 죽이는 것은 모두 잘하는 일이라고 섬뜩한 말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의 표시로서 할례를 행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다짐이었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다는 표식이었고, 옛 생활을 청산하겠다는 상징행동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통해 영원히 유대인이 되었다고 인정받았지만 이방인은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고 비난했습니다.

2.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었지만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사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방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선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 밖에 있었고, 하나님의 약속에서 배제됐기 때문에 약속의 언약들에서 외인이었고, 죽음 이후의 삶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소망이 없었고, 많은 신들은 있었지만 한 분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에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었습니다.(엡2:12)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의 사이에 베를린장벽보다도 더 크고, 휴전선보다도 더 무서운 장벽을 쳤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땅의 일에 개입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돌아가심으로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있던 이방인들이 하나님과 가까워졌고, 유대인들과도 멀리 떨어져있던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도 가까워졌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어떻게 멀리 떨어져있던 하나님과 이방인을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깝게 했을까요? 예수님이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무셨기 때문입니다.(엡2:14) 유대교의 성전은 이방인의 뜰, 여인의 뜰, 이스라엘의 뜰, 제사장의 뜰, 성소, 지성소로 구분되었습니다. 이방인의 뜰에는 이방인들이 거기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는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이방인의 뜰과 여인의 뜰 사이에는 헬라어와 라틴어로 “이방인은 성소와 구내를 둘러싼 방책 안에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 누구든지 그렇게 하다가 붙잡히는 자는 죽음을 당해도 자기의 책임이다.” 라는 경고문이 쓰였다고 합니다.(LABC,117쪽) 이방인은 더 이상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들어갔다간 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돌아가심으로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분하는 담이 허물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를 찢어 담을 허무셨습니다.

3.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를 흘리고 돌아가심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르는데 사용된 유대교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엡2:15) 유대인들은 율법을 엄격하게 준수했는데 율법을 준수하기 위해 수천 개의 규칙과 관습과 계율과 법령으로 세분하였습니다. 율법이 너무 세분되다 보니 율법으로 죄를 깨닫게 할 수는 있었지만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는 없었습니다.(롬3:19-20,7:7-13) 수십만의 유대인들 중에서 고작 6천 명 정도의 바리새인들만이 율법을 지킬 수 있었고 나머지는 율법을 지키지 못해 죄의식을 가졌습니다. 율법은 유대인들을 지켜주는 자물쇠가 아니라 유대인들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돌아가심으로 율법을 완전하게 성취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속죄의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의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히7:27) 짐승의 피로로 사람들의 죄를 깨끗하게 씻었는데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는 우리들의 죄를 얼마나 깨끗하게 씻을 수 있었겠습니까?(히9:14)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 완전하게 성취하시고 율법을 완전하게 폐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할례 받은 무리와 할례 받지 않은 무리라는 구분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육체를 화목제물로 내어주셔서 둘로 하나를 만드셨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화평이십니다.(엡2:14) 평화이십니다. 중세시대 설교가인 크리소스톰은 어떤 사람이 은으로 된 상과 납으로 된 상을 사랑으로 녹여 금덩어리를 만들었다고 비유했는데 바로 예수님이 은으로 된 유대인과 납으로 된 이방인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녹여 그리스도인이라는 금덩어리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신하가 왕을 알현하듯이 멀리 떨어졌던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엡2:18)

4.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는 외국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입니다.(엡2:19) 첫째,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우리나라 불법체류자들은 단속반이 나타나면 목숨을 걸고 도망가는데 그러다 다치면 업무상 재해라고 하네요 우리는 예전에는 하늘나라의 불법체류자였으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속죄의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무셨기 때문에 이제는 천국시민권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단속반이 나타나도 도망가지 않고 당당하게 신분증에 보여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터를 잡았고 예수님이란 모퉁잇돌 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엡2:20) 건물은 모퉁잇돌에 정렬하여 모양을 만들듯이 우리는 예수님에게 연결하여 성전을 만들어갑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처소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되었듯이 지상의 교회도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김치가 갖은 양념을 버무려 맞을 내듯이 다양한 사람들을 한데 모아 사랑의 띠를 이루어갑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예전에는 영남과 호남으로 나뉘어 지역갈등을 겪었는데 요즘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이념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여러 조각들을 한데 모아 퍼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 맞추어놓은 퍼즐을 여러 조각으로 흩트리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로는 해방 이후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정신과 배치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만드셨듯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우리 사회를 통합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목숨을 버려 하나로 만드셨는데 우리가 이해관계 때문에 분열시켜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인데 싸웠다고 갈라서야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인데 보기 싫다고 해체해서야하겠습니까? 우리는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서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라 피스 메이커가 돼야 합니다. 분열을 조장하지 말고 단결을 촉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둘을 하나로 만드신 예수님을 본받아 접착제가 물건을 단단하게 붙이듯이 뿔뿔이 흩어진 우리 공동체를 단단하게 연결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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