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0:11-18 나는 선한목자라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은 목자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시23:1,77:20,79:13,95:7,100:3,사40:11,겔34:11-31)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가 많이 내리는 서쪽의 농경지에서는 농사를 지었고,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동쪽의 광야에서는 목축을 하였습니다. 10월 초막절이 지나고 우기가 되어 풀이 파릇파릇 돋아나면 남자들은 양떼를 이끌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광야에서부터 풀을 뜯기기 시작하여 점차 집으로 가까이 오면 여자들이 넘겨받았습니다. 이삭의 아내 라헬(창29:10)도 모세의 아내 십보라(출2:16)도 양떼를 쳤습니다. 이때쯤 4월 유월절이 지나고 건기가 시작되는데 남자들은 밭으로 나가 보리와 밀을 추수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도 치고 농사도 짓고 투잡(two job)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해가 뜨면 양떼를 이끌고 푸른 풀밭으로 나갔습니다. 양떼는 고개를 쳐 박고 부지런히 풀을 뜯었습니다. 목이 마르면 시냇물로 데려갔습니다. 양떼는 혀를 날름거리며 목을 축였습니다. 저녁이 되면 목자들은 양떼를 이끌고 우릿간으로 들어갔습니다. 목자들은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지거나 들짐승이 나타나거나 도둑이 들어올까 봐 동굴을 우릿간으로 사용하거나 아니면 돌이나 나뭇가지로 담을 두르고 담 위에 가시를 올려놓고 임시로 우릿간을 만들었습니다. 목자들은 이마트 포항 이동점에 가보면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구석구석에 CCTV를 설치했듯이 낮에는 양떼를 풀어놓았기 때문에 들짐승이 물어갈까 봐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살폈고, 밤에는 도둑이 훔쳐갈까 봐 양떼를 우릿간에 몰아넣고 입구에서 선잠을 잤습니다. 야곱은 외삼촌의 양떼를 지키기 위해 낮에는 더위에 허덕였고 밤에는 추위에 떨면서 눈 붙일 겨를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창31:40) 이스라엘의 목자는 모두가 피하는 3D 업종이었습니다. 'Dangerous(위험한)','Difficult(어려운)', 'Dirty(지저분한)' 위험하고 어렵고 지저분한 직업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자는 최하층 민에 속했습니다.

목자들은 한 사람 당 양 30에서 75마리를 돌볼 수 있었기 때문에 욥처럼 양이 칠천 마리나 되고(욥1:3) 나발처럼 양이 삼천 마리나 되는(삼상25:2) 주인들은 삯꾼 목자들을 고용했습니다. 양을 치기가 너무 힘들고 위험하고 지루하고 지겹다 보니 주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20%의 손실을 각오하고 삯꾼 목자들에게 양떼를 맡겼습니다. 삯꾼 목자들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애착을 가지고 양떼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삯꾼 목자들 때문에 목자를 거지나 도둑같이 멸시하였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목자는 목자인데 삯군 목자가 아니라 ‘선한 목자’이십니다. 선한 목자와 삯꾼 목자는 달랐습니다. 무엇이 달랐을까요?

첫째,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아십니다.(요10:14) 목자들은 밤이 되면 양떼를 한 우릿간에 집어넣고 교대로 문을 지켰습니다. 그러다 보니 양떼가 섞였습니다. 아침이 되면 목자들은 양떼를 향하여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양떼는 자기 목자의 휘파람 소리를 알아듣고 문밖으로 따라나섰습니다. 목자는 자기 양을 알아보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선한 목자가 양을 알고 양이 목자를 알듯이 하나님도 예수님을 아셨고 예수님도 하나님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아십니다. 하나님은 마태복음 10장 31절을 통해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어두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속속들이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의 기도 제목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서 4장 6절을 통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몰라 망하게 되었다고 탄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아시듯이 우리도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둘째, 선한 목자는 양의 문으로 드나듭니다.(요10:7,9) 우리나라 속담에 ‘열 사람이 지켜도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고 합니다. 목자들이 교대로 입구를 지켜도 도둑을 막지 못했습니다. 도둑은 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구렁이가 담을 넘어오듯이 돌로 만든 담을 몰래 넘어오거나, 뱀이 나뭇가지 사이로 기어 다니듯이 나뭇가지 사이를 살며시 헤치고 들어왔습니다. 도둑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들어왔습니다.(요10:10) 그러나 예수님은 양의 문입니다.(요10:7) 양이 다니는 문입니다. 담을 통해 우릿간 밖으로 옮겨지는 양떼는 멸망을 받고 죽게 되지만 양의 문을 통해 우릿간으로 들어오는 양떼는 구원을 받고 들어오고 나가고 꼴을 얻습니다.(요10:9) 하나님은 요한복음 14장 6절을 통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수많은 길 중에 하나의 길이 아니라 오직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길입니다. 양이 문을 통해 드나들어야 살 수 있듯이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풍성하게 주십니다.(요10:10)

셋째,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희생합니다.(요10:11,15,17,18) 삯꾼 목자는 양이 무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탈진하면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하기 일쑤였습니다. 들짐승이 나타나면 막대기로 맞서 싸우지 않고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도둑이 우릿간을 뚫고 들어오면 적당히 훔쳐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양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요10:11)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보다 양떼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상 17장을 통해 다윗은 아버지의 양떼를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나타나서 새끼 양을 물어 가면 뒤따라가서 사자와 곰을 쳐 죽이고 새끼를 구해주었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선한목자가 양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4번이나 말씀합니다.(요10:11,15,17,18) 이것이 선한 목자와 삯군 목자의 진정한 차이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5장 8절을 통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대신 돌아가셨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사람은 혹시 있을지 모르지만 죄인을 위하여 죽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에베소서 5장 2절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희생하셨으니 우리도 서로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자녀가 철이 들면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듯이 교인도 신앙이 깊어지면 나를 아시고 나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시고 나를 위해 희생해주신 예수님을 본받아 서로를 위해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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