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1-8 주의 길을 준비하라

요한이 등장하였다.
저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세례자 요한을 가장 좋아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세례 요한이라 부르지만 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에는 세례자 요한이라고 나옵니다. 세례를 주는 사람 요한이라는 뜻이죠. 제가 요한을 좋아하는 이유는 요한이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했듯이, 저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만에 등장한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자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렸습니다. 우리도 예배를 참석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갈급해 지잖아요? 유대 백성들은 죄를 지적해주고 바른 길로 인도해줄 선지자를 고대했습니다. 그때 요한이 유대 광야에 등장했습니다.(유대 광야는 사막이라기보다는 사람이 살지 않는 외진 곳입니다.) 요한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엘리야 선지자를 연상시켰습니다.(왕하1:8) 요한은 낙타털로 짠 거친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옷이 내려가지 않도록 가죽 띠를 띠었습니다./ 메뚜기를 구워 먹고 광야에서 흔한 석청(야생 들꿀)을 채취해서 먹었습니다.(막1:6) /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요 삼아 길에서 잠 잤습니다./ 요한의 행색은 초라했지만 눈은 사막의 태양처럼 이글거렸고 입에서는 폭포수와 같은 말씀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요한은 회개를 설교하였다.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고 설교하였습니다. 요한의 설교는 잔잔한 물가에 떨어진 바위가 물을 뒤집어 놓듯이, 말씀에 굶주려 있는 유대 백성들의 영혼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요한이 설교한 ‘회개’는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겁니다.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니요? 유대 백성들은 입으로 하나님을 믿었지 행동으로는 떠나 살았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언행심사’란 화살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라는 과녁에 쏘았을 때 자꾸만 빗나갔습니다.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과 생각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떨까요? 오늘날의 교인들도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행동으로는 세상을 향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세상에서는 맘몬(돈)을 할아버지로 여기고 살아갑니다. 교회에서만 교인이지 세상에서는 이방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의 사회적 신인도가 C_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요한이 유대 백성들에게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회개하라고 촉구했듯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회개하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고 설교하였다.
요한의 설교를 듣고 유대 백성들은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요한에게 나아가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막1:5)(유대광야에서 요단강까지는 가깝습니다.) 이방인이 유대인이 되려면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듯이, 요한은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은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서 세례를 받으려고 나왔습니다.(마3:7) 요한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교활하고 가증스럽다고 비난했습니다. 오늘날은 어떨까요? 유대 백성들이 회개했듯이 오늘날의 새 교인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앙생활을 잘 하려고 하지만,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이 회개하지 않고 세례를 받으려하였듯이 기존 교인들은 자기 신앙의 필터로 말씀을 걸러서 듣다보니 신앙이 정체되어 버렸습니다. 말씀을 편식하다보니 영양실조에 걸렸습니다. 신앙은 유기체와 같아서 자라지 않으면 문제가 일어납니다. 물은 흘러야지 고여 있으면 썩어버립니다.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교인들을 보십시오. 새 교인이 아니라 기존 교인들입니다. 목사님과 장로님입니다. 요한은 회개하지 않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고 선포하였습니다.(마3:8) 회개한 증거를 보여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입으로는 회개하고 행동으로는 회개한 증거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요한이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고 설교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요한이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고 설교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분(예수 그리스도)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그분이 오실 길을 준비하는 전령이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왕이 행차하려면 전령이 앞서가서 길을 평평하게 닦았습니다. 그렇듯이 요한은 오실 그분을 맞이하기 위해서 영적이고 도덕적인 타락상을 회개시키려 하였습니다. 요한은 자신과 그분을 비교했습니다. 요한은 자신은 천한 종이고 오실 그분은 귀한 주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막1:7하) 천한 종은 주인의 신발 끈을 푸르고 발을 닦아주었지만, 요한은 오실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겸손해 했습니다./ 요한은 자신은 조연이고 오실 그분이 주연이라고 증언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막1:8) 요한은 회개의 물세례를 베풀었지만, 오실 그분은 구원의 성령과 불세례를 베푸실 능력이 많으신 분이라고 높여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유대 백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요한이 회개하라고 목청을 높였지만 대부분의 유대 백성들은 외면했습니다. 이제 그분이 다시 오십니다. 그분이 다시 오시면 심판을 하십니다. 요한은 심판을 ‘나무뿌리에 놓여있는 도끼’와 ‘손에 들고 있는 키’에 비유하였습니다.(마3:10-12) 농부가 도끼를 들고 과수원에 갑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는 그대로 두고,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는 찍어서 불에 던져버립니다.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를 땅만 버리기 때문입니다./ 농부의 아내가 키를 들고 타작마당으로 갑니다. 키질을 하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워버리기 위해섭니다. 쭉정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곳간은 천국을 상징하고, 불은 지옥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농부가 도끼로 좋은 열매 맺는 나무와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로 나누듯이, 농부의 아내가 키로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듯이 심판을 하십니다. 우리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면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잘라 버릴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바람에 날리는 쭉정이라면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불에 태워 버릴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신약성경을 통해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재림 불감증에 걸렸는지도 모릅니다. 안전 불감증에 걸리면 사고가 일어나듯이 재림 불감증에 걸리면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하게 됩니다. 지금은 대강절입니다.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신랑을 신부처럼 정결하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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