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 4:7-12 5가지 사랑의 언어
미국의 저명한 상담심리학자인 게리 채프먼 박사는 결혼과 가정에 관하여 30년 동안 상담하면서 5가지 사랑의 언어를 발견하였습니다. 사랑의 언어가 다양하다 보니 내가 기대하는 사랑의 언어와 상대방이 표현하는 사랑의 언어가 달랐습니다.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더라도 내가 표현하는 사랑의 언어가 상대방이 기대하는 사랑의 언어와 다르면 상대방은 나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사랑의 엇박자가 나다보면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이 사랑의 언어를 이해하고 상대방에게 맞는 사랑의 언어로 표현하기를 바라며 오늘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첫 번째 사랑의 언어는 ‘인정하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정하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예를 들어 “참 잘 했어요.” “옷이 잘 어울리네요.” “음식 맛이 너무 좋아요.” “도와줘서 고마워요.” 인정하는 말은 그 사람의 행동이나 외모나 성격을 칭찬하는 겁니다. 인정하는 말을 사랑의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들으면 행복해 합니다. 예수님도 인정하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마가복음 5장 34절을 통해 ‘혈루증-하혈병-생리불순’을 앓는 여인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 지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부정한 여인을 딸이라고 인정해 주었고, 옷깃을 만진 행동을 믿음이라고 칭찬해 주었고, 12년 동안 고통 받던 여인에게 건강하게 살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인정하는 말을 듣고 여인은 육신의 질병을 고쳤고 마음의 상처도 고쳤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잖습니까. 우리도 상대방에게 핀잔하는 말 보다는 인정하는 말을 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 사랑의 언어는 ‘친밀한 시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친밀한 시간을 가질 때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는 아빠가 치킨을 사줄 때 보다 함께 놀 때에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런 아이에게는 용돈을 주기보다는 축구공을 가지고 운동장으로 가는 것이 낫습니다. 어떤 아내는 남편이 빨래를 해줄 때 보다는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에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런 아내에게는 설거지를 거들어주기 보다는 클래식을 켜놓고 카푸치노를 마시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친밀한 시간은 다른 데 신경 쓰지 않고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겁니다. 친밀한 시간을 사랑의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행복해 합니다. 예수님도 친밀한 시간을 중요시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 41-42절을 통해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갑자기 방문하시자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였습니다. 봉사에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었습니다. 친밀한 시간에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예수님은 음식 준비에 바쁜 마르다를 이해하셨지만 말씀을 들으려는 마리아를 두둔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봉사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친밀한 시간은 더 중요하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세 번째 사랑의 언어는 ‘선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선물로 담아줍니다. 선물을 사랑의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선물의 값어치가 아니라 선물 자체에 의미를 둡니다. 선물을 사랑의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값싼 선물을 주더라도 기쁘게 받으십시오. 그 사람은 선물을 주면서 사랑도 주기 때문입니다. 만약 값싼 선물이라고 인상을 찌푸린다면 그 사람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우리 여호수아는 지금 부모님이 나를 사랑한다면 휴대폰을 사주 세요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선물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 11-13절을 통해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악한 아버지라도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면 생선이 없다고 물뱀을 주지 않고, 아들이 계란을 달라고 하면 계란이 없다고 독침이 있는 전갈을 주지 않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달라고 구하면 좋은 선물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은 성령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현세적인 선물보다는 성령님을 선물로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님도 주시고 물질적인 선물도 주십니다.
네 번째 사랑의 언어는 ‘봉사’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합니다. 어떤 아내들은 남편들이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롯데 백화점 상품권을 선물하기보다 설거지를 해주거나 방 청소를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어떤 남편들은 아내들이 연봉을 많이 받는다고 자랑하기보다 정성이 담긴 아침식사를 차려주기를 기대합니다. 서양속담에 “말보다 행동이 훨씬 더 웅변적이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해 보십시오. 예수님도 봉사의 중요성을 언급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 36-37절을 통해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짐을 뺏기고 죽을 정도로 맞았을 때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 사람을 피해갔지만, 사마리아인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그의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천으로 상처를 싸매고 짐승에 태워서 주막으로 데려가 돌보아 주고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주고 그 사람을 돌봐 달라고 부탁하고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올 때에 갚아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존경하던 종교지도자들은 강도만난 사람을 외면했지만 유대인들이 멸시하던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난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사람에게 헌신했듯이 우리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섯 번째 사랑의 언어는 ‘신체적 접촉’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스킨십을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값비싼 물건을 주었을 때보다 상대방의 체온을 느꼈을 때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어린이들은 부모님의 따뜻한 품안에서 반듯하게 자랍니다. 청소년들은 부모님의 손길을 피하면서도 그리워합니다. 청년들은 몸을 부대끼면서 우정을 쌓아갑니다. 부부들은 성관계를 통하여 ‘남’에서 ‘님’으로 발전합니다. 예수님도 신체적인 접촉을 가지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3절을 통해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병에 걸려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기 위해서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고 외치는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시고 병이 낫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도 병을 고치셨고 안수하셔서도 병을 고치셨습니다. 신체적인 접촉은 사랑을 표현하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고 계시고 어떤 사랑의 언어를 기대하고 계십니까? 내가 느끼지 못해도 상대방은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상대방이 느끼는 사랑의 언어를 사용해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착해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악해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저질러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갈라졌을 때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회복하는 화목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요일4:10,2:2)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여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요일4:11)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집니다.(요일4:12)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