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5:21-28 네 소원대로 되리라.

부모는 자식을 끔찍이도 사랑합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찬가지죠. 토종 우렁이는 새끼를 유별나게 사랑한다고 합니다. 토종 우렁이 어미는 몸속에다 알을 낳습니다. 외래종 왕 우렁이는 몸 밖에다 알을 낳죠. 새끼들은 어미의 살을 파먹으며 성장합니다. 새끼들이 살을 한 점도 남김없이 파먹으면 어미는 빈 껍질이 되어 흐르는 물 위로 둥둥 떠다닙니다. 새끼들은 물 위를 떠다니는 어미를 보며 ‘우리 엄마 시집간다.’고 놀려댄다고 합니다./ 옴두꺼비는 알을 품게 되면 평소에는 피해 다니던 독사에게 일부러 찾아가 싸움을 한다고 합니다. 옴두꺼비 어미는 죽을힘을 다해 독사와 싸웁니다. 어미두꺼비는 치열한 싸움 끝에 독사에게 잡아먹히고 맙니다. 어미두꺼비는 죽어가면서 독사의 뱃속에서 독을 뿜어냅니다. 어미두꺼비는 독사에게 잡아 먹혀서 죽고 독사는 어미두꺼비가 뿜은 독에 의해 죽게 됩니다. 어미두꺼비는 죽으면서 독사의 뱃속에다 알을 낳습니다. 새끼들은 죽은 독사의 살을 뜯어먹으려 튼튼하게 자랍니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라는 ‘두꺼비집’ 노래는 옴두꺼비의 이야기로부터 유래했다고 합니다. 헌집은 자신의 몸을 희생한 어미두꺼비를 뜻하는 말이고, 새집은 새롭게 태어난 새끼들을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토종 우렁이와 옴두꺼비는 모성애가 강한 생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토종 우렁이와 옴두꺼비처럼 자식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모든 어머니가 그렇죠. 어머니는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 두로와 시돈 지방에 살았습니다. 두로와 시돈 지방은 항구도시로 해상무역이 발달하여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어머니는 경제적으로는 넉넉했으나 가정적으로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고치기 위해서 모든 수고를 다했습니다. 어머니는 귀신을 쫓아낸다는 신령한 무당들을 찾아갔으나 어떤 무당도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몸이 약한가 싶어서 온갖 보약을 달여 먹였으나 어떤 보약도 몸을 회복시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딸은 상태가 악화되어 눈이 허옇게 뒤집히면서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어머니는 곱디고운 딸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 때마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어머니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딸을 고치고 싶었습니다. 딸을 고쳐주는 사람에게는 재산의 절반이라도 나눠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딸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낙심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오셨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도 고치도 죽은 자도 살렸습니다. 어머니는 당연히 예수님에게 찾아갔습니다. 어머니가 딸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에게 찾아갔듯이 우리도 자녀들의 장래를 위하여 예수님에게 찾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모습을 보고 소리쳤습니다.(22절)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어머니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메시야라고 불렀습니다. 어머니는 이방인이지만 유대교로 개종한 모양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걸어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며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짜증을 냈습니다.(23절 하반 절)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제자들은 어머니를 돌려보내라고 요청했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이었고 어머니는 이방인인지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유대인이 경멸하는 가나안 여자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24절)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예수님은 먼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애가 탔습니다. 딸은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는데 제자들은 돌아가라고 짜증을 내고 예수님은 외면하시니 말입니다. 어머니는 예수님에게 절을 하며 간청했습니다.(25절) “주여, 저를 도우소서.” 어머니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찾아간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당장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심사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는 게 좋은지 거절하는 게 좋은지, 지금 들어주는 게 좋은지 나중에 들어주는 게 좋은지 판단하십니다. 저울로 물건을 달아보듯이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달아보십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의 믿음을 테스트하셨습니다.(26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은 자녀들이 먹는 떡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자녀들은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떡을 먹이는 것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을 가리킵니다. 개들은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유대인은 이방인을 개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개’라는 단어는 썩은 고기를 먹는 지저분한 개가 아니라 집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애완동물을 가리킵니다. 공동번역에는 강아지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바쁘니 이방인을 도울 수 없다고 정중하게 거절하셨습니다. 만약 어머니가 성미가 급하다면 팔을 걷어 부치고 예수님께 대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존심이 세다면 싫으면 관두라고 돌아섰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성질을 죽이고 자존심을 꺾었습니다. 어머니는 지혜롭게 대답했습니다.(27절)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어머니는 자녀들이 떡을 먹다가 부스러기를 개들에게 던져준다고 언급했습니다. 어머니는 부모가 자녀에게 떡을 주듯이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쳐야 하지만 자녀들이 남은 부스러기를 개들에게 던져주듯이 남은 시간에 딸을 고쳐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어머니를 칭찬하셨습니다.(28절)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예수님은 마가복음 7장 29절을 통해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라고 치유선언을 하셨습니다. 딸은 예수님이 병이 나았다는 말씀과 동시에 깨끗이 나았습니다. 어머니가 집에 돌아가 보니 악마의 얼굴처럼 어둡던 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환해졌습니다. 귀신들린 딸은 어머니의 믿음으로 치유되었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위한 기도제목이 있으면 예수님께 찾아가고 찾아갔으면 응답해 주실 때까지 간청해야 합니다. 악한 재판관도 뇌물을 주지 않는 가난한 과부의 간청을 귀찮아서라도 들어주는데 하물며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시겠습니까?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독일의 유명한 가톨릭 신학자인 한스 큉 교수는 기독교 역사를 보면 일곱 명의 위대한 사상가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 사람은 사도 바울이고 두 번째 사람은 오리겐이고 세 번째 사람은 어거스틴입니다. 세계사에는 아우구스티누스라고 나옵니다. 두뇌가 명석한 어거스틴은 로마에 가서 공부하길 바랐으나 어머니는 아들이 방탕한 도시에서 타락할까봐 만류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은 어머니를 속이고 로마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어머니는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천한 여인과 사귀더니 17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눈물로 이불을 적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머니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어거스틴은 33세에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어거스틴은 그 다음해 4월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세례를 받은 해 11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사상가가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이단에 의해 흔들렸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가 없었다면 기독교는 흔들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이 있었기 때문에 아니 모니카가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는 온전히 보전될 수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는 자녀를 살립니다. 자녀가 살아나면 세상도 살아납니다. 우리 기도를 통하여 자녀들의 육체와 영혼을 살리는 어머니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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