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9:9-13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일제 강점기에 일본 헌병을 도와 우리나라 사람들을 탄압하는 헌병보조원이 있었습니다. 일제는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헌병보조원을 선발해 우리나라 독립 운동가를 색출하고 고문하게 만들었습니다. 동족이 동족을 핍박하는 악랄한 제도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헌병보조원을 매국노라고 증오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로마제국으로부터 세금을 징수하는 권한을 받은 세리가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은 유대인 중에서 세리를 선발해 유대인에게 통행세와 주민세를 거두게 하였습니다. 동족이 동족을 착취하는 무서운 제도였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세리를 율법을 지키지 않는 죄인이라고 혐오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세리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마태입니다. 마가복음 2장 14절과 누가복음 5장 27절에는 레위라고 나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은 유대식 이름과 로마식 이름이 있었습니다. 레위는 유대식 이름이고, 마태는 로마식 이름입니다. 마태는 가버나움 세관의 세리였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서북쪽 연안에 있는 번화한 도시였습니다. 가버나움에는 아름다운 유대교 회당이 있었고, 로마 군대가 주둔했습니다.(막8:5-8, 눅7:1-10) 마태는 가버나움 북동쪽의 다메섹과 서쪽의 지중해 사이를 왕래하는 상인들에게 통행세를 받았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주민세를 거뒀습니다. 가버나움 세관은 알짜배기 세관이었습니다. 마태는 유대인에게 세금을 거둬들여 로마인에게 바치고 나머지는 자신이 챙겼습니다. 이익이 많이 남는 장사였습니다. 마태는 비록 유대인들에게 죄인이라고 배척을 받았지만 재산을 불리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마태에게는 돈이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그런 마태의 인생에 예수님이 등장하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인 나사렛을 떠나 번화한 도시인 가버나움에서 주로 활동하셨습니다.(마4:13) 예수님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셨고(막1:21, 눅1:31), 가버나움에서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셨고(막1:21~28, 눅4:31~37), 열병으로 앓아누운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셨고 다른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셨고(막1:29~34, 마8:14~17, 눅 4:38~41), 문둥병자를 고쳐주셨고(막1:40~45, 눅5:12~16, 마8:1~4), 네 사람에게 메워온 중풍병자를 고쳐주셨고(막2:1~12, 눅5:17~26, 마9:1~8), 오른손 마른 자를 고쳐주셨고(눅6:6~11, 마12:9~14, 막3:1~6), 열두 해를 혈루 증으로 고생한 여인을 고쳐주셨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셨고(막5:21~43, 눅8:40~56, 마9:18~26), 로마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셨고(마 8:5~13, 눅 7:1~10),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후 무리들에게 생명의 떡과 영생에 관해서 말씀하셨습니다(요 6:24~71).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많이 가르치시고, 많은 권능을 일으키시다 보니 ‘본 동네(자기 동네)’라고 불렸습니다.(마9;1) 예수님은 가버나움을 드나들면서 세관공무원인 마태를 유심히 지켜보셨고, 마태도 세관에 앉아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사이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존경을 받아 사람들을 몰고 다녔지만 마태는 율법을 범하는 죄인으로 낙인을 찍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태는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버림을 받았고 심지어 유대교 회당에서도 추방을 당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일으키는 기적을 눈으로 보고 싶었지만 유대인들의 손가락질이 싫어서 근처를 얼씬도 하지 못하고 대신 금고를 열고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돈다발을 세어 보고 값비싼 포도주를 마시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혈루 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은 사람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 예수님의 겉옷 가를 만지고 병을 고쳤지만 마태는 주변의 눈총이 싫어서 세관에 틀어박혔습니다. 마태가 예수님을 찾아가지 않자 예수님이 마태를 찾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에게는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습니다.(마9:6) 마태는 장부정리를 하다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를 보시고 단 두 마디를 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마9:9) 예수님은 마태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초청하시지 않고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마태는 갑작스런 명령에 당황하였지만 누군가 자신을 불러주기를 바라기나한 듯이 즉시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마태는 갑작스런 명령에 즉각적인 순종으로 화답했습니다. 마태의 순종은 다른 제자들의 순종과 달랐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단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마4:20) 재산상의 손해가 적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따랐습니다.