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4:22-33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아들은 아버지를 보고 자랍니다. 아버지가 손재주가 좋으면 아들도 손재주가 좋아요. 딸은 어머니를 보고 자랍니다. 어머니가 살림을 잘하면 딸도 살림을 잘하죠. 사위를 맞으려면 바깥사돈을 보십시오. 사위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며느리를 알아보려면 안사돈을 보십시오. 며느리의 씀씀이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부모님이 1차 대상입니다. 그렇다면 교인의 1차 대상은 누구일까요? 예수님입니다. 사람이 부모님을 보고 자라듯이 우리는 예수님을 보고 신앙 생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사람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조용한 장소에 가서 하루를 계획하면서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마가복음 1장 35절을 통해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라고 말씀합니다. 기도는 하루를 여는 열쇠입니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예수님은 사역을 마치고 나서 조용한 산에 올라가 하루를 마감하면서 기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3절 하반 절을 통해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기도는 하루를 닫는 자물쇠입니다.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십시오.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도 기도하셨고 마치고 나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새벽에도 기도하셨고 저녁에도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는 원천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어야 에너지를 공급받듯이 교인은 기도를 해야 하나님의 능력을 받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헤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은 배에 태워서 갈릴리 호수 건너편 마을로 보내시고 혼자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23절) 갈릴리 호수는 포스코가 포항을 먹여 살리듯이 갈릴리 사람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갈릴리 호수에는 10여종의 물고기가 서식했고 3백 척의 고기잡이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릴리 호수는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파도를 일으켰습니다. 오후 4-5시가 가장 심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바람이 잔잔한 저녁 시간에 고기잡이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날따라 저녁에 바람이 불었습니다. 제자들은 배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돛을 접었습니다. 바람이 불자 이번에는 파도가 일었습니다. 집채만 한 파도가 배를 강타했습니다. 제자들은 파도에 휩쓸러 가지 않으려고 난간을 붙잡았습니다. 배는 바람이 부는 대로 파도가 치는 대로 물위에 떠있는 낙엽처럼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렸습니다. 제자들은 음식을 게워내며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예수님은 산에서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의 고난을 보셨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헤아립니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25절) 예수님이 고난당하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시듯이 우리가 고난당할 때도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듯이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고난의 현장으로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시편 121편 5-7절을 통해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 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불볕더위 속에서 그늘이 되셔서 낮의 해가 우리를 상하게 하지 않고 밤의 달도 우리를 해치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환난에서 우리를 지키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도와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도와주러 찾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은 거센 바람과 성난 파도에 맞서 밤새도록 사투를 벌이다 탈진하여 쓰러졌습니다. 밤 사경(새벽 3-6시 사이) 이었습니다. 저쪽에서 검은 그림자가 터벅터벅 물 위를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이라고 지레짐작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시러 오셨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거부했듯이 예수님은 제자들을 도와주시려고 찾아오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안심시켰습니다.(27절)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예수님은 공황상태에 빠진 제자들을 나무라지 않고 안심시키셨습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나니’입니다.(에고 에이미) 이 말씀은 ‘나다.’, ‘나 여호와가 여기에 있다.’는 말씀입니다.(출3:14, 사4:14,43:10,52:6) 어린아이가 깜깜한 밤에 혼자서 길을 걷는다면 공포에 사로잡히겠지만 저쪽에서 ‘엄마야’하고 엄마가 온다면 안심하듯이 예수님은 겁에 질려있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시어 ‘나다’하고 안심을 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믿음이 있는 없는 듯 하였습니다. 믿음의 널뛰기를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죽는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찾아오시자 너무나 감격했습니다.(28절)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셨듯이 자신도 물 위를 걷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기개를 보시고 “오라.” 하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보면서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떼듯이 한 발짝 한 발짝 발을 내디뎠습니다. 베드로는 최초로 물 위를 걸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베드로가 자신의 능력으로 물 위를 걸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라 하시자 물 위를 걸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능력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 걸어가다가 바람이 불어오자 덜컥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물 위를 걷다니 이건 말도 안 돼. 아직도 예수님하고는 한참 떨어졌는데 혹시 물에 빠지면 어떻게 하지.’ 베드로가 의심하자 발이 물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의심은 기적을 방해하는 훼방꾼입니다. 베드로는 비명을 질렀습니다.(30절)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베드로는 방금 전 물 위를 걸었던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울부짖었습니다. 베드로는 믿음의 널뛰기를 하였습니다.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였다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였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믿음이 상승했다 하강했다 를 반복합니다. 예수님이 쏜살같이 달려와 베드로의 손을 붙잡으시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31절)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예수님은 베드로의 의심이 아쉬우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물 위를 걷듯이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환경을 바라볼 때는 물 아래로 잠기듯이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베드로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졌듯이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부정적으로 보면 인생이 불행합니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보면 행복합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길이 보입니다. 우리가 기도한다면 환경이 바뀌지 않더라도 생각이 바뀝니다. 우리의 생각이 바뀔 때 덩달아서 환경도 바뀝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암담한 현실을 보지 마시고 희망찬 새날을 바라보십시오. 답답한 상황을 불평하지 마시고 찬란한 미래를 설계해 보십시오.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달라질 겁니다. 저와 여러분은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보므로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체험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