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4:6(1-14)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 3백 년 전에 동양과 서양에서 대규모 토목공사가 벌어졌습니다. 중국은 이민족을 방어하기 위해 5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만리장성을 쌓았습니다. 중국은 길을 막고 이민족과의 왕래를 차단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이민족을 공격하기 위해 15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도로를 건설했습니다. 로마는 길을 닦고 이민족과의 왕래를 촉진했습니다. 중국은 패쇄적이었고 로마는 개방적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길을 차단한 중국은 오히려 이민족의 침략에 시달렸지만 길을 건설한 로마는 오랫동안 세계를 제패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격언은 피가 심장에서 혈관을 타고 흐르듯이 모든 길은 로마로부터 시작해서 로마의 속국으로까지 연결된다는 말입니다.

로마 제국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생각했으나 예수님은 나는 아버지께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는 여러 갈래 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었으나 천국은 한 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시면서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에서 2절까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아멘. 예수님은 엄마가 아이에게 시장에 다녀올 테니 옆집에서 놀고 있어라 말하듯이 제자들을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4:2) ‘거처’는 ‘하늘나라’라는 장소적 개념도 있고, ‘하나님 안에서’라는 관계적 개념도 있습니다. 장소적 개념으로 생각하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하늘나라에서 거처할 방(rooms, NIV)을 마련하러 가신다는 의미가 됩니다. 관계적 개념으로 생각하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 안에서 사는 길을 마련하여 주신다는 의미가 됩니다. 두 개념을 종합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지금 하나님 안에서 살고 있으며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3절을 읽겠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아멘. 예수님은 엄마가 아이에게 시장에 다녀와서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듯이 제자들에게 다시 와서 너희를 영접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4:3)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을 통하여 하늘나라로 가서 하나님 안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가 왜 자신을 떼놓고 시장에 가는지 모르듯이 도마는 예수님께서 왜 아버지께로 가신다고 말씀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14:5)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도마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는 장소도 몰랐고 아버지께로 가는 방향도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엄마가 아이에게 시장에 다녀와야 한다고 설명해 주듯이 도마에게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목적지는 어떤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며, 그 목적지에 이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6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멘.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갈 수 있습니다. 종교 다원주의자들은 산으로 올라가는 여러 길이 있듯이 천국으로 가는 여러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동차가 일방통행로를 달리듯이 천국은 한 길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한 길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알려주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적인 진리는 없고 상대적인 진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에는 이것이 옳고 저것에는 저것이 옳다고 합니다. 그러나 프란시스 쉐퍼는 성경은 종교적인 진리가 아니라 총체적인 진리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교회에서만 사용되는 진리가 아니라 세상에서도 통용되는 진리라고 말합니다. 그 보편타당한 진리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죽여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삶을 주시는 생명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는 ‘익명의 그리스도인’라는 말을 통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 신실하게 신앙 생활한다면 기독교인으로 포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길이신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고 영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을 통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멸망당할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어리석게 보고 거부하지만 구원받을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능력으로 보고 영접합니다. 하나님은 누가복음 23장을 통해서 예수님과 두 명의 행악 자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하나는 예수님에게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비방했으나(거부했으나), 다른 하나는 비방한 행악 자를 꾸짖고 예수님에게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하고 영접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 행악 자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행악 자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 길로 들어가면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진리를 발견하면 생명을 얻게 됩니다. 길을 막았던 중국이 쇠퇴했듯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막는다면 멸망하게 됩니다. 길을 열었던 로마가 흥왕했듯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열어둔다면 생명을 얻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해 천국에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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