(마4:22) 유산을 포기한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힘들게 고기를 잡지 않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언제든지 바닷가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마태가 세관을 떠난다면 다시 복직하기 어려웠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하늘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찾아오셨기 때문에 우리도 신앙의 걸림돌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마태를 제자로 받아주시자 마태는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선생님을 집으로 초청하여 음식을 대접하고 말씀을 듣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만 초청한 게 아니라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버림을 받은 다른 죄인들도 초청하였습니다. 마태의 널따란 집에는 세리와 죄인들로 가득 찼습니다. 복음서(특히 누가복음)를 보면 예수님이 식탁에서 교제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음식을 함께 먹던지 잠을 함께 자던지 하면 친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며 교제하셨습니다. 그러자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아니 율법을 해석한 ‘규칙들’을 율법만큼이나 엄격하게 지키는 바리새인들이 발끈했습니다.(마9:11)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바리새인들은 죄인들과 어울리면 죄가 전염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죄가 전염되었을까봐 손을 씻고 음식을 먹었고, 죄인들과 접촉했을까봐 시장에 다녀와서 목욕을 하고 음식을 먹었고, 죄로 오염됐을까봐 잔과 주발과 놋그릇과 침상 등을 씻었습니다.(막7;3-4) 바리새인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율법을 해석한 규칙들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속담을 인용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건강한 사람들은 병원을 찾지 않고 병든 사람들이 찾듯이, 자신을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지만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회개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병원을 찾아간 사람들이 병을 고치듯이, 회개한 사람들이 용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사람보다,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가슴을 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기계적으로 드리는 예배보다 부단히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미국 침례교의 목사이자 사회학자인 토니 캠폴로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목사님이 지은 책 중에 [하나님 나라는 파티입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캠폴로 목사님이 하와이에 강의가 있어 갔다가 시차 때문에 새벽 3시에 깨어났습니다. 자기 집에서는 그 시간이 식사할 시간이었지만 하와이 시간으로는 새벽이었습니다. 캠폴로 목사님은 식당을 찾다가 허름한 식당을 발견하였습니다. 음식을 시켜먹는데 여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왔습니다. 거리의 여자들이었습니다. 여자들은 큰 소리로 떠들어댔습니다. 그 여자 중에 한 여자가 내일이 자신의 39번째 생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여자는 자신들 처지에 생일이 가당키나 하냐고 면막을 주었습니다. 여자들은 서로 싸우다가 나갔습니다. 캠폴로 목사님은 주인에게 저 사람들이 매일 오냐고 물었고 주인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캠폴로 목사님은 저 사람을 위해 생일파티를 열어주자고 제안했고 주인은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다음 날 캠폴로 목사님은 생일카드를 쓰고 식당을 장식하고 호놀룰루의 창녀들을 초대했습니다. 3시 30분이 되자 아그네스와 친구들이 들어왔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캠폴로 목사님과 다른 사람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자 아그네스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인이 케이크를 자르라고 권하자 아그네스는 케이크를 당분간 보관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아그네스는 케이크를 마치 성물인양 가져갔고 주위가 조용해지자 캠폴로 목사님이 기도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캠폴로 목사님은 아그네스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주인은 어느 교파의 목사냐고 삐딱하게 물었습니다. 캠폴로 목사님은 “저는 새벽 3시 30분에 창녀들을 위해 생일 파티를 열어 줄 수 있는 교파에 속해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주인은 코웃음을 치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그런 교회는 없소. 만약 그런 교회가 있다면 내가 진작 그런 교회를 다녔을 거요. 정말 그런 교회가 있다면 나는 그런 교회에 다니고 싶단 말이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들은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 배기량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교인 수와 교회 재정에 따라 사람을 차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죄인들과 식사를 하셨듯이 천국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어울려 식사를 나눌 겁니다. 하나님 나라는 의인이나 죄인이나 차별하지 않습니다. 손님이나 거지나 똑같이 대우합니다. 우리는 바리새인처럼 죄인을 정죄하지 않고 예수님처럼 죄인을 품어줘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